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세상 밖으로 던져져 가족을 만나는 과정은 수동적이지만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은 올곧이 자기 선택이다. 즉, 가족 이외의 모든 관계는 본인의 생각과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다만, 물리적 제약을 초월해 새로운 관계를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도 없다. 물리적 제약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의 폭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지만, 물리적 제약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은 순전히 자기 선택이다. 물론, 물리적 제약을 초월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거나 이주할 수 있다. 결과의 여부를 떠나서 이는 올곧은 나와 당신의 선택이다. 내게는 글쓰기가 물리적 제약을 초월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려는 과정의 도구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 선택으로 창조한 자기만의 도구로 주어진 환경을 초월하려 노력하거나, 주어진 환경에서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이루려는 과정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바탕으로 한 자기경영(self-management)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잔소리는
내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알려준
첫 번째 자기경영(self-management) 교육이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십 대 시절 엄마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지금 어떠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지낸 십 대 시절 때 엄마의 나이는 고작 30대였다. 지금의 나보다도 한참 어리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30대까지는, 그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선동꾼의 위험한 속삭임에 휩쓸려 그 무엇도 뜻을 세우지 못했던 시기였다. 40대를 지나 50대로 향하는 나이가 되어 보니 십 대 시절에 자식으로서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여 요구했던 모든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입고 있는 옷, 내 손에 쥐어진 과자, 내 방 안에 있는 가구 등, 이 모든 게 주어진 당연한 환경이라 믿었다. 그 당연하고 행복한 환경 중 딱 하나만 내 신경을 거슬렸다. 그것을 원하지도 않음에도 늘 내 옆을 맴돌았다. 너무나 괴로웠다. 엄마의 잔소리다. 엄마의 잔소리 부류는 다양하다. 욕실 예절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자기 전에 양치하라는 잔소리,
치약을 아래에서부터 짜라는 잔소리,
양치할 때 혀를 꼭 닦으라는 잔소리,
위에서 아래로 칫솔질을 하라는 잔소리,
양치를 3분 이상 하라는 잔소리,
세수할 때 물을 틀어놓지 말라는 잔소리,
세수할 때 귀와 목까지 씻으라는 잔소리,
발을 세면대에서 닦지 말라는 잔소리,
샤워 후 욕실의 물기와 머리카락을
제거하라는 잔소리
열거하면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 엄마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하라는 모든 것을 반대로 했다. 청개구리였던 것 같다. 청개구리는 비가 올 때마다 물가에 묻은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불안해 크게 운다. 깨달음은 지난날을 후회해야 얻게 되는 잔인한 선물이다. 지난날을 후회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대부분 후회의 대상이 사라지고 난 후다. 불효자가 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부모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비로소 불효자라 생각하니 말이다. 다행히도 청개구리의 슬픈 깨달음을 얻기 전에 후회를 시작해서 부모님 모두 내 곁에 있다. 지난날을 후회하여 뒤를 돌아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는 엄마의 잔소리였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엄마의 목소리가 뒤돌아서 생각하면 그런 목소리도 정말 없다. 그렇게 듣기 싫다고 이야기해도 끊임없이 같은 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정말 없더라. 지금껏 한 명의 엄마만 만났기에 다른 엄마가 자녀를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알지 못한다. 엄마는 잔소리로 단 한 번도 타인과 지내는 법을 말하지 않았다. 타인과 지내는 법은 사회생활을 통해 깨닫게 될 경험이다. 오히려 타인과 지내는 법을 내부에서 가르치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면이 탄탄해야 한다. 탄탄함의 정도는 평소 혼자 있을 때 생활습관을 통해 알 수 있다.
“홀로 있을 때 조심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엄격한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남이 볼 때 근신하는 차원을 넘어서 혼자 있을 때도
존엄성을 잃지 말라는 ‘중용’의 가르침이다.”[15]
to be continued....
[15] 조윤제,『다산의 마지막 공부』, 청림출판, 2018,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