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한 May 14. 2024

심리적 증상에 색 입히기

우리는 이전 글에서 두려움과 관련된 증상을 나답다고 말하며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증상이 나타날 때 생겨나는 힘겨운 감정에게도 나답다고 말하며 그 감정 또한 받아들여주세요. 그 증상과 감정은 지금의 나란 존재에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인정하는 거예요. 이렇게 인정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행동은 두려움과 관련된 증상을 극복하기 위한 외부적인 시도와 노력을 일단 모두 포기하는 거예요. 역설적이지만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동이에요. 지금 자신의 상태를 일단 그대로 두는 거예요. 무언가를 하고 싶을 거예요. 알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운동을 해볼까, 달리기를 해볼까, 악기를 배워볼까, 노래를 불러볼까,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 볼까.. 등등, 뭐라도 해서 더 나아지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이때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답니다. 다른 사람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저렇게 정상적으로 살아가는데,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이렇게 있는 것이 불안할 거예요. 그래도 용기를 내어 외부적으로 어떤 시도도 하지 말아 주세요. 제 경험상 지금 하려는 시도들은 오히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 나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답니다. 그러므로 일단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내면에서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르게 돼요.


포기라는 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과 싸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전에 없던 작은 여유를 얻게 돼요. 이 여유를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포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할 수 있어요. 그다음은 우리가 증상과 싸우려는 행동이 아니라 증상과 더 잘 공존하기 위한 어떤 행동일 거예요. 이전 글에서 저는 생각패턴들에 의해 머릿속이 두려움에게 맞추어진 편향된 세계로 구성되어 버린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여러 다양한 생각들이 생각패턴이라는 필터에 의해 제거되면서 나쁜 생각만이 살아남고 이 살아남은 나쁜 생각은 또 다른 나쁜 생각들을 덧붙여가며 성장하고 진화해서 결국 제 머릿속 생태계를 한쪽으로 치우친 세계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죠. 편향된다는 것은 다양성이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저를 괴롭히는 증상과 감정이 결국 다양성을 잃어버린 결과에 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 점에 주목했어요.  우리가 심리적 증상과 지금보다 더 잘 공존하기 위해서는 머릿속 세계가 잃어버린 다양성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어요. 잃어버렸던 다양성을 회복해야 증상과 좀 더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다양성은 우리가 극복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여유의 폭을 이전보다 좀 더 넓혀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여유가 넓어지면 증상은 여전하더라도 조금은 다른 시야로 증상을 보게 되어서 증상과 좀 더 잘 공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어떻게 하면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머릿속 세계에 다양성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존재를 찾아보았어요. 일단 제가 필요로 하는 존재는 증상과 감정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 안 되었어요. 제가 증상을 나답다고 말하며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한 이상 현재 나의 증상과 감정에게 어떤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지금 머릿속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지금의 감정을 일부러 기쁘게 만들지도 않고, 슬프게 만들지도 않고, 어떤 긍정적인 부정적인 영향도 감정에게 끼치지 않았으면 했어요. 다시 말해 지금의 생각과 증상,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다양성만 추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또한 이 존재는 가급적 언어의 형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는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감정이 언어의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너무나도 쉽게 나쁜 말들이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증상과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언어에서 벗어난 어떤 존재를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조건들을 만족하는 존재가 있을까? 이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색’이었어요. 색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고, 색은 생각과 감정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문화적인 요인이나 고정관념, 선입견 때문에 어떤 색을 보고 감정이 나빠지거나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건 외부적 요인 때문이고 색 자체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색은 종류가 다양해요. 간단하게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로 불리는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이 있고, 더 다양하게 나누면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색을 표현할 수도 있어요. 사실 언어의 영역을 벗어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촉각적, 미각적 영역 따위가 있을 거예요. 색은 시각적 영역에 속해 있어요. 다른 감각들도 다양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저는 여러 감각들 중에서 시각적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그 다양성을 제가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냄새 종류는 많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원할 때 바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필요한 건 제가 원할 때 그 즉시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였거든요. 색은 이 조건을 만족했죠.


이처럼 다양성을 상기시켜 줄 존재로서 ‘색’이 떠오른 후 저는 색으로 심리를 치료하는 컬러세러피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함께 떠올랐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컬러세러피를 찾아보았지만 기존의 컬러세러피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결을 갖고 있었어요. 현재의 컬러세러피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단 말이에요. 저는 가급적 색을 언어의 영역과 분리시켜서 다루고 싶었어요. 하지만 기존의 컬러세러피는 하나하나의 색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고 이 의미는 당연히 언어적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즉, 기존의 컬러세러피는 시각적 영역을 언어적 영역과 연결시키고 있었어요. 저는 언어가 증상과 감정에 쉽게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점을 눈치챈 후 바로 인터넷 검색을 멈추었어요. 저는 색에 의미를 넣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나름대로 색을 저의 증상과 어울리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이제부터 제가 색을 증상에게 적용했던 방법에 대해 살펴볼게요. 제 방법은 아주 간단했어요. 저는 이 방법을 [증상에 색 입히기]라고 부르는데요. 증상이 일단 나오면 그 증상에 먼저 주목해요. 저는 증상을 건드리거나 조작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 증상이 나왔구나. 역시 나답다. 그래 이게 나와야 나지.’라고 일단 증상을 인정하며 받아들여줬어요. 그런 후 그저 제가 그 순간에 원하는, 떠올리고 싶은 특정 색을 머릿속에 떠올렸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색이든 좋으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거였어요. 눈으로 물체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 어떤 색을 떠올리는 거죠.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눈을 뜬 채로도 원하는 색을 머릿속 화면에 떠올릴 수 있거든요. 지금 한번 해보세요. 아마 될 거예요. 색을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꼭 그 색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봐야 해요. 그저 보기만 하는 수동적인 작업이 아니라 내 머릿속으로 그 색을 출력시키는 능동적인 작업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증상에만 쏠려있던 우리의 주의력이 이 색 쪽으로 환기가 더 잘 되거든요. 이렇게 색을 떠올렸으면 그다음은 다시 나를 괴롭히던 기존의 생각, 심리적 증상에 주목하면 돼요. 색을 떠올린 후에 다시 증상으로 주의를 돌리는 거예요. 간단하죠? 이 방법이 바로 증상과 더 잘 공존하기 위한 [스텝 3]에요.


step 3. 생각, 심리적 증상에 색 입히기.

나를 괴롭히는 생각 또는 증상이 나타났다! -> 머릿속에 색 떠올리기 -> 다시 증상에 주목하기!


위 방법이 하나의 사이클이고 이 사이클을 한 번만 적용해도 되고 여러 번 적용해도 돼요. 여러 번 적용하면 다음처럼 되겠네요.

증상이 나타났다! -> 머릿속에 색 떠올리기 -> 다시 증상에 주목하기! -> 머릿속에 색 떠올리기 -> 다시 증상에 주목하기! ->....


사이클은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돼요. 뭔가 이전과는 다르게 좀 여유가 느껴진다 싶으면 멈추면 돼요. 너무 많이 해도 좋지 않아요. 색을 떠올리고 집중하는 것도 꽤나 힘든 일이거든요. 그러니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사이클을 적용할 때 증상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증상을 인정하고 이 증상에 단지 색을 덧칠하는 것뿐이에요.


사실 저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색 입히기를 할 때 대부분 가장 간단한 색들을 사용했어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들을 가장 자주 사용했고, 흰색, 검은색도 활용했죠. 파스텔톤의 색도 좋아요. 스스로가 떠올리기 쉬운 색을 사용하면 돼요. 색을 떠올리고 그 색에 집중해 보면 그 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는데 이 느낌을 받아들여도 좋고 만약 별로 느낌이 안 온다면 안 오는 데로 그냥 색만 떠올려도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하세요. 정답 같은 건 없으니까요. 색에 얼마의 시간 동안 머무를지도 자기가 결정하면 돼요. 자기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가 하면서 더 잘 찾아내 보세요.


저는 색을 더 잘 떠올리기 위해 핸드폰에 제가 자주 사용하는 색들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놓았어요. 그리고 수시로 이들을 보면서 색을 떠올리는 연습을 해보았죠. 색을 떠올릴 때는 머릿속 아주 작은 영역에만 색을 떠올려도 되고 아니면 머릿속 화면 전체에 색을 떠올려도 돼요. 그리고 그 색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그 색과 비슷한 정도로만 떠올려도 충분해요. 다시 말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방법은 자신이 찾는 거예요.


우리는 증상을 극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 더 잘 공존하기를 원했어요. 증상이 여전히 이전과 다름없이 나를 괴롭게 하고 감정이 이전과 다름없이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이렇게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하면 신기하게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그 증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돼요. 여전히 괴롭고 힘든 데도 불구하고 그 증상에 내가 색을 입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증상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져요. 이것은 그 증상 자체는 그대로여도 마치 조명 색에 따라 물건 색이 다르게 보이듯이 내가 그 증상을 조금은 다르게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해요. 증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증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찾고자 했던 방법이었죠. 증상은 그대로 두되 증상에 다양성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죠.


한번 색 입히기를 직접 해보시겠어요? 어떤 분한테는 잘 적용될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에게는 소용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는 걸 추천드려요. 저는 이 색 입히기를 통해 생각패턴이 저를 괴롭힐 때 꽤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색 입히기에서 색을 떠올린 후 다시 증상에게 주목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 그저 색만 떠올리고 멈춰도 되지만 그래도 일단은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보통은 증상이 힘들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색에 주목했다가 다시 증상에 적극적으로 주목하려고 하다 보면 그것을 피하려 했을 때와는 다르게 의외로 증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분명 증상에 빠져있을 때는 그것이 못 견디게 힘들었는데 색에 갔다가 다시 증상으로 돌아오려고 하면 그 증상이 조금 흐려졌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러니 한번 적극적으로 증상에 주목하려고도 해 보세요. 그러면 증상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줄 거예요. 피하려고 할수록 두려움은 그 피하려는 대상에 더 집중하게 하려고 한다고 했던 이전 글 기억하시죠? 아마 그래서 피하지 않고 다시 주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것은 직접 해보시고 어쩔 때는 해도 되고 어쩔 때는 하지 않아도 돼요. 그때그때 자신이 선택하면 되는 거예요.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 또는 심리적 증상에 색 입히기를 해보세요. 편하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돼요. 다음 글에서도 색 입히기에 대해 조금 더 말하도록 할게요.





이전 09화 극복하기에서 공존하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