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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 주변을 둘러봤을 땐 주택가의 공용주차장 앞이었다. 다섯 대의 차량이 뜨문뜨문 세워져 있었다. 울음소리가 여름밤의 축축한 공기를 찢듯 가르며 주차장 안쪽에서 들려왔다. 아기 울음소리 같았다. 그럴 리 없다고 혼잣말하면서도 나는 홀린 사람처럼 안으로 더 안으로 걸음을 디뎠다. 제일 끝에 주차된 차 옆에 털색이 비슷하고 몸집이 다른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큰 고양이가 작은 고양이의 얼굴을 핥다가 나를 보고는 사납게 울었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배를 감쌌다. 뒷걸음질 치다가 허둥지둥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목덜미에서 땀이 흘러 등을 타고 내려갔다.
불 꺼진 가게 건물들을 지났다. 길이 나뉘는 지점에 자전거가 세워진 것을 보고 그쪽으로 발을 틀었다. 골목 안 가로등은 꺼진 상태였고 이삼 층 높이의 오래된 집들이 어둠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집들이 길 위로 그림자를 드리워 앞이 꽉 막힌 것처럼 보였다. 방향을 알 수 없었고 시간은 흩어져 아주 사라진 듯했다. 걸을수록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잠깐 멈춰 서 더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또 내쉬면서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왼편 대각선에 있는 이층집 창문 하나에 불이 들어왔다. 없던 게 생겨난 것처럼 다음 블록으로 향하는 길이 드러났다. 다시 발을 옮기며 건물을 올려다봤다.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녹이 슨 철문과 낡고 낮은 건물이 어릴 때 내가 살던 집과 비슷해 보였다.
빌라 일 층 주차장을 지나며 열을 맞춰 서 있는 차들 틈에서 까만 그림자가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다음 건물 앞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처 뛰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내 귓가에 들러붙는 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저 조용히 앉아서 쳐다보는 것 봐, 고양이 새끼마냥.”
할머니의 여동생인 이모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의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이모할머니는 아빠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저걸 어떻게 보고 사는가? 다 기억날 텐데.”
아빠가 기억을 잃어 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했다. 내 친부였을 남자가 나를 다독여 재운 뒤 자신도 잠들었다가 잠결에 소리를 지르며 몸서리치던 장면도 나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비명에 묻힌 말이 ‘죽었어’였는지, ‘죽였어’였는지 지금은 희미해진 내 최초의 기억. 그의 꿈속 장면에 내 아빠가 함께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모할머니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더 선명하게 와닿았고, 내가 아빠에게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놓았다. 엄마와 아빠가 부족한 형편에도 나를 데려다 키웠지만 이 가족은 전쟁과 죽음이 엮어 둔 관계였다.
그 말 때문이었는지 나는 조용히 앉아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사는지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이어 가려 애썼다. 부모님의 은혜에 엇나가서는 안 된다고 되뇌며 남들처럼 살려고 동동거렸다. 남들이 웃을 때 웃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남들처럼 취직해서 일하다가 결혼도 했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게 결혼이었는데 어쩌면 내가 그렇게 애쓴 결과가 이 결혼인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