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26.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예의 없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자기 영역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관계를 진전하려면 상대방의 영역에 들어서야 한다. 자기 진영에서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평균 초혼의 나이가 높아진다. 또한, OECD에 가입한 국가에서 대한민국은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 [68] 높은 초혼 연령과 저출산 국가인 대한민국,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느 진영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MZ 세대라면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한다. 현실적인 요소에서 국가의 존속을 걱정하는 순위는 아마도 뒷순위 거나 고려사항에 없을 수 있다. 결혼해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그 기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예측한다. 누군가는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는 연애만 추구한다.
MZ 세대는 결혼생활을 인생의 마이너스라 생각하는 이가 많으며, 동반자만 곁에 있다면 결혼할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또한, 전통적 결혼제도를 현재의 자기희생을 동반한 족쇄라 느끼며, 갈수록 커지는 자녀의 양육 부담 가중으로 자기의 삶이 아이에게 묻힐까 두려워한다. [69]
반면에, MZ 세대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기성세대는 이렇게 말하겠지.
아니다, 잘못된 생각이다. 결혼 문제를 이처럼 단순하게 기회비용을 예상해 선택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 이어서다. 또한, 자기 행복과 나라를 유지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너희는 삶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행복을 포기하는 일이다. 나라를 포기하는 일이다.
27. X세대인 내 생각은? 어차피 답 없는 싸움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MZ 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감정은 무엇일까? 안타까움일까? 부러움일까? 답답함일까? 멸시일까? 분노일까? 그 감정이 무엇이든 MZ 세대의 진영 안에서 일어난 감정은 아닌 게 확실하다. 반면에,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종착지가 행복의 신기루[70]에 불과한 기존 시스템을 따르라는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MZ 세대의 감정은 무엇일까? 안타까움일까? 부러움일까? 답답함일까? 멸시일까? 분노일까? 그 감정이 무엇이든 기성세대의 진영 안에서 일어난 감정은 아닌 게 확실하다.
밖에서 볼 때는 도긴개긴인데,
안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명분 있는 싸움이다.
28. 그래, 승기를 보노라면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하다. 검기를 뿌려 자기 영역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베는 무림의 고수처럼 행동해서다. 승기는 허락 없이 무단으로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자를 가차 없이 베어 버린다. 문제는 긍정적 관계를 위한 진전 역시 무단침입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다 베어 버린다. 무쌍 모드다. 시베리아 기단이 몰고 온 세상에서 가장 한랭한 단어만을 선택해 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린다. 마음은 말한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무시했기에 가능하다고. 하지만 승기는 다른 사람이 자기 영역을 침범했기에 응수했을 뿐이라 말하고 있다. 마음은 그래서 화가 난다. 승기를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다. 옆에서 대부분 논쟁 상황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승기의 술주정은 난감하다. 그들이 먼저 승기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마음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승기가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공감 능력 장애가 있다고 느낄 정도다.
마음은 말한다.
승기는 다른 이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 유형이라고.
내가 왼손잡이인 것처럼.
29. 과장님과 술자리 이후로 그동안 말을 아꼈다. 머리가 시켜서다. 승기는 형 같은 존재다. 아니, 회사 동기이지만 물리적으로 한 살 많은 형이다. 머리는 말한다. 두리안의 맛을 즐기라고. 시간이 지나면 승기의 예상은 신기할 정도로 거의 다 맞는다고.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마음도 승기를 좋아한다. 냉랭한 언어로 많은 사람과 다툼은 있지만, 자기의 이득을 고려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저열한 사람은 아니라고 굳게 믿어서다. 승기는 상대방이 누구라도 개의치 않는다. 상황이 올바르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마음이 보기에는 승기의 행동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행동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다들 공감하리라 믿는다. 반면에, 난 누구와 논쟁할 깜냥도 없지만, 감정을 표출해 나를 알리기도 힘들다. 소질이 없다.
머리는 말한다.
소질이 없으면 승기를 닮으라고
30. 머리의 조언을 이해한다. 나도 승기를 닮고 싶다. 소질이 없다고 감정이 없는 게 아니어서다. 승기는 깊숙하게 박혀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상대방의 티눈을 마취 없이 무자비하게 뜯는다. 승기의 특제 사이다 맛은 청량함을 넘어서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정말 속 시원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우현이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그래, 오늘 네 놈의 상대는 바로 나, 안효상이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덤벼라!
“효상아, 그래, 내가 말이 좀 심했다. 오늘 이후로는 이 사건을 더는 입 밖에 꺼내지 말자. 해리포터 영화 기억나지? 그러한 취지로 ‘볼드모트 사건’이라 부르는 게 어때?”
난타전을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싱겁게 끝났다. 오히려 다행이다. 이길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볼드모트 사건’은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다를 바 없는, 다시 한번 인생을 역전할 기회인, 정말 진짜였으면 하는, 그런 달콤한 이야기를 우현이가 제안한다.
“승기야, 이번에는 진짜야. 3년 전, 볼드몰트 사건과는 전혀 다르다고. 효상이도 좋아할 거야. 나 그럼 미팅이 있어서 다음에 이야기해. 곧 만나자.”
우현이는 짧은 메시지를 단톡방에 남긴 후 사라졌다.
“효상아, 볼드모트 사건 때도 느꼈지만, 우현과 관련한 일은 네가 쉽게 흥분하는 것 같아. 우현이도 소중한 친구지만, 넌 내게 특별한 사람이야. 우현이가 던지는 모든 이야기가 낭설이라고 믿지는 않아. 다만, 출처 없이 떠다니는 소문을 누군가는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현과 너를 위해서도. 곧 자세하게 말해준다고 하니, 지켜보자고. 곧 봐.”
승기는 장문의 메시지를 단톡방에 남긴 후 사라졌다.
난 꿈을 꾼다.
3층짜리 빌라를 지어서
셋이 함께 사는 꿈.
옥상은 잔디를 깔아
예쁜 테라스로 만들어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를 하고
지하실은 작업실로 만들어
옥신각신하며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
우리 셋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 친구
우현이와 승기가 함께라면.
[68]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아이를 안 낳고, 아이를 낳더라도 가장 늦게 첫째 아이를 가지는 나라로 꼽힌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회원국 평균(2019년 기준)인 1.61명의 52.2% 수준이다.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꼴찌를 기록한 것은 벌써 7년째다.” (출처: 박세인, 『청년층 절반 '나홀로족'...혼자 즐기는 문화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일보, 2021.08.25.,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82511340002227?did=GO )
[69] 허민 외 3명, 『“결혼은 족쇄·하이리스크”… 2명중 1명 “안해도 된다”』, 문화일보, 2021.06.30.,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63001030842000001
[70] 신기루 (蜃氣樓): 광선의 굴절로 인하여 엉뚱한 곳에 어떤 사물의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