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승기야, 카쿠르터에게 다음 상황을 알려. 그래야, 그들은 더욱더 우리를 신뢰해 많은 투자자를 모집할 거야. 솔직히, 아버지 말대로 돌아가는 이 상황은 낯설기는 해.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하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지. 그리고 우리도 레벨 1에 도달해 500억 투자 유치에 성공했어. 우리는 블루 고스트가 준비한 매뉴얼대로 움직이면 돼.”
“임 대표, 블루 고스트의 다음 행보는? 500억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승기야, 곧 경제특구지역에서 블루 고스트가 지정한 곳에 매물이 생길 거야. 그때 블루 고스트가 원하는 금액으로 우리가 일제히 사들이면 돼. 레벨 1은 500억이지만, 레벨 2의 투자 금액은 3,000억 원이야.
기억하지? 우리 사업을?
소외층을 대상으로
아파트 리스 사업과
아파트 조각 투자 크라우드 펀딩
블루 고스트가 지정한 지역에 매물이 나오면, 블루 고스트가 말한 금액에 매물을 조금씩 사들이면 돼. 100명의 카쿠르터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야. 매물을 구매 후, 공유지분등기로 부동산 소유자를 여러 명으로 만든다고 소액 투자자에게 전달하면 돼. 다만, 공유지분등기를 했을 때, 공유자의 동의 없이 각 지분의 소유만큼 단독으로 매각할 수 있으니까, 카쿠르터에게 미리 전해. 단독으로는 처분은 불가하다는 동의서를 받으라고. 동의하지 않는 자는 투자금을 돌려주어 계약을 청산하라고. 레벨 1을 시작으로 레벨 2까지 이르려면, 카쿠르터가 더욱더 분발해야 한다고.”
16. 승기는 관련한 내용을 카쿠르터를 통해 모든 투자자에게 전달할 거다. 유토피아인 카테피아 건설에 조금은 다가간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효상아, 직접 와서 보니까 어때? 저기 보여? 저기가 고속도로가 날 자리야. 그리고 반대쪽 보이지? 철도망을 늘리는 자리야. 저쪽에 큰 공터는 곧 대형 쇼핑몰이 들어설 거야. 듣기로는, 대한민국 모든 빅 브랜드 쇼핑몰은 다 들어올 예정이라고 해. 그리고 그 옆으로 콘서트홀, 박물관 그리고 미술관을 건설할 예정이야. 그리고 경제특구지역을 감싸는 대형 공원과 스포츠 경기장이 들어설 거야. 그리고 가운데로, 20만 세대가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웅장함이 느껴져? 이곳이 얼마나 변할지 상상이 돼?”
17. 모처럼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임 대표의 모습이다. 여론에서 하도 떠들어 대 내심 기대하고 이곳을 왔지만, 허허벌판[220]이다. 내 눈에는 그저 아주 넓은 공터로만 보인다. 군데군데 중장비 시설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 무엇도 시작하지 않는 듯싶다.
“임 대표, 네 말대로 눈을 감고 잠시 상상했어. 상상하기도 어렵다. 도대체 이곳은 얼마나 변할까? 경제특구지역을 먼저 예상한 블루 고스트는 정말 대단한 집단이야. 인생 2막을 알리는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귓가에 울린다.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거야.”
승기 또한 흥분한다. 아니,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는데, 그리고 경제특구지역에서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은 없다. 더군다나 우리는 건설사도 아니다. 사실, 블루 고스트가 이곳에서 무엇을 투자해 수익을 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레벨 1 투자금 달성 후, 레벨 2 투자금 목표가 무려 3,000억 원이라는데, 이 또한 어찌 달성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임 대표, 승기야, 너희들만큼 상상은 잘 안 간다. 정말로 이 모든 게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해. 좀 혼란스러워. 좀 무섭기도 하고. 정말로 우리를 믿고 따르는 수만 명의 투자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게 맞겠지?”
임 대표 눈에는 이곳은 이미 완공한 지역이다. 임 대표는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며 한마디 한다. 불안함을 느끼는 내가 못마땅한듯하다.
“효상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제외하고 모든 게 천지개벽[221]할 이곳의 미래가 안 보여? 난 이미 보이는데? 더군다나, 카테피아의 건설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말한 장본인은 바로 효상이 너야. 선두에서 앞장서 지휘할 네가 불안함을 느끼면 누구도 우리 사업의 성공을 꿈꾸기 어려워. 갑자기 왜 그래?”
18. 임 대표의 심복[222]이 된 승기도 한 마디 거둔다.
“효상아, 그래, 우리가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규모가 커진 상황이야. 불안함을 느끼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해. 우리는 처음이니까. 처음은 누구나 불안한 거야. 하지만, 그런 불안함은 500억의 투자금을 모으기 전에 끝냈어야지. 그리고 블루 고스트의 믿을 수 없는 통찰력을 이미 몇 차례나 보았는데도 여전히 불안해? 여전히 불안하다면,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감정이 아닐까? 원래, 아는 만큼 보이잖아. 우리가 판단해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지났어. 보이지 않으니 불안한 거야. 우리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효상아, 너를 믿지 말고 블루 고스트를 믿어. 담대하게 나아가자고.”
승기 말이 맞다. 보이지 않아서 불안한 거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서 불안한 거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온 우현이의 제안. 그리고 정호 님과 만남. 그리고 베일 속에 싸인 블루 고스트. 모든 상황이 너무나 빠르다. 그리고 너무나 정확하다. 그리고 너무나 운이 좋다. 운이 좋고, 정확하며, 빠르게 진행한다고 믿었다. 이곳에 오니 실감한다. 정작 현실은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다.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카테피아의 건설을 절실히 바라는 카쿠르터와 함께하려면, 스스로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아는 게 없다. 그러니 더욱더 불안하다. 우현이 말대로 이곳에 오면 모든 게 명확해지리라 생각했다. 잿빛의 짙은 구름이 걷혀 코발트블루색을 띤 시원하고 청량한 하늘이 다가오는 달콤한 상상은 무너진다. 이곳에 오니 확실히 구름은 걷힌 기분이다. 다만, 멀리서 황사 먼지를 동반한 강력한 태풍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태풍을 마주할 자신은 없다. 승기와 우현이는 모르겠다. 혼자라도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싶다. 도망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불안감을 떨치고 승기 말대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태풍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맑은 하늘이 다가와 모든 불안함을 해소[223]하기를 소망한다.
“승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담대하게 나가야 해. 지금은 그런 시기야. 내가 흔들리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모든 게 너무나 잘 돌아가니까. 상상일까, 꿈일까, 모든 게 거짓일까 두려워. 임 대표, 그리고 승기야. 우리가 언제 그렇게 운이 좋았어? 임 대표도 아버지 문제로 젊은 시절 그리 고생하고, 승기 너도 얼마 전 부동산 사기를 당하고. 나도 글쟁이로 살아간다고 소리만 쳤지. 뭐 하나 이룬 게 없어. 40대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행운을 기대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 그런데 행운은 좀처럼 내게 오지 않더라고. 너희도 그렇고. 그래, 지금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우리의 행운이 아니야. 블루 고스트의 철저한 전략으로 얻은 결괏값이야. 그렇게 믿을래. 믿고 싶어.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나의 상상력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이 상황을 어찌하겠어? 블루 고스트의 힘을 빌려 카테피아의 건설만을 생각할게.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 임 대표, 그리고 승기야.”
“효상아, 진저리 나도록 생각하기 싫다, 젊은 시절, 지긋지긋하다. 간절하게 바랐던 행운은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어. 불행했어. 늘 어둠을 지나는 기분이고.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거냐? 아니, 도대체 행복을 누릴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데? 누가 주는 게 아니잖아.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고. 그래, 블루 고스트를 믿어. 걱정하지 말고. 모두가 하나를 향해 열심히 하잖아. 너 또한 그렇고. 난 우리를 믿는다. 안 그래? 그리고 다시는 너의 불안함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면 안 돼. 알았지?”
19. 임 대표는 부드러운 말투와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눈을 감고 임 대표의 부드러운 서울 말씨를 들었다면, 이는 분명히 위로다. 격려하는 말이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다. 그렇기에 더욱더 차갑게 느껴진다. 이마와 눈가에 실금처럼 보이는 주름이 보인다. 그래서 임 대표의 눈빛은 더욱 음산[224]하다. 처음으로 임 대표가 무섭다고 생각한다. 경고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허튼소리를 하지 말라는. 무서운 경고. 내가 모르는 우현이의 모습이다. 우현이는 악마인가?
“효상아, 임 대표 말대로 우린 지금 바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어. 그러니 괜한 걱정은 접어둬. 정신에 해로워. 우리 셋, 힘들게 여기까지 왔어. 더는 흔들리지 말자고. 여기서 무너지면, 나아갈 곳도 쉴 곳도 사라지니까.”
20. 레벨 2로 이어지려면 부지런히 많은 투자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렇기에 카쿠르터와 우리는 요즘 정신없다. 카테난조는 사모투자 전문회사다.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다. 투자금의 규모를 키우려면 기관 투자자를 모집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블루 고스트는 오직 개인 투자자만 모집한다. 관련한 프로모션이나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레벨 1의 달성 시기를 고려하면, 레벨 2는 달성이 가능한 목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우리 쪽에서 관련한 홍보나 광고를 준비하면, 한사코 말린다. 말린다기보다는 거절한다.
“승기 그리고 효상아, 본사에서 관련한 그 어떤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 만약에 우리 쪽에서 관련한 일을 하다가 적발되면, 모든 사업을 철수한다고 해. 그러니, 카쿠르터에게 괜한 일을 벌이지 말라고 당부해 줘. 승기와 효상이도 더는 이야기 말고.”
이유는 모른다. 사업적인 면에서 정호 님은 아들에게도 가차 없다.[225] 관련한 일을 상신[226]할 때마다, 욕먹는 역할은 우현이라서다. 본사와 연락은 우리 중 우현이만 하기에 정호 님과 임 대표 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호 님과 회의가 끝난 후, 임 대표의 표정은 모든 상황을 전달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늘도 엄청나게 깨졌구나. 그러고 보면, 레벨 1 달성 이후, 우현이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호 님과 회의가 끝나면 괴로워 보인다. 살도 좀 빠진 듯하다. 사업 설명회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이마의 주름살도 지금은 선명하게 보인다. 며칠을 잠들지 못한 퀭한 눈과 눈그늘인지 검은 반점인지 기미인지 알 수 없는 게 눈 아래에 보인다. 피부도 푸석하게 느껴진다. 우현이의 괴로운 상황을 충분히 전달한다. 무엇이 그리 괴로울까? 우현이는 회사대표라서 나와 승기가 모르는 무거운 짐을 지는 듯하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흘러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현이의 특유한 너스레 떠는 웃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안심한다. 그렇기에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거대한 유토피아를 완성하려면, 믿을 수밖에 없다. 블루 고스트를 믿을 수밖에 없다. 우현이의 괴로움은 대의를 위해 짊어질 왕관의 무게다. 프로젝트의 명운을 짊어진 우현이가 안쓰럽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처럼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다모클레스의 칼은 나를 노린다.
어쩌다 보니, 꿈을 꾼다.
어쩌다 보니, 어깨가 무겁다.
어쩌다 보니, 두렵다.
어쩌다 보니, 포기해야 한다.
어쩌다 보니, 극복해야 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말고,
인생에서 확실한 게 있다면
참 좋겠다.
21. 근래에 들어서 임 대표의 근태관리는 엄격하다. 근태관리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필요하다. 임 대표 또한 레벨 2로 덩치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엄격한 근태관리가 직원의 사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효상아, 승기야. 사모투자 전문회사로서 제법 덩치가 커지는 중이야. 레벨 1을 지나서 레벨 2로 진입하는 시점이기에 모인 투자금의 액수도 제법 돼. 다만, 규모의 경제가 커진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지. 회사가 물리적으로 커지지 않으니까. 직원이 늘거나, 사무실이 커지거나, 시설이 좋아지거나, 유명해지거나, 뭐가 있어야 하는데, 블루 고스트는 완고해. 규모의 경제가 커지기를 원하지 않아. 그래서 블루 고스트는 근태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임 대표 말이 맞다. 규모의 경제가 그대로라면, 적어도 늘어나는 투자금을 직원이 알아야 회사가 성장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투자금의 규모는 나와 승기 그리고 임 대표만 공유한다. 그렇기에 직원은 현재 이 회사가 성장, 정체, 혹은 쇠퇴 중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라면, 직원은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으로는 일을 집중하기 어렵다. 집중하기 어렵다면 일의 성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악순환은 자기의 운명을 회사에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한다.
회사가 견고하다면,
고용 계약을 종료하지 않는 한
이직을 결심하는 직원은 없다.
22. 카쿠르터를 모집하려고 진행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종료한 이후로 사무실에 일하는 직원은 얼마 없다. 서비스의 종료로 회사의 규모가 작아진 것 같다. 관련한 직원과 계약을 종료해서다. 남아 있는 직원이 보기에는 이 회사가 제대로 굴러간다고 느낄까? 그렇기에 근태관리로 회사의 체계를 보여준다면, 회사가 점점 견고해진다고 직원은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결국, 회사에 대한 직원의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규모의 경제가 없는, 작은 회사는 대부분 체계가 없어서다. 그것 아는가? 체계가 없을 때는 스스로 자유인지 방종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더욱더 불안하다. 예를 들어서, 휴가라는 개념을 생각하자. 학교, 회사, 군대 등에서 일정한 기간을 쉴 때 휴가라고 말한다.[227] 학교, 군대, 군대라는 게 결국 시스템이다. 이러한 제도권 안에서 쉴 때 휴가라고 칭한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다. 돌아갈 곳이 있다면, 빈둥거림은 열심히 일한 정당한 보상인 거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없을 때 쉰다면, 휴가 중이라 하지 않는다. 그냥 논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통장에 돈도 없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몇 개월이나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아니 놀 수 있을까?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누리는 자유는 공포 그 자체다.
to be continued....
[220] 허허벌판: 끝없이 넓고 큰 벌판.
[221] 천지개벽 (天地開闢): 자연계나 사회의 큰 변동을 비유하는 말.
[222] 심복 (心腹): 매우 요긴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물.
[223] 해소 (解消): 이제까지의 일이나 관계를 해결하여 없애 버림.
[224] 음산(陰散): 분위기 따위가 을씨년스럽고 썰렁하다.
[225] 가차 없다 (假借): 조금도 사정을 보아주거나 너그러움이 없다.
[226] 상신 (上申): 웃어른이나 관청 등에 일에 대한 의견이나 사정 등을 말이나 글로 보고함.
[227]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