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는 연합고사(聯合考査)라는 시험과 함께 체력장(體力章)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대학을 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종목은 단거리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멀리뛰기, 장거리 달리기 등이었다.
'날으는 돈까스'로 불리던 나는 중학교 들어서 키는 그대로인 반면, 체중은 계속 늘어갔다. 나에게는 사춘기, 성적과 함께 3대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는 내 근육이 나의 몸무게를 이겨내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평소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체육시간에 정식으로 운동능력을 겨룰 때는 '둔한'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체력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력장을 준비하는 시간은 수업시간에 비해서는 꿀 같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부족한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악몽'같은 경험이었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 종목은 '쥐약'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턱걸이는 최악이었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점프하면서 철봉에 매달리며 한 개... 가 끝이었다. 선생님의 불호령으로 어떻게 어떻게 두 개를 채우고 나면 한동안 팔이 후덜 거릴 정도였다. 두툼한 뱃살을 이겨내며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곤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면, 달리는 건 기록과 관계없이 여전히 기분 좋은 종목이었다. 단거리는 나만의 무기(가속도)를 최대한 활용하면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기도 했다. 반면 장거리는 힘들어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사춘기가 더 절정에 달했다. 뚱뚱한 내 몸을 견딜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다이어트 인생이 시작되었다.
무조건 굶는 것이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굶는 것은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처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관종' 같은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또 시간만 나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다녔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텃밭은 농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