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쓰 Aug 05. 2024

#18. 친구가 점점 사라진다

2024년 4월 3일자의 끄적임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의 단짝 친구!

드라마 속 친구는 주인공과 동거 동락하며, 주인공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처럼 들어주고, 때로는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며, 필요한 순간순간 늘 주인공과 함께해 준다. 

드라마 속 단짝 친구와 같은 친구가 현실에선 존재하기 어려운 일임을 깨달은 순간부터, 주인공 보다 주인공의 친구에 눈이 가고, 단짝 친구가 옆에 있는 주인공이 부러워졌다. 시간도 상황도 여의치 않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친구가 되어줄 수 없기에, 그러한 친구가 내게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상치 못한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이 작고 소중한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고 싶어, 친구를 찾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회사에 있을꺼야”

“애들이 어려서 바쁘겠지”

“너무 오랜만에 연락해서 놀랄 것 같아”

“아무래도 약속이 있겠지” 

각종 이유들을 나열하다 보니 소득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나름 많다고 자부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간 걸까, 점심 한 끼 같이 먹을 친구가 없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헛헛한 마음에 애꿎은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친했던 동생의 카톡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잘 사는 모양이네, 그래 그럼 된거지’

한살 차이밖에 안나서인지 그녀와 나는 친구처럼 꽤나 가깝게 지냈다. 아주 평범한 우리집이 대단해보일만큼 그녀의 집안 환경은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길을 가고 있는 대견스러운 모습에 나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처져있으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인지, 먼저 연락하는 것은 보통 나였고, 만나서도 처져있는 그녀의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출산 후, 육아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을 때 그녀가 우리집에 놀러 왔다. 오랜만에 본 그녀에게는 좋은 소식이 가득했다.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끝내고 결혼이라는 새출발을 앞두고 있고, 예비 남편과 시댁 어른들과의 갈등도 많이 해소되었고, 임신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쁜 마음이 들썩이는 순간도 잠시, 예비 남편과 시댁 어른들과의 관계가 좋아져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시어머니의 스타일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이야기했고, 육아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나의 투정에는 아이가 안 생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야기했으며, 결혼이라는 새출발이 설렐 것 같다는 나의 호들갑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을 나열했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지는 대화였다. 염세적이고, 비관적이고, 불만만 가득한 대답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육아에 찌든 내가 마음이 좁아진 것인가 스스로를 검열해보다가,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결코 연락한번 한 적 없었던, 나의 진심어린 축하에도 늘 시큰둥했던, 나의 좋은 일을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어떻게든 기분을 끌어올리려는 나의 노력을 가벼이 여겼던 그녀의 모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녀와의 관계에서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을 마주한 것이다.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듣고, 임신 축하 선물을 보낸 후에, 마음에서 그녀를 떠나보냈다. 표면적으로그녀와 나는 어떤 일도 없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안부를 물을 것이고,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예전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 59년생 나의 엄마, 김여사님이 대학교 친구와의 만남후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오신 적이 있다. 

“왜~, 무슨일 있었어? OO 아줌마 만난거 아니었어?”

“어휴, 걔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돈 많다고 자랑질을 하면서 밥 한번 사는 꼴을 못본다”

“그렇게 맨날 밉다 밉다하면서 어떻게 몇십년씩 친구를 해”

“나도 몰라, 이제 걔랑 안놀꺼야”


그래, 60세가 넘은 김여사님도 정립하지 못한 사람과의 관계를 아직 한참 어린 내가 감히 어떻게 정의한다고 까불었을까, 툴툴거리는 김여사님의 귀여운(?) 얼굴을 떠올리며, 나의 세계에서 그녀를 놓아버린 원인이 얄궂은 서운한 감정 때문이 아니길 바라며, 흐트러진 나의 마음새를 다듬어본다. 

이전 16화 #17. 나만 잘하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