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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쓰 Jul 15. 2024

#15. 얘들아, 아프지 마!

2022년 11월 2일의 끄적임

남편이 출근한 어느 일요일,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의 이마가 뜨거웠다. 

낮잠 자기 전에 유독 보챈다고 생각했는데, 왜 슬픈 예감을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지ㅠ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지원아, 아프지 마~"라고 말한 뒤, 꼭 껴안으면서, 머리에는 걱정이 맴돌았다. 

"아프면 안 되는데,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스스로를 워킹맘이라고 칭하며 자기 연민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 아이 어린이집에도 나의 직장에도 아이를 핑계로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워킹맘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순간은 바로 [아이가 아플 때]이다. 아픈 아이가 가여운 마음, 아이를 낫게 해주어야 하는 책임감 등 여러 마음들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슬프게도 "어린이집 가야 되는데, 그래야 출근하는데...."이다. 


재택근무다, 유연근무제다, 자유로운 연차 사용이다, 조금씩 직장인들의 편의가 생기고, 워킹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어떠한 조직의 일원으로 묶여있는 순간, 절대적인 괴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보다 미리 육아를 시작한 친구들에게, 어린이집 가면 아이가 자주 아프다, 아이가 밥을 먹고 크는지 약을 먹고 크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아프면 답이 없다, 라는 말을 자주 듣긴 했지만, 과장된 말들 만은 아니었다. 환절기면 환절기대로, 유행성 바이러스면 바이러스대로, 여러 가지 면역력을 갖추기 위해 아이는 아프고 낫기를 반복했다. 


수액을 삼일 정도 맞고서야 열이 내렸던 아이의 지난번 감기를 생각하니, 이번 열은 또 다르게 느껴졌다. 월요일 아침, 새벽에 해열제를 한번 더 먹었지만, 아이 머리는 여전히 뜨거웠다. 


"지원이 열이 안 내리네, 어떡하지ㅠ"

"일단 병원 가는 게 최선이지" 

"병원 가야 되는 거 내가 몰라? 누가, 어떻게, 언제 데려가는 게 문제인 거지, 어린이집도 못 갈 텐데 지원이랑 누가 있냐고!"


어제부터 계속된 걱정과 불안의 불꽃이 남편에게 날아갔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남편이나 나나 똑같겠지만, 현실은 똑같지가 않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남편이 출근한 후,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왜인지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지만, 애 때문에 출근 못 한다는 말은 너무도 하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여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후 그룹장에게 보낼 조악한 문장을 완성했다. '아- 진짜 보내기 싫다'라는 혼잣말과 함께 결국 전송! 

엄마가 되니,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병원 오픈 시간은 9시, 월요일이기에 주말부터 아팠던 아이들이 병원 오픈 시간 전부터 줄줄이 줄을 서 있을게 뻔했다. 예상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등원 이모님도 이미 집으로 오셨다. 

이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병원 갈 짐을 싸고, 병원으로 출발-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금 서두른 탓인지 2번째로 이름을 등록했다. 9시가 되면서 대기 아이들은 빠르게 늘었다. 엄마 아빠의 피곤한 얼굴들도 함께 보였다. 


병원 다녀온 뒤 아이는 피곤했는지, 어제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데운 빵과 커피를 먹으면서 생각한다. 

"열이 잡혀야 하는데, 내일도 이러면 어떡하지, 내일은 진짜 출근해야 하는데" 


출근 하루 안 한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도, 내가 잘리는 것도 아닌데, 출근해야 하는 날 출근하지 못하면 왜 이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불편한지, 워킹맘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지독하다. 


열이 내리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고, 나는 꼬박 3일 동안 온도계, 해열재를 끌어안고 새벽 보초를 서야 했다. 

그래도 3일 만에 열이 내린 것에 너무 감사했다.  


두 돌을 앞두고 말을 조금씩 시작하는 아이는, 어린이 집에서 배웠는지, 집에서도 종종 "얘들아 같이 먹자" "얘들아 같이 놀자" 등의 말을 한다. 

"지원아, 얘들아 아프지 마!라고 해줄 수 있어?" 

아이 특유의 귀여운 발음으로 열심히 따라 한다 "얘들아 아프지 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아이들의 엄마 아빠도 속상할 일이, 곤란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나와 같은 워킹맘이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출근을 못할까바 종종거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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