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외사랑

by 영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일, 그 일을 해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정말로 사랑으로 읽히기까지는, 도대체 어떤 마음의 과정이 필요할까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 몇 계절을 품고, 하루에도 수차례 상대의 이름을 마음속에서 되뇌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사소한 말투와 손짓까지 외워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요.


오늘 저는 사람의 마음을 바다에 빗대어보고자 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바다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바라본 바다의 수평선은 한없이 펼쳐져 있으며, 그 선들은 마치 고요한 숨결처럼 평온하게 놓여 있습니다. 바람이 불기 전까지, 천둥이 몰아치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바다의 중심에 도달하기 전까지는요.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일은 물에 빠질 각오를 한 채, 망설임 없이 바다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걸어간다’는 행위는 의지를 전제로 한 능동의 움직임이지만, 사랑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은 때로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마음속에 자리합니다. 어느 날 문득, 별다른 의미 없이 바라보던 사람이 괜히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그 사람 앞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그 어색한 틈에서 사랑은 속수무책으로 밀려와 어느새 모래사장 끝자락에서 감정을 요동치게 만듭니다.


그중에서도 외사랑이 더욱 무서운 이유는, 그 파도가 어떤 바위나 장애물에도 가로막히지 않은 채 끊임없이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멈출 줄 모르는 감정의 파동은, 되려 상처를 더 깊게 남깁니다. 용기가 부족하여 고백조차 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거절당했다면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멀어지는 것은 두렵고, 다가가는 일은 더더욱 두렵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망설이는 사이, 마음은 더욱 깊어지고 감정은 더 복잡해집니다.


깊어진 감정은 행동에 반영되며, 말투는 조심스러워지고, 표정은 숨기려 해도 자꾸만 드러납니다. 감추려 할수록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되고, 어느새 내 말 한마디, 웃음 하나에도 상대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상대방은 그 변화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나 역시도 이 감정의 무게에 눌려 점점 스스로를 가두게 됩니다. 도망치려 한 그곳이 되려 감정의 늪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깊이 빠져버리고 맙니다.


이내 머릿속은 온통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말하지 못하는 마음은,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습니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고, 다가가고 싶지만 티가 날까 봐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는 어쩌면 용기의 부재일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이 감정이 들켜 지금의 관계가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용기, 두려움. 이러한 단어들은 외사랑을 겪는 이들에게 있어 자주 스스로를 설득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누군가를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도, 그 입을 꾹 닫아버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애달픈 일입니다. 함께 나눴던 일상의 대화, 웃음, 눈빛 하나하나가 다시는 같은 마음으로 기억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결국 혼자만의 기억으로 고이 접어두게 됩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사람은 여전히 평범하게 웃고 평범하게 다정한데, 나는 그 평범함조차 마음속에서 특별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준 것 같아 하루 종일 그 장면을 반복하다가, 내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는 기대에 부풀었다가도,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허물어집니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 착각 안에서조차 잠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니 외사랑이란, 결국 혼자 만든 영화이며, 혼자 끝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봐주지 않고, 박수도 없으며, 막이 내려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마음을 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면서도, 그 감정 안에 분명 존재하는 무언가—말하지 않아도 선명한 감정의 진실—그것 하나 때문에. 끝내 드러낼 수 없으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마음 하나 때문에 말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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