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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밤 걷기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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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Aug 25. 2024

밤 걷기

7

  성민의 짐작과는 다르게 부모님은 결혼에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확신이 없었다. 성민과는 육 년 연애했고 만난 지 사 년이 됐을 때부터 결혼 얘기가 나왔다. 성민이 정식으로 프러포즈한 것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장난처럼 이야기했다. 우리는 연애할 때부터 외식하는 횟수가 적었다. 밖에서 전시나 영화를 보더라도 밥은 집에서 먹는 식이었다. 성민이나 나나 적은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부담을 덜어 보려고 처음에 한두 번 집에서 요리했는데 그게 그대로 연애 패턴이 되어 버렸다. 나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조리 방법이 쉬운 파스타를 주로 만들었다. 하루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내가 살던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성민은 크림 파스타를 크게 한 입 먹고 난 뒤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우리 나중에 다른 건 몰라도 파스타 그릇은 좋은 걸로 사자.”

  나는 성민의 손에서 휴대폰을 건네받아 화면을 내려다봤다. 거기엔 프랑스산 면기 세트가 올라와 있었다. 엄마가 매번 스테인리스 그릇에 국수를 담아 주던 게 생각났다. 성민과 나는 주로 잡화점에서 산 커다란 접시에 파스타를 가득 올려서 나눠 먹었다. 나는 화면을 대충 훑어보고 대답했다.

  “좋아 보이네.”

  이런 식의 대화는 두어 번 더 반복되었다. 성민은 이 관계에 대해 확신을 얻고 싶은 듯했다.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선을 긋지는 않았고 적당히 말을 돌렸다. 

  성민과의 연애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인지 나는 성민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나 역시 성민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를 떠나고 싶다는,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종종 일었다. 우리는 그만큼 자주 싸웠다. 주로 성민이 먼저 사과하며 다가왔지만 화해하지 못할 땐 헤어지기도 했다. 반년쯤 성민과 헤어졌던 시기에 다른 사람을 사귄 적도 있었다. 만난 지 두 달 정도 지나 크게 싸웠을 때 나는 성민에게 하던 대로 그에게도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 관계는 거기서 끝났다. 마침 성민이 연락해 와 성민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민은 나를 그만큼 사랑한 것일까. 모르겠다. 한번은 싸우다가 내가 심하게 화를 내자 성민이 나를 붙잡으며 불쑥 말했다.

  “우리 사이에 저버린 생명도 있잖아.”

  성민은 우리가 임신을 중단했던 일을 마음에 품고 살아온 것 같았다. 나는 수술 후 금방 건강을 회복해서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는 것으로 그 일을 정리했다. 내 업무에 욕심이나 애정이 컸던 건 아니었지만 출근해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성민이 당시의 일을 곱씹으며 책임감을 키우고 있는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새롭게 가족을 이루는 걸 겁내면서도 나는 성민과 결혼했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믿지 못하는 건 성민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깨닫고 있었다. 

  결혼 후 한참 시간이 지나 성민이 아이를 원했을 때 나는 내 경력을 앞세우며 반대했지만 속으로는 이런 걱정을 했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한동안 복잡한 마음으로 성민의 요구를 못 들은 척했다. 성민도 차츰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뒤돌아서, 너한테 안 좋은 기억이 남았을 수도 있겠지,라고 말한 뒤 더는 아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성민은 수술받았던 일을 내가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와 임신이라니. 얼마 전에 승진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변두리의 오래된 아파트일지라도 이 집을 사면서 진 빚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또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그래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나 돈, 심지어 나의 몸도 두 번째였고 가장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이 또 시작된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기 전, 나도 기사를 몇 개 읽었다. 댓글창에는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 피해자를 애도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전쟁 기사는 이제 지겹다는 댓글도 보였다. 이번 전쟁이 아니더라도 이미 삼 년째 전쟁 소식을 접하고 있지 않냐는 말이었다. 나는 지난 삼 년간 읽어온 기사 헤드라인을 돌이켜 봤다.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예상, 북한이 군수품을 지원할지 모른다는 추측, 주택가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 기사를 열어 볼 때마다 손에 땀이 고였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잘 키울 수 있을까. 수십 년 전의 베트남전쟁도 나에게는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는데. 집, 가족, 생활. 언제든 이 모든 게 무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과 내가 그 불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공포를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까 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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