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타일 6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무채색 사회로 진입해야 하는 중요한 20대 시절에 6년을 함께한 나의 출신학교는 시간을 낭비한 대표적 사례일지도 모른다. 졸업하는 순간까지 이력서와 면접만 잘 준비하면 나 하나쯤 받아주는 곳이 있을 거라고 자만했다. 처음에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때 이력서를 수정하거나 면접을 열심히 준비하면 내게도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로 믿었다. 서른 군데나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까 이제는 알겠더라. 이들은 졸업 후, 반짝 열심히 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대학을 다녔던 6년간의 세월로 나를 평가한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훌륭한 잠재적 신입 직원처럼 보이려고 이리저리 면접의 고수라 불리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날린 돈만 허무할 뿐이다. 하긴 몇 개월 반짝 준비한다고 각 분야의 잔뼈가 굵은 면접관을 속이는 게 가능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누군가의 목에 걸릴 사원증을 편취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설사, 면접관을 속여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다 한들, 면접장에서 비친 거짓된 모습으로 회사에서 1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출신학교와 부끄러운 학점을 배제하고 오직 시험 점수로 공무원을 채용하는 조건은 과거의 나를 툴툴 털어버리고 새로운 나를 그려갈 수 있는 마법의 주문서처럼 보인다.



수많은 청년이 공무원 수험생이다.

이들 모두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새 출발하고 싶은 걸까? 


나처럼 마법의 주문서가 필요한가 보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이 공간에 머물지도.






공무원 수험서 공간에 사람이 북적거렸지만 그렇다고 수험생으로 살아갈 마음은 없다. 사마천처럼 거세의 치욕을 감당하여 절망의 나락으로 고꾸라졌을 때 마음을 다잡아 불후의 명작인 사기(史記)를 집필할 자신이 없어서다. 왠지 수험생의 길은 수많은 추억이 쌓인 나의 시간을 거세해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서다. 보잘것없는 학교에서 볼품없는 학점을 받으려고 보낸 시간만큼은 값지다고 믿기에 그렇다. 수험서 공간에 모인 수많은 나를 마주하니 그런 값진 시간을 철저하게 부정당한 기분이다. 서점은 요즘 세상의 신기하고 진귀한 정보를 소개하는 만화경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맞다. 서점은 그런 곳이다. 수많은 나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만화경의 조그만 구멍으로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만나러 이곳에 사람들은 모인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동떨어진 곳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논하고 있다. 서점은 우리가 어떠한 처지로 살아가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무리를 지어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제목의 책을 펼치는 타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 동질감을 더는 마주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 동질감을 요즘 스타일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스타일은 비참한 내 현실을 벗어나고픈 썩은 동아줄이다. 그렇게 많은 이가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있다. 썩은 동아줄을 잡는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서점은 나쁘지 않다. 서점을 너무나 사랑한다. 하지만 오늘따라 서점은 요즘 스타일이라는 허울 아래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청춘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제어탑처럼 보인다. 자기 인생의 행복과 무관한 쓸데없는 지식을 보기 좋게 포장해 많은 청춘을 꼭두각시처럼 홀리는 게 서점은 아닐까? 이 공간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꼬였는지 보기 어렵다. 모두 같은 방향 이어서다. 요즘 세상의 흐름을 말해주는 서점을 한동안 멀리하려 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현재가 아닌 옛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와 전혀 접점이 없는 공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새벽에 일어나 옹달샘에서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 토끼의 심정일지도.


요즘 스타일? 악마의 속임수?

난 사양하고 싶다.






다시 2021년 현재로 돌아와 말을 이어가면,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이 자기 색을 잃어 일률적으로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현상을 우려한다. 미시적 관점이 아닌 거시적 관점으로 경제를 바라보면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잠시 철학 강사가 아닌 경제학도의 시절로 돌아가려 한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내 학생이라 가정하고 강의하는 느낌으로 말하려 한다. 말투가 변해도 이해했으면 한다.



강의 준비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릴게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