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은 모르겠고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건 사람의 욕심이고 마음이다. 하루 종일 자다 보면 잠이란 게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가 온다. 지금 깨어 있다는 사실이 거짓인 것만 같다. 잠에 취해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구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떠 있는 눈이 역겨워 잠을 부른다. 침대에 눕자마자, 이불을 끌어안고는 깊이 잠들고 싶다.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잠은 나에게로부터 달아나기 시작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정신이 말짱해진다. 억지로 감으려 해 보아도 깨어난 감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감지 못한 두 눈을 향해 시간이 정면으로 꽂힌다. 1분 1초가 섬세히 내게 스며든다. 시간은 더 흐르지 않을 것처럼 느리게 흐른다. 이 고통과 권태가 영원하리라 착각하게 만든다. 그 시간 속에 서서히 잠식되어 숨을 끊고만 싶어진다.
돌덩이가 되어버린 휴대전화를 켜본다. 멈춘 시간을 흘리기 위해서이다. 유튜브로 들어가 영상만 본다. 그때 영상 위로 연락들이 날아든다. 그 어떤 연락도 받지 않은 채로 귀랑 눈을 사로잡을 영상만을 계속해서 틀어둔다. 지루해질 때 즈음, 다른 영상을 찾기 위해 돋보기 버튼을 누른다. 그 버튼을 누르다, 방금 온 친구의 연락창을 누르게 된다. 의지와 관계없이 억지로 그 취조장에 입장하게 된다.
별로 친하지도 않던 친구가 묻는다. “야 도통 연락이 없어. 뭐 하고 지내?” 연속으로 날아온 갈고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심문하듯, 나를 두고서 따지는 것처럼 들린다. — 당신, 왜 그렇게 살아? 지금 뭐 하고 사는 건데? —
난 친구에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답장을 보낸다. 꼴에 자존심은 남아서 누구에게도 깔보이기는 싫다. ‘우울이라는 시답잖은 병에 걸린 거 같아.‘ , ’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태야.‘
이 말들을 쉽게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입을 열면 무너질 것 같아서, 그저 입을 다문 채로 숨긴다. 말투 속에 숨겨진 불안감이 나를 더 작게 만든다.
“뭐 그냥 지내. 나 이것저것 하고 지내. 넌 잘 지내?” 나는 ‘그냥 지낸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그렇게 말하며 빠져나간다. 진짜로 물어볼 의도는 없다는 걸 알기에. 영상을 더 조심히 클릭한다. 던져지는 갈고리에 내 맘이 긁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도망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보았더니 고작 5분이다. 영상을 끄고 휴대전화를 닫으려던 그때, 친구에게서 답장이 온다. “나는 요즘 방황을 하고 있는 거 같아. “
그 말이 괜스레 반갑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큼 힘들겠어? 싶은 의구심이 반가움을 뒤덮는다. 남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맘이 충만치 못하기에 휴대전화를 끈다. 나만큼은 아니지 않겠냐는 뾰족한 말들을 전부 삼킨다. 목구멍을 통해 삼켜진다. 곤두 선 글자들이 마음속에 모인다. 그러자 괜스레 궁금해진다. ‘무슨 방황을 하는 것일까.’
두 눈 똑바로 뜬 채 하루를 보낸다. 낮과 밤이 불분명했던 내가 창 밖으로 비치는 해를 바라보며, 그 빛을 내 안으로 끌어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오늘 하루 한 번도 눕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깨닫는다. 얼굴에 조금씩 굳어진 표정이 풀려가고 있다는 것, 좋고 싫고 감사하고 짜증 나는 감정을 작게나마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밤을 새우고 나니 피곤하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피곤한 걸 보면, 나도 참 열심히 망가지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