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어도 남는 것

몸에 스며든 우울

by 영아

오랜 시간 몸을 씻어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면서도, 거의 매일.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 이상도 씻었다. 수용성이라던 우울은 결국 몸에 장착된 채 스며들었고, 잠시 환기된 마음은 밀려드는 안갯속에서 어쩌지도 못한 채 질식하곤 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몸이 붕 뜨고 숨이 가빠져온다고 한다. 시야는 흐려지고,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경우도 많다지.


이제는 좀 괜찮아졌니. 예전에 많이 힘들었으니까. 정신의 아픔을 꺼내는 일은 그 이후의 삶을 묘하게 바꿔놓는다. 알게 된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내게 묻는다. 그 순간마다 인생이 통째로 뒤집어지는 듯했다.


요즘은 좀 어떠니. 고통의 척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성의처럼 “괜찮다”라고 답을 건넨다. 괜찮아요. 그 말 뒤에 가려진 수많은 고통과 자해는 감춰둔 채.


그러나 깊은 밤이 왔다면 동이 튼다는 뜻이기도 하다. 희망적인 자리에 자주 쓰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이를테면, 그 누구도 보지 못할 곳에 그어둔 자해 자국이 팔목 쪽을 향해 서서히 뻗어 올라간다던가. 더는 감출 곳이 없어 손등까지 스며든다던가. 너무 깊게 그은 탓에 피가 멈추지 않는다던가. 삶이란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이라지만, 어쩌면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 깊게 그은 건지도 모른다.


모두가 잘 살고 싶어 한다. 잘 자고, 잘 먹고, 그렇게 잘. 잘 살고 싶어서 간절해진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 목표를 세운다. 하나둘 이뤄갈수록 욕심은 생겨난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들을 뿌리치지 못한 채, 우리는 점점 더 높은 목표를 세운다.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그때, 세상은 보란 듯이 우리를 떨어뜨린다. 건강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상실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결국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정신이 아프다는 건, 어쩌면 너무 앞만 보고 살아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멘탈이 약하거나 끈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지가 박약하거나 핑계 따위가 아니다. 너무 잘 살고 싶었고, 잘 살아오던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렸거나, 서서히 자신을 몰아붙였을 뿐이다.


감히 세상에 대고 외쳐보고자 한다. 마음의 병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매섭고 바보 같은 소리를 던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말이 없어도 그들은 이미 가장 매정하고도 마음 아픈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내가 문제야. 나는 의지박약이야. 그래, 이런 나는 살 이유가 없어.” 그곳에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무엇이든 내놓으라는 세상 속에서 건강까지 내어주며 자신을 버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다. 따스한 옆자리 하나일 뿐. 이래라저래라는 의사의 몫으로 남기고, 우리끼리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걸로 하자. 우리 조금만 더 서로를 안아주자.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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