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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선생 Nov 29. 2024

탕비실에서도 책, 책, 책

이미예 <탕비실>

탕비실은 어떤 공간일까?


1. 허락된 직원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2. 내 것은 없지만 대부분 내 것처럼 이용할 수 있다.

3. 암묵적인 룰(Rule)이 있다.



책 <탕비실>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QBS방송국에서는 리얼리티쇼 <탕비실>을 기획하고 나(얼음)를 비롯한 총 5명(커피믹스, 케이크, 텀블러, 혼잣말)이 참여자로 선발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회사 동료들의 추천으로 선정되었으며 선정된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얼음, 커피 얼음을 얼려놓는 사람.
2. 20여 개의 텀블러 보유,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
3.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
4.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5.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이들과 함께 탕비실을 쓴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누가 가장 싫습니까?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제작진에서 섭외한 '술래'이고, 나머지 (진짜 섭외자)이 술래를 찾아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포맷이다. 이들은 재현된 사무실과 탕비실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일주일간 함께 하며 술래를 찾게 된다.


탕비실을 둘러싼, 진짜 '빌런'과 가짜로 만들어진 술래를 찾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주인공과 나머지 4명은 서로를 파악하는 신경전과 함께, 술래를 찾기 위한 힌트를 얻기 위해 '규칙을 깨는' 일에도 집중하게 된다(힌트를 많이 얻을수록 참여자들의 정보를 더 많이 알게 된다).


처음의 긴장된 분위기가 지나면서 탕비실에서의 실제 이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책의 제목과 같이 탕비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잣말을 내뱉으며 항상 쓸고 닦는 사람(혼잣말), 커다란 케이크 박스를 냉장고에 쟁여놓고 치우지 않는 사람(케이크), 별다방 텀블러 사기 위해 미국 시애틀까지 찾아가는 사람(텀블러), 커피믹스는 물론 공용간식을 남몰래 챙겨 넣는 사람(커피믹스), 그리고 콜라와 커피를 얼려서 얼음을 만드는 사람(얼음)들이 모두 주인공이자 조연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서 특별히 이상하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자가 얻은 힌트와, 그 속에 담긴 힌트를 통해 이들이 프로그램에 추천된 사유를 보면서 서서히 납득이 된다. '아...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특별하지 않다. 우리 탕비실에서도 본 듯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참가자에 대한 독특한 평판을 읽다 보면, '어? 나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에도 미치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해와 동의도 함께 이루어진다.


누구나 탕비실을 이용하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대부분은 그저 자연스럽게 지낼 뿐이다. 하지만, 주변인은 나를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

'도대체 텀블러를 몇 개를 쓰는 거야..'

'먹지도 않을 케이크는 좀 가져가지..'

'아휴..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지.. 참 거슬리네..'


탕비실 역시 사회적 동물의 공간이니까..


탕비실이라는 공간을 빌려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불필요한 '평가적인' 언행은 어디에서나 이루어진다. 가정, 모임, 친구 등.. 탕비실이 있는 직장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라도.. 사실, 정확한 기준은 없거나 모른다. 그저 우리는 서로서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재단하며 살아간다.




책은 얇고 내용은 무겁지 않다. 읽는 데에 큰 부담이 없다. 시간도 노력도.


하지만, 모든 책이 그렇지만, 생각을 깊이 하자고 하면 별도의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을 통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왜 이야기의 배경으로 탕비실을 골랐을까? 그곳에서 어떤 경험이 있었나? 어떤 상처를 받았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 작품의 소재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자락, 책을 덮기 직전에 작가의 의도를 조금 엿보게 되었다.


삶에서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뿐이라고 했던가.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한 번쯤은 상상해 보는 것. 나는 단지 그 정도로 싫음을 대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늘 토하듯 뿜어냈던 싫음의 감정이 얼굴은 찌푸려질지언정 조금은 소화가 되었다고, 단지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탕비실 #이미예 # 달러구트꿈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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