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세상

반죽될 얼굴

by 영아


오래도록 누워있다 보면 앉아 있는 법을 까먹게 된다. 앉아있는 법을 까먹게 되면, 서 있지를 못하게 된다. 덩그러니 누워있는다. 긴 시간을 그렇게 누워있는다. 모든 게 빛을 받고 발할 동안 그 자리 그대로 버티고만 있다. 왜 버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누구에게는 이 시간이 최고의 노력일 테니까. 스스로를 사랑해 보기 위한 사투이자 처절한 외침일 테니까. 그리하여, 최대의 버팀을 침대 위에서 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


이불속에 묻힌 채로 눈을 뜨고 감는 동안, 수도 없이 울고 울었다. 눈물 자국이 굳어간 베개를 얼굴에 묻는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물었던 이불, 그 이불을 물었던 잇자국 따라 생긴 자국까지 전부 끌어안는다. 파묻혀 울고 울다 보면 눈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메마른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과 침으로 뒤덮였던 얼굴이 그대로 점차 말라간다. 반죽되고 발효되던 빵이 구워지지 못해 썩어가는 것처럼. 썩어가던 반죽을 구웠더니 못나게 굳어버린 것처럼. 사람이 우울을 만나 시간을 스치게 되면 살아가지 않는다. 억지로 살아내게 된다. 더이상 쏟아낼 에너지가 없어 그대로 멈추게 된다. 못난 나를 잘 알기에 누구보고 나를 좀 먹어주세요. 할 수도 없고, 스스로 부술 수도 없는 딴딴한 빵이 된 채로 점점 죽어간다.


눈물까지 말라버린 얼굴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깨질 것 같다.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것처럼. 혹은, 꽃병이 물을 뿜고 꽃을 내동댕이치며 깨지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얼굴을 조심스레 감싼다. 다시, 이불이라는 보자기로 나를 데려간다. 웃지도 울지도 못한 나를 감싼다. 세상이라는 곳에서 땅으로 투신하고 싶은 바람까지 이불에 묶어둔다. 수틀리면 죽어버릴 거란 독한 맘도 잠시 가둬둔다. 일어날 힘이 없으니 일단 오늘은 다시 누워본다. 잠으로 도망치며, 현실을 외면하며. 굳은 얼굴을 숨기며.


눈을 감는다. 창문 틈으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린다. 몸을 뒤척인다. 잠이 얼른 오라는 듯 이불 속에 파묻혀 본다. 목이 말라온다. 일어나보라는 몸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어서 손을 뻗어본다. 물통이 비어있다. 조금 더 걸어서 물을 가져와야 한다. 귀찮지만 걸음을 옮겨본다. 얼굴에 마른 조각들이 떨어지기 전, 두 다리를 휘적여본다. 손에 넣은 생수통을 연다. 입을 대고 생수를 넘긴다. 마음에는 가닿지 못할 물방울일 뿐이지만, 불타는 목구멍은 살려낸다. 그러고는 다시 침대에 눕는다. 울고 웃던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눈을 감는다. 왜 이지경이 되었냐는 말로 나를 다시 아프게 한다. 이어, 이겨내려는 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잠에게로 걸어간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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