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발음법, 권8
※ 창언창안의 영어 발음 단막극에서는 영국식 발음 (잉글랜드 남부 발음)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유는 권1의 2부 2악장을 참고해 주세요.
※ 창언창안의 영어 발음 단막극에서 사용하는 발음 표기법은 권5의 간주곡을 참고해 주세요.
지난 두 장 동안 우리는 영어 역사에서 어떻게 긴 모음이 변화해 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원래 깔끔하게 그냥 긴 소리이던 장모음이 [ɑj] 같은 복모음으로 쪼개진 것을 봤고, 실제로 복모음이던 것 중에서는 현대의 장음이 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영어의 장음이던 것들을 더 이상 '장음'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영어 화자들은 이 소리들을 대응하는 소리의 긴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난감합니다. 오히려 현대의 장음들은 기존의 장음과는 아무 연관도 없기에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창언창안에서는 과거의 장음들을 '긴 소리'로, 현대의 장음을 '장음', '장모음'으로 부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짧은 a는 [a], 긴 a는 [ɛj], 장음 a는 [ɑː]인 것입니다. 이해하셨죠? 그럼 영어 모음에 무엇이 있는지만 복습하고 현대 영어의 장모음은 어떻게 발달했는지 살펴봅시다!
단모음: [ɪ] ≈ [ㅣ], [ɛ] ≈ [ㅔ], [a] ≈ [ㅏ], [ɵ] ≈ [ㅜ], [ə] ≈ [ㅓ], [ɔ] ≈ [ㅗ]
장모음: [ɑː] ≈ [ㅏː], [əː] ≈ [ㅓː], [oː] ≈ [ㅗː], [ɪː~ɪə] ≈ [ㅣː], [ɛː~ɛə] ≈ [ㅔː]
j계열 복모음: [ɪj] ≈ [ㅣj], [ɛj] ≈ [ㅔj], [ɑj] ≈ [ㅏj], [oj] ≈ [ㅗj]
w계열 복모음: [ɑw] ≈ [ㅏw], [ʉw] ≈ [ㅜw], [əw] ≈ [ㅓw]
짧은 i: [ɪ]
긴 i: [ɑj]
짧은 e: [ɛ]
긴 e: [ɪj]
짧은 a: [a]
긴 a: [ɛj]
짧은 u: 현대의 [ə] 또는 [ɵ] (양순음 뒤에서 소리 유지)
긴 u:
[uː] ou로 표기, 현대의 [ɑw]
[yː] u와 끝의 e로 표기, 현대의 [jʉw] 또는 [ʉw] (일부 자음 뒤에서 j 탈락)
짧은 o: 현대의 [ɔ] 또는 [ə] (주로 m, n 앞에서 중설화)
긴 o:
[oː]: oo로 표기, 현대의 [ʉw] 또는 [ɵ] (무성음 앞에서 약화)
[ɔː]: o와 끝의 e로 표기: 현대의 [əw]
매번 저 위에서 파랗게 빛나던 창언창안에서 잉글랜드 남부 발음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 드디어 본격적으로 쓸 때가 나왔습니다!
잉글랜드 남부 발음 기준으로 삼는 이유에는 3가지가 있었죠. 첫 번째는 그나마 영어 중 표준화가 잘 이뤄졌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 두 번째는 모음 끝의 혀 굴리는 발음이 없다는 것, 마지막은 영어의 발상지에서 사용하는 발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중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영어의 장모음이 생겨난 배경이랍니다. 우리 잠깐 미국식 발음을 보고 와볼까요?
{받침대} rack: [rㅐㅋ] [ræk]
{차} car: [ㅋㅏ˞] [kɑ˞]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r]이 모음 뒤로 간다고 해서 딱히 발음이 달라질 거라고 예상하긴 쉽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프랑스어를 봐도, 스페인어를 봐도, 이탈리아어를 봐도 모음 앞에 오는 r이나 뒤에 오는 r이나 다 똑같지 않나요?
그런데 영어는 저런 언어들처럼 로망스(라틴어)계 언어가 아니죠. 영어는 게르만(독일어)계 언어입니다. 그러면 독일어를 봐볼까요? 아, 독일어는 r이 어디에 오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네요.
{2월} Februar: [feːbʁuaːɐ̯]
{기사} Ritter: [ʁɪtɐ]
단어 끝의 r은 단어 다른 곳의 r과 다르게 아예 모음이 되어버리는 군요? 두 경우 모두 ɐ이 되어 버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어의 이런 현상을 r의 모음화라고 부르며, 독일어에서처럼 영어에서도 r 소리가 위치가 달라지면 소리가 달라진답니다.
본래 영어에서는 미국식 발음처럼 모음에 r 소리가 흡수되어 모음에 r 색채를 더했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음을 r화 모음, 영어로는 말 그대로 r-coloured vowel {r색 모음}이라고 하죠. 국제 음성 기호로는 〈˞〉로 적는답니다.
음성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현상은 영어의 [r]이 정확히 따지면 접근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접근음이 뭐냐고요? 파열음은 소리를 내는 부분끼리 완전히 닿고 마찰음은 소리를 내는 부분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가까워진다면, 접근음은 서로 약간만 가까워지는 소리를 얘기한답니다.
영어의 [r]은 정확히는 [ɹ̠ʷ]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원순화 후치경 접근음'으로, 혀를 잇몸의 뒤쪽에 가져다 대고 (후치경), 거기서 쉿쉿거리는 소리가 안 나도록 약간 혀를 내린 다음 (접근음), 입술을 둥글게 말아 소리내면 된답니다. 굉장히 발음하기 까다롭죠.
모음 앞(초성)에서는 그나마 발음하기 편하지만, 이 소리가 받침에 가버리게 되면 발음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진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앞의 모음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앞서는 모음의 끝에 r을 약간 묻힌다고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r화 모음의 정확한 설명은 약간 길어지는데요, 궁금하신 분들께 설명해 드리면 아래와 같답니다.
소리는 공기 중의 파동입니다.
파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진동수로, 이는 1초당 파동이 몇 번이나 진동하는지 센 횟수이며 단위는 헤르츠Hz랍니다. 대개 도 (가온도, C4)가 440헤르츠랍니다.
그러나 어떤 소리를 만들 때에는 정확히 해당하는 진동수의 파동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그 진동수의 배수에 해당하는 파동이 만들어진답니다. 물론 파동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죠. 즉, 피아노에서 도를 치면 440 Hz, 880 Hz, 1320 Hz...의 파동이 같이 만들어진답니다.
인간은 여기서 가장 낮은 진동수의 파동을 그 소리의 음정으로 인식한답니다. 즉, 가온도(C4)보다 한 옥타브 아래의 도(C3)를 치면 220 Hz의 파동이 들리므로 이 소리는 220 Hz, 한 옥타브 위의 도(C5)를 치면 880 Hz의 파동이 가장 낮은 진동수이므로 이 소리는 880 Hz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각 악기의 물리적 성질에 따라 다양한 진동수의 파동이 만들어집니다. 이 파동들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복잡한 파동을 우리는 음색으로 인식한답니다. 목소리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악기든 목소리든 소리를 들을 때 소리의 높고 낮음을 인식하는 것은 가장 낮은 진동수의 파동을 의미합니다. 이 파동을 기본음(f0)이라고 부릅니다. 몇몇 언어에서는 성조 등 f0에 의해 결정되는 요소로 뜻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음은 f0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음색에 따라 결정되죠. 음색은 수많은 진동수의 파동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i]라는 모음을 발음하면 진동수가 20-1000 Hz, 2000-4000 Hz 등에 속하는 파동들이 만들어진답니다. 이렇게 서로 구분되는 진동수의 범위를 포먼트formant라고 부른답니다. 진동수가 낮은 포먼트부터 해서 F1, F2, F3...라고 부르죠. f0은 포먼트가 아닙니다.
인간의 모음은 F1과 F2만 가지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낮은 F1과 높은 F2는 [i], 낮은 F1과 낮은 F2는 [u], 높은 F1은 [a]인 식이죠.
그리고 r화 모음은 특별히 낮은 F3를 가진답니다. 즉, 모음을 발음할 때 일정 시간 뒤에 갑자기 F3가 뚝 떨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r화 모음으로 인식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이후 영국식 발음에서는 이 r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사라지지는 않죠. 국어 시간에 한국어 장음의 유래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국어의 장음은 중세 국어의 올라가는 모음에서 유래했답니다. 단순히 높거나 낮은 모음과는 다르게, 올라가는 모음은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올라가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장음이었기 때문이죠. 이후 한국어에서 모음의 높낮이가 중요해지지 않자, 오직 모음의 길고 짧음만이 남은 거랍니다. 지금은 이것도 사라져 가지만요.
어쨌든, r화 모음도 마찬가지로 모음에 합쳐진 r을 발음할 시간이(F3이 낮아질 시간이) 필요했기에 다른 모음보다 더 길었답니다. 그리고 이 구분이 완전히 사라지자, 모음의 길고 짧음만이 남은 것이죠.
그래서 영어의 장모음은 대부분 여기서 유래했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모음 뒤에 r이 있으면 앞의 모음을 무조건 길게 발음하라는 말과 똑같은 것이죠.
{파} par: [ㅍㅏː] [pɑː]
{지갑} purse: [ㅍㅓːㅅ] [pəːs]
{구멍} pore: [ㅍㅗː] [poː]
{부두} pier: [ㅍㅣː] [pɪː]
{배} pear: [ㅍㅔː] [pɛː]
영국식 발음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trap-bath split입니다. 번역해 보자면 '함정-목욕 분열'인데요, 사실 뜻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 단어들의 발음이 갈라졌다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어떻게 갈라졌냐고요?
trap: [træp] -> [træp] -> [trap]
[ㅌrㅐㅍ] -> [ㅌrㅐㅍ] -> [ㅌrㅏㅍ]
bath: [bæθ] -> [bæːθ] -> [bɑːθ]
[ㅂㅐθ] -> [ㅂㅐːθ] -> [ㅂㅏːθ]
즉, 일부 상황에서 [æ]이 길어졌고, [æ]의 위치가 아래로 이동하면서도 이 변화가 그대로 남아 지금의 장모음이 된 것이랍니다.
이 변화는 18세기 전반에 잉글랜드 남부에서 처음 시작되어 18세기 후반에 런던의 고급스러운 발음으로 정착하게 되었고, 이후 세기가 되며 이미 변화를 겪은 단어를 제외하면 더 이상 이 변화가 적용되지 않으며 현재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답니다.
잉글랜드에서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이 있었던 것이 17세기, 미국의 독립이 18세기 후반이었으니 미국에는 이 변화가 퍼지지 않은 것이 당연하죠.
어쨌든, 이 변화는 주로 [f], [s], [θ], [ns], [nt], [ntʃ], [mpəl]로 끝나는 단어에서 일어났으며, 흔하게 쓰인 단어일수록 이 변화를 겪었을 확률이 높았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완전히 규칙적으로 정착되기 전에 이 변화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답니다. 이 변화가 사라져 버렸으면 다시 예전 형태로 돌아가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또 아니라서 참 난감하답니다.
그래도 저는 그나마 이 변화는 표기하기 힘들지 않으므로 r화 모음 대신 이 변화를 택했기에 잉글랜드 남부 발음을 기준으로 삼은 거랍니다. 그리고 미국식 발음에서는 자음이 마구 변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 변화는 위의 상황에서 주로 일어나지만, 꼭 일어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흔한 단어에서 잘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가 자주 보는 단어에서는 이 변화가 일어났다고 봐도 된다는 것이죠. 몇 가지 예시와 반대 예시를 볼까요?
{유리} glass: [ㄱㄹㅏːㅅ] [glɑːs]
{가스} gas: [ㄱㅏㅅ] [gas]
{못하다} can't: [ㅋㅏːㄴㅌ] [kɑːnt]
{개미} ant: [ㅏㄴㅌ] [ant]
{기회} chance: [ㅊㅏːㄴㅅ] [t͡ʃɑːns]
{취소하다} cancel: [ㅋㅏㄴㅅㄹ] [kɑːnsl]
이번 장에선 영어의 새 장모음이 만들어진 2가지 경로를 알아봤습니다. 하나는 무조건 적용되며, 굉장히 많은 단어에 적용된 변화죠. 이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변화를 겪은 영어의 방언을 non-rhotic dialect {비-r형 방언}이라고 부를 정도랍니다.
반대로 두 번째로 다룬 변화는 매우 특정한 조건에서 몇몇 단어에서만 일어난 변화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덜 중요하고, 틀려도 별문제 없으며, 오히려 흔한 단어에서만 보이기 때문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죠.
그리고 영어의 새 장모음이 만들어진 마지막 경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룬 경로죠! 바로 ɒw에서 생긴 [oː], gh에서 생긴 [ɑː]과 [oː]랍니다! 즉 복모음에서 생겨난 장모음들이죠. 이렇게 3경로가 현대 잉글랜드 남부식 방언의 주요 특징인 장모음의 기원이랍니다.
모음은 이제 너무 많이 봐서 지긋지긋하시죠? 그러니 다음 장에서부터는 자음을 다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