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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쓰 May 07. 2024


#4."시"는 "시"다

2022년 7월 18일 자의 끄적임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 더 추가된 역할이 있다면, 바로 며느리이다.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성품이었는데, 이 성품을 물려주신 시부모님도 정말 성품이 좋으시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시댁의 만행이 주제가 되는 순간에도, 할 말이 없어(이야기하면 오히려 자랑이 될 것 같아서), 끄덕 인형이 되곤 한다.


그래도, 그 와중에 존경스러운 시부모님에 대한 아쉬운 점을 하나 찾자면, 나에게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으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평일 아침에는 등원 도우미가 아기 등원을 도와주고, 평일 오후에는 친정엄마가 하원을 도와주신다, 금요일은 친정엄마가 일을 하시는 날도 있기에, 시부모님이 아기 하원을 도와주시고, 아기를 하루 재워주셔서, 토요일에 우리가 아기를 데릴러간다. 

시부모님이 평일에는 시누이네 조카 둘(초등학교 저학년)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시기 때문에, 그나마 금요일에 조카 둘이 학교에 가 있을 때 우리 아기(20개월)를 데리러 와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친정엄마, 나, 시부모님, 시누이까지, 모두의 사정들이 얽히고설켜 하루하루 아이들의 육아가 돌아가고 있는 리얼 현장이지! 


그러던 중 지난주 주말 시어머님이 어렵게 말씀을 꺼내신다. 

조카 둘이 한 달 동안 방학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본인이 하루 종일 집에 묶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기를 데리러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가능하려나? 등원 도우미에게 부탁을 해볼까? 반차라도 써야 하나? 남편은 반차가 가능한가?"

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배회할 뿐이었다.


이쯤 되니 얼굴이 굳어지고,  내 마음속 늘 품어왔던 의문들이 빼꼼히 고개를 든다.

"시누이는 언제까지 어머니한테 아이들을 맞길 셈이지?" 

"초등학생이면 어느 정도 다 큰 거 아니야? 하루 종일 양육자가 있어야 해?" 

"주말까지 꼭 시댁에서 해결해야 하나? 시누이 남편은 뭐하고?" 

"우리 엄마는 늘 부탁하면 들어주는 사람인가? 울 엄마는 평일 내내 힘들고, 주말에는 일도 한다고!" 


시누이의 직장은 3교대이다. 9 to 6 직장인이 아니기에, 그녀는 더더욱 힘들다.

평일에 이틀 쉬긴 하지만, 스케줄도 일주일 전에 나오다고 하니 고정적인 시간을 잡기는 더욱 어렵다. 

시부모님이랑 같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살고 있고, 시어머니가 모든 살림까지 감당한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기에 그들만의 역사와 유대감이 깊게 뿌리 잡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조카들은 금요일마다 시댁에서 자고, 주말의 삼시 세끼와 모든 일정을 시댁에서 해결한다. 

시누이의 남편이 있기는 하지만, 투잡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부모님은 늘 그를 배려해주신다. 

이러한 상황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므로 시부모님이 힘드시겠다는 생각으로만 그쳤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우리 아기를 하루 데리고 있어 주시는 것이 감사해서 간 식사자리에 함께 간 조카 둘이 보인다.

시누이의 남편은 그날도 없다. 시부모님은 조카 둘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주문하시고, 열심히 수발을 들어주신다. 아무렇지 않았던 광경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진다. 속이 답답해지고, 말이 없어진다. 


내가 경험한 시누이라면, 나랑 다른 사람이 아니었기에 분명 그녀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해해보지만, 오늘은 그녀가 미워진다. 

한없이 좋으신 분들이지만, 그녀의 사정만 우리에게 전달하고, 우리의 사정은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시부모님이, "며느리"보다는 "딸"이라는 우선순위가 분명한 시부모님이, 나보다 그녀에게 더 좋은 사람인 것을 확인하게 된 것 같아, 오늘은 밉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화살은 괜스레 남편에게 꽂힌다. 

남편은 그것까지 네가 욕심내면 어떡하냐면서, 친정엄마한테 기댈 수밖에 없으니 더 잘해드리자고 한다.

나도 안다. 이 게임에 정답은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누구든 힘들고, 누구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머리로 알고 있는 그 사실이 마음에 내려오지 않았는지, 그날 밤에는 출구 없는 미로에서 길을 헤매는 것처럼 정말 잠이 안 왔다. 마음이 안 잡아진다. 


오늘만큼은 정말 "시"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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