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작은 편인... 둘째
오늘은 초음파 보러 가는 날. 미국은 초음파를 초기에 한번, 중기에 한번, 출산 전 후기에 한 번, 이렇게 보는 것 같다.
벌써 임신 24주쯤. 시간 빠르다. 곧 임신 후기. 매일 첫째와 지내다 보니 둘째 임신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집에서 혼자 아기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간식을 먹었다. 초코파이, 쿠키, 귤, 그러다 찔리면 견과류 먹고. 요 며칠만이 아니지. 지지난주에는 에이스와 버터링... 도 먹었었다. 요즘 허리 아파서 잘 뛰지도 못했다. 고속노화 풀액셀을 밟고 있는 셈. 아직 아주 많이 찌진 않았지만 첫째 임신했을 때보다는 체중이 빠른 속도로 느는 것 같아서, 사실 아기가 너무 크다고 할 것 같아 걱정하면서 갔다. 게다가 지난번 초음파에서 아기의 자세 때문에 심장과 척추를 볼 수 없어서 오늘 다시 봐야 해서 약간 긴장이 되었다. 지난번에 본 중기 초음파를 다시 본거나 다름없고 첫째 때 본 것까지 합치면 세 번째 중기 초음파나 다름없었는데, 이번이 제일 긴장이 되었다. 나의 건강에 자신이 있고, 임신이나 출산에 대해 잘 모르던 첫째 때가 더 용감하고 무심했던 것 같다. 첫째를 보느라 허리를 굽히게 되고, 아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 보니, 사실 내 허리가 나갈 뿐 아기 건강에 영향을 줄 건 없는데, 그것도 나름 걱정이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정상이란다. 심장과 척추도 초음파 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아기는 여전히 얼굴을 팔로 가리고 있다. 다만 아기 크기가 하위 20퍼센트란다. 초음파를 보고 난 후 만난 태아 건강 전공 의사 선생님은, 연년생 임신일 경우 엄마에게 혈압문제나 아이의 저체중 문제, 혹은 조기 출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6주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초산이 빠르지 않아서, 만 35세 이후에 출산하는 것의 리스크와 연년생 출산의 리스크, 어차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지금 내가 시간도 있고, 시부모님도 와서 도와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연년생 출산을 선택했다. 오늘은 그 선택이 갑자기 둘째에게 미안했다. 나의 잘못된 선택들로 아기에게 너무 리스크를 주는 것 같아서. 짠한 거... 단 거 그만 먹고 필수 영양소 위주로 많이 섭취해서 둘째가 건강히 자라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첫째도 중기 초음파 때 하위 40퍼센트였는데 태어날 때 3.6킬로그램이라 아주 컸다. 둘째도 왠지 그럴 거 같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 실감 나는 초음파였다. 첫째 처럼 예쁜 아기가 두 명이나 생긴다니. 축복인 동시에 책임감이 더 느껴진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첫째와 둘째를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워야 할 텐데.
사실 근래 고속 노화 가속 페달을 밟은 데에는, 역시 고립의 문제가 크다. 요즘, 탄수화물 만이 나에게 제대로 위로를 준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내 옆에 있어주는 건 역시 군것질 거리뿐이다 (아예 사놓지를 말아야 하는데, 손님맞이로 이번 주는 물거품이 되었다). 물론 남편도 자상하고, 아이도 사랑스럽다. 주변에 좋은 분들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다. 특히 혼자 아기와 있고 체력이 떨어질 때 그렇다. 친구 중 둘째 임신한 사람도 없고, 타지에서 나처럼 진로 미정인 채로, 오랜 지망생인 채로 혼자 육아하는 친구도 알지 못한다. 내 친구들이 그런 상황에 놓이기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 친구를 이미 알거나 새로 사귀게 된다고 하더라도, 타인과의 감정적 안전거리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몸으로 터득했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나 감정을 터놓지 않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나의 소중한 남편과 아기도 그렇다. 중요한 건 이야기하고 의논하지만, 몸이 다르면 타인이다. 결국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타인의 마음은 절대 내 마음 같을 수도 없고, 그래서 말을 해야 한다. 나를 표현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나는 마음과 생각도 상대와 동기화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다. 여러모로 요원하고 헛된 상상이다. 시인 칼릴 지브란이 썼듯, 함께 있되 거리를 두어 하늘의 바람이 우리 사이에서 춤추게 해야 할 일이다. 그 누구와도.
이민 생활뿐이겠는가. 외딴곳에 떨어져 있다 보니 더 도드라질 뿐이다. 적막과 고요, 그 막막함을 외면하지 않고 오롯이 마주하고 견디는 것. 인연도, 가족도, 유튜브도, 탄수화물도, 설탕도, 카페인도, 그 막막함을 잠시 줄여주거나 잊게 해 줄 뿐 없애주지는 못한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 이런 감정을 마주할 순간도 적어지겠지만, 전업으로 아이를 키우는 환경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적막함과 허무함은 어쩔 수가 없다. 거창한 다짐도 생각이 안 난다. 군것질 거리를 덜 사보자. 최대한 건강하게 버텨보자(견과류-과일-아몬드우유-계란-치즈 같은 순서로), 임산부가 돌쟁이 아기 키우는 것이 힘든 건 당연하니, 최대한 나를 덜 상처 내며 그저 버텨보자.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