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이란 그 자산은 아무래도 나의 공도 과도 아닌 주어진 것일 뿐이다.
방황하는 20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 방황의 원인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들을 바로잡은 가이드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라, 보험을 들어라, 직장이 있어야 한다와 같은 공감없는 조언들과 말들이기에 오히려 청춘은 거부감이 들 수 밖이 없다. 그렇기에 반대로 인생을 포기하고 헤로인을 하고 직장을 포기하고 다시 헤로인을 한다.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황인 것이다.
과거에 상담사가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아무개씨의 고민들은 주로 도덕감과 방향성 자아실현감에 관한 것들이잖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아무개씨의 고민들은 20대의 권리이자 20대만의 누릴 수 있는 점들이에요". 당연하게도 거부감이 들었고 반박을 했었다. "저는 제 미래가 불투명하고 뭐가 옳은지에 대해서 고민이 되는건데 이게 20대만의 문제일까요? 30대가 되어서도 40대가 되어서도 이런 고민을 안한다는 것은 결국 썩어가는 것이고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 아닌가요?"
한참을 뜸들이던 그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화가 난 나를 안심시키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고민이 사라지고 해결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고민들은 평생 답이 나오지 않고 꾸준하게 들거라는 건 동의하지요." "대신에 치열하지 않아진다는 거에요. 지금처럼. 지금 생각하는 그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고민에서 오는 우울감들은 가라앉을 것이고 결국 고민하는 방향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는 거죠." 그는 말을 많이 했다는 듯 물을 한모금 마시며 이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무뎌지는 것, 청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들이 늙어가고 성숙해진다는 거에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같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어째보면 슬프고 어째보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인거에요."
나는 또 울컥했다. 아니 시간이 해결할거란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깐. 무책임하니까.
"그럼 지금의 현실에 저는 안주하고 참아야 하는건가요. 자신이 없는걸요. 그렇게 무뎌진 제 자신을 지금 제가 본다면 그 전에 차라리 자기파멸적인 방법을 선택해버렸을거에요."
상담사는 상담사였다. 당연히 이 반응을 예상했나보다.
"지금의 아무개씨가 볼땐 그렇겠지만 지금의 고민들, 치열한 우울감들이 나중에 보면 지금은 왜 그랬을까? 라는 시기가 올 것이고 그때의 아무개씨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생각하는 가치관과 멀어지진 않았을거라 생각되네요." "청춘이란 말이 그런거에요. 치열하게 방황할 수 있는 기회이자 고통스러운 시기입니다. 누군가는 청춘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사실 이런 고민과 방황의 시기가 청춘이죠."
나는 사실 그 대화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었다. 결국 내 고민은 하찮다라는 말 밖에 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내 머릿속 치열하게 돌아가고 짜증나는 것들에 대해서 그가 무시했다 생각이 들었었으니깐.
하지만 어제 영화를 보고 다시금 이 대화가 떠올랐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성세대들의 가이드라인에 공감하지 못하는 20대. 그 중에서 그래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했던 23살의 나의 모습. 그 모습을 본 상담사는 오히려 내가 바람직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이겠지.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들이 나중의 당신의 삶에 녹아있을 것입니다" "우울함과 치열함은 청춘의 자산입니다" "후에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와 동시에 그 과정에 대해서 흐뭇하게 볼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 과정에 서있는 듯 하다. 방황을 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머리 속은 부유하다. 아직도 내 고민들에 대해서 답을 찾고 싶어하고 그 질문들의 기원에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때만큼 엄청나게 열심히 고민할 여력은 없다. 이게 늙어가고 청춘과 멀어지는 과정이라는 건가? 기분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그냥 이대로 썩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지만 뭐
No one gives a fuck about my nightmares
But it's nothing you should worry yourself ab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