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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선생 Jan 28. 2024

나는 왜 달리는가?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2

'나이 50십을 넘어서 웬 마라톤? 살 빼려고? 관절에도 안 좋고 몸에 무리가 될 텐데..'


마라톤을, 그것도 풀코스를 해보겠다고 하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다. 10여 년 전에도 '살살해라'거나 '다치지나 마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하물며, 반백살을 넘긴 나이에 다시금 운동화 끈을 고쳐 매려 하니, 여기저기서 말리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뛰려고 할까?


사실, 아직도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달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러닝하이'의 희열감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아직도 '힘든데 이제 멈추면 안 되나'라는 '똥멍청이'같은 생각과의 싸움이 더 치열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달리려는 나름의 이유를 정리해 보면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아무도 뛰라고 시키지 않았다.

달리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면서 그 누구도 '뛰어봐'라는 얘기를 한 적 없다.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는 주말 새벽 털모자와 장갑을 꾸역꾸역 챙기고 현관문을 나서는 일에는 누구의 목소리도 섞이지 않았다. 오직 나의 결정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살아가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직장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는 수많은 일정에 나를 담갔다 뺐다는 반복 한다. 업무와 회의, 출장과 야근 등으로 채워진 그 시간들에 고개 들어 기지개 한 번 켜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 


집에서도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녹록지 않다. 가사에 대한 역할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관련된 일, 양가 兩家와 관련된 대소사 등을 겪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한숨이 푹 나오기 일쑤다.


연일 이어지는 저녁약속에서도 약속의 주인공과 구성원에 따라 달라지는 메뉴와 주량정도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냥 자리를 채우러 나가는 날이 허다하다. 


하지만, 달리겠다는 결정은 오직 나의 몫이다. 

그 누구도 나보다 달리라고 하지 않는다(사실, 내가 달리는 것에 관심도 없다). 나처럼 혼자서 달리고 연습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부터 자유를 만끽할 준비도 함께 한다. 러닝화와 같은 '달리기 준비물'을 살 때는 이런 기분에 가솔린을 붓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 오직 나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니까.


2.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나는 혼자 달린다. 혹시, 누가 옆에 같이 뛴다고 해도... 아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이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이런 나만의 시간에 대한 애착은 이어폰을 빼고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강해졌다. 


달리는 동안 끊임없이 대화와 생각에 빠진다. 내가 가장 먼저 찾는 대화 상대는 바로 '심장'이다. 얘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풀코스를 달릴 수 없다. 

나: 지금 속도는 어떠니?

심장: 음... 괜찮아.

나: 그래? 조금 빨리 달려도 될까?

심장: 한 번 해봐. 근데, 갑자기 달리면 내가 힘들 수 있어!

이런 대화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딜 때까지 이어간다. 심장과 함께 가장 많이 말을 나누는 상대는 다리이다. 허벅지, 종아리, 무릎, 발목 모두모두 나의 대화상대이다. 이 모두에게 나는 부탁을 해야 한다. 


지난주에 남산 둘레길에서 달렸을 때는 오르막 경사를 달릴 때는 '복부'가 SOS를 요청하는 상황이 있었다. 평지인 공원에서 달릴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대화상대가 계속 늘어날 것 같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달릴만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나간 일이나 다가올 일, 작은 일이나 큰 일 대중없이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튄다.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 중에 너무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다. 머리 싸 메어 고민하고, 수많은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눠도 찾지 못했던 해법을 이 순간, 나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계획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하는 구상까지 하곤 한다. 정말이다. 


어떤가? 한 번 뛰어보겠는가?


3. 좋다.

몸에도 좋고 정신이 맑아지고 등의 통상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달리는 것을 통해 여러모로 좋아지고 있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목표를 달성하는 힘이 생기고 있다. 

달리기 시작할 때, 달릴 거리나 시간을 정하면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한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네', '날씨가 나쁘니까' 등의 핑계를 나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주저앉혔던 '똥 멍청이 같은 생각'을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다른 이야기 <당신에게 성공이 어려운 이유, 마지막 이야기>에서 데이비드 고긴스의 "핑계 대지 마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쩌렁쩌렁하다. 정한 목표는 꼭 달성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런 모습은 달리기를 넘어 직장과 집에서도 효과가 있다. 업무를 계획하고 그것은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생각하는 힘이 강해졌다. 집에서도 어영부영 버리는 시간이 줄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하나둘 완성되고 있다. 


둘째,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준비하면서 했던 다짐 중에 하나가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의 능력에 맞게 나의 결과를 얻으면 된다.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혼자서 달리는 시간은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다. 깊고 넓은 생각의 심연으로 얼마든지 나를 던질 수 있다. 물론, 여러 명이서 발을 맞춰 달리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나의 세상에 폭 빠진 그 시간을 통해 끝도 없는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셋째, 성장하고 있다.

달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심장도, 다리도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결과 조금씩이지만 달리는 퍼포먼스도 향상되고,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달리면서 혼자 생각했던 다른 일들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자신감을 담고 있다. 이런 생각과 자신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멈추자마자 스마트폰에 기록으로 남긴다. 달리는 동안 생기는 이런 일들이 무의식적으로 확장되면 나의 달리기는 '생각 발전소'가 될 것 같다. 달리기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이 괜한 허풍은 아니지 않나?


어떤가? 이 정도면 달릴만한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 1/21(일) 약 10km/ 몸풀기 페이스/ 전날 남산 달리기 여파

- 1/23(화) 30분/ 중급 페이스/ 올해 가장 추웠던 날, 몸은 땀이 나는데 손가락은 동상 걸리지 일보직전을 경험함.

- 1/25(목) 45분 걷기/ 이번 주에는 저녁 약속이 많아서 운동화 신고 뛰는 시간이 부족했음. 저녁약속 후 돌아오는 길에 뛰는 듯이 걸었다.

- 1/27(토) 13.5km/ 중급 페이스/ 호수공원/ 이번 주에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달리기 한 날/ 이제 10km 이상을 달리는 것에 큰 부담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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