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두 번째 프리퀄 이야기 시작합니다.
“안효상 cresc. (크레셴도)"
“안효상 mf (메조 포르테)”
“안효상 fff (포르티시모)”
전등이 흔들리고 전구는 깜박깜박한다. 지진이 난 것인가? 미확인 재난을 대비하려고 몸을 웅크려 탁자 아래로 들어가 탁자 다리를 힘껏 붙잡는다. 세상에 없는, 설명할 수 없는 특유의 고주파로 누군가가 날 애타게 부른다. 정말 듣기 싫은 데시벨 수치의 소리다. 하지만 소음은 아니다. 그래, 소음은 분명하게 아니다. 내게는 이어폰을 끼지 않는 한, 밖에서 들리는 소음을 자동으로 차단해 주는 신체기능은 없다. 하긴 무언가에 집중하면 주위 소리가 자체적으로 음소거가 되기는 하네. 이것도 인간의 신체기능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애타게 찾는 미확인 소리가 흑마술 주술처럼 무언가를 집중하게 하지 못하도록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미국 드라마, "슈퍼내추럴(Supernatural)"에서 윈체스터 형제는 악한 영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바닥에 소금을 뿌려서 원을 만든다. 난 지금 소금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금부터 다루려는 소재가 소음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 들을 때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해 없던 힘도 생기게 하는 필요악이라 말하는 게 적당하겠다.
내게는 소음의 기준이 있다. 십 대 시절,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가 있었다. 어디선가 불현듯 다가와 “효상아!”라고 뒤에서 소리쳤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주파 덩어리인 엄마의 잔소리를 뛰어넘는다면, 그런 데시벨의 수치라면 내게는 소음이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이기기 어렵다. 그런데도 엄마의 잔소리보다 교감신경을 자극해 집중력과 기억력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아드레날린 분비제가 또 있을까? 더군다나 공짜였네. 무채색 사회의 어른 세상은 쓴소리와 비난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 자기 우위를 점하려는 속셈이 눈에 뻔한데도 비난이 아니라 쓴소리라 말한다. 진심으로 걱정해 상대방에게 건네는 매운맛인 쓴소리를 의도와 관계없이 비난으로 오해한다. 도대체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옛 성인의 말씀처럼 침묵을 금이라 생각해야 할까? 2021년, 자기 PR(Public Relations)을 하지 않으면 나의 가치를 봐주지 않는 무채색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입을 닫고 사는 게 현명한 대처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무채색 사회의 성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외적으로 쓴소리를 쉬쉬하면서 희한하게도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의 순서만 다를 뿐, 쓴소리와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쓴소리를 조언의 몸짓이 아닌 비난의 철퇴로 생각하는 이곳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사는 게 참 어렵다. 안 그런가?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실현해
구체화한 제품은 무엇일까?
‘옳음의 가치’를 멀리하고
‘다름의 오만’을 강조하는
무채색 사회이지 않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