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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쓰 Jul 22. 2024

#16. 이제야 진짜 회사원이 됩니다.

2022년 11월 17일의 끄적임

이직을 결정하면서, 긴긴 법인 생활을 청산하고, 올해 6월부터 소위 말하는 진짜 회사원이 되었다. 

[변리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점점 [프로]라는 이름에 적합해지고 있다. 


전문직도 본질은 회사원이다. 회사가 정해진 규칙과 상사의 지시하에 조직 구성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진짜 회사원이 돼보니, 다르긴 다르다! 


우선, 법인에서의 근무는 "실무적"이다. 한건 한건당 담당자가 분명하게 정해지고, 각건에 대해서 담당자가 해야 하는 일이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상사도 조직 구성원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업무 분배를 하거나, 약간 상위 레벨의 일을 처리하는 것 외에는 큰 거리감이 있지는 않다. 또한 업무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업무적인 것 외에는 서로를 간섭하거나 터치할 일이 없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하루 종일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일만 해도, 일을 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특히, 내가 메인으로 했던 업무는 모든 업무에 기일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꼭 지켜야만 하는 법정기일부터, 회사 내부 기일, 상사가 업무 분배하면서 지정해주는 기일까지, 기일을 지키는 것이 일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들끼리는 "기일이 없으면 일에 시동이 안 걸린다" "기일만 지키면 되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모든 시스템 및 결재가 기일 기준으로 흘러가고, 가뜩이나 "실무적"인 근무 성격이 더더욱 "실용적"이 된다. 


반면, 회사에서의 근무는 뭐랄까.... 하아... 뭐라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지만, 일단 "실무적",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회사에서의 주요 업무는 상사가 관심 갖는 업무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사의 업무는 상사의 상사가 관심 갖는 업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관심이라는 것이 지속적이고,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고, 더더 중요한 것은 하찮은 일도 상사의 관심이 생기면 중요한 일이 되고, 엄청 중요하다고 유난을 떨었던 일도 상사의 관심이 떨어지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사의 지시는 명확하지 않고 기일이 없으며 오락가락한다. 또한, 조직원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 같으면서도(가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갑자기 조여 온다.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해놓은 일에 대해서는 마무리가 안되고, 스리슬쩍 다른 일이 주어진다. 조직원들 사이에서의 업무 role도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양자를 비교해서 써두니, 법인에서의 근무가 더 합리적이여 보이지만, 장점과 단점은 늘 공존하는 법, 법인에서의 근무는 너무 투명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회사에서의 근무는 상사에게 밉보이지 않는 한 가늘고 길게 유지 가능하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일"이 회사원의 제1 덕목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왔다는 자부심이 무색할 만큼, 역시나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해가야 하는 것은, 여긴 왜 이렇게 일하지?라는 의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왔던 일들의 관습을 버리는 일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채워져 있던 일의 관념들을 버려내야지만,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내가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담아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긴 하지만, 어쩔수 없이 그러한 환경에 놓인 이상 다시 한번 해볼 수밖에 없다. 


진짜 프로의 세계로, 진짜 회사원으로 다시 한번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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