인생의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만 있는 게 아닌데
일반 회사와는 달리 병원에서는 두 계급으로 나뉜다.
의사
그리고 의사가 아닌 직원들
의사가 아닌 나머지 직원들 내에서도 여러 가지 직급이 나눠져 있지만
그건 그들만의 아주 작은 리그일 뿐
아등바등 싸워봤자 팀장이며, 수간호사 정도이다.
물론 그들의 노력과 능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사람을 바꿔 놓는다는 게 항상 문제가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한다.
의사는 할 수 없으니 뱀의 머리라도 되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인생에 중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을 보려 하지 않는지
나도 병원 생활 초기에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모든 회식자리에 참석하고, 불합리한 지시도 무조건 따르며
상사의 발바닥이라도 핥으라면 핥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것 자체는 나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업무들이 많았지만
영상의학과의 방사선사로써 일하는 순간들은 그냥 나를 월급루팡으로 만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들이 커가며 어느덧 내 나이가 40대 중반이 되니 나 자신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회사는 나에게 정년까지 보장해 주는 고마운 곳이지만, 정년까지 다니고 싶은 곳은 아닌 곳이 되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인생을 방사선사로서 마감한다는 건 뭔가 좀 억울하고
인생의 반의 반쪽도 경험하지 못하고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노력하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작은 위스키바 사장과 건물의 관리인(대표)이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위치가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덧 사장, 대표라는 수식어는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나 또한 병원의 팀장들과 다르지 않은 길을 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껍데기뿐인 대표, 사장이란 직함보다는
나의 단단한 내면 안에서 나오는 단어, 표현, 목소리, 말투 그리고 행동들이 나를 나타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성장한 나란 사람에게 대표, 사장이란 한 스푼이 더해지면 나 자신의 인생이 더욱 진해진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어느 자리이서도 나일 수 있도록
그래야 내 인생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사장, 대표, 팀장의 자리가 없어지더라도
예전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나를 본다면 아마 못 알아볼 정도로 나는 많이 변했다.
술 주정뱅이였던, 취미 부자였던,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색하지만 예전에 가지 않았던 길을 가보려 노력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영업을 시도하고, 잘못된 투자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 끝에 대표가 되기까지
그리고 내 남은 인생이 더 많은 색깔로 다채로워져 언젠가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색깔을 내는 내가 되기까지
나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어색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