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짧은 눈 맞춤과 긴 입맞춤

by 영아


우연히 마셨던 밀크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지 목이 말랐을 뿐이었죠. 시원한 걸 찾다 눈에 띈 한 잔이었고, 별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맛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카페를 들리면 밀크티에서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맛을 찾아 자꾸 손이 가기도 했습니다. 달달한 건 입에도 대지 않던 제가 우연히 마신 밀크티로 인해 우연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빌려 쓴 볼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필요해서 빌렸을 뿐인데, 써보니 손에 잘 맞았고, 쓰면 쓸수록 나와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저 잠깐 쓰다 말 줄 알았던 펜은 어느새 십 년째, 내 손에 쥐여 있습니다. 닳고 다 써도 같은 펜으로 구매하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우연히, 너무나 우연히라 깨닫지도 못했던 사실을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단한 의미도, 깊은 애정도 없었습니다. 스치듯 지나갈 줄만 알았던 것들이었고, 그저 잠깐의 취향쯤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내 것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우연히 스며든 것들이 취향이 되고, 삶이 되었습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스쳐 갔다. 인파 속 어딘가, 같은 공간에 있었고, 같은 시간대를 지나쳤습니다. 몇 마디 나누고, 가볍게 헤어졌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름도 잊고, 얼굴도 흐렸으며, 마음에 남은 감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이름도 없이, 표정 하나로. 말투가 익숙해지고, 함께한 시간이 선명해졌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말이나 웃음소리가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나누던 인사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휘청이며 주고받던 인사가, 이제는 먼저 손을 흔들고 웃게 되는 관계로 변해 있었습니다. 스치던 날들이 조용히 겹겹이 쌓였고, 그 무게가 저도 모르게 마음을 눌렀습니다. 가벼웠던 대화는 어느새 깊어졌고, 흐릿했던 존재는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마음에 스며들어 있었고, 어느 순간 서로의 하루에 당연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짧았던 눈 맞춤은 기나긴 입맞춤이 되었습니다. 가벼웠던 시작이, 입술을 기댈 만큼 가까운 사이로 이어졌습니다. 스쳐 갈 줄만 알았던 사람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앉은자리는 따뜻했고, 그 온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가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다가왔고, 오래 머물지 않을 것 같던 것이 조용히 곁에 남았습니다. 멀어질 줄만 알았던 이들이 삶에 스며들 듯, 그렇게 인연은 자리를 잡아갑니다.

어쩌면 삶은 우연의 반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마주친 것들이 마음에 남고, 그 마음이 쌓여 하루를 만듭니다. 스쳐 간 것들이 취향이 되고, 삶이 되고, 결국 서로가 되는 것처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깊어지고, 무심했던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듯이.

그래서 우리는, 지나쳐간 것들을 쉽게 단정하면 안 됩니다. 그 짧았던 눈 맞춤이, 기나긴 입맞춤이 될 수 있으니까요. 찰나의 순간이 영원을 바라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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