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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한 May 21. 2024

색 입히기의 예



이전 글에서 우리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심리적 증상에 '색 입히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봤어요. 다시 한번 적으면 다음과 같아요.


[색 입히기] 나를 괴롭히는 생각 또는 증상이 나타났다! -> 머릿속에 색 떠올리기 -> 다시 그 생각 또는 증상에 주목하기


이것이 한 사이클이고 원하는 만큼 이 사이클을 반복하면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색 입히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나 증상을 없애려고 하거나, 바꾸려고 어떤 조작을 가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점이었어요. 그 생각이나 증상은 그 순간 나라는 존재에게 필요해서 나타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나답다고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없애려고 하는 의지를 갖는다면 두려움은 이 의지를 캐치해서 오히려 더욱 그 생각과 증상에 집착하게 만들 것이므로 우리는 그저 증상을 받아들이되 증상에 의해 편향되고 고착화되어 버린 머릿속 생각의 세계에 '다양성'을 추가하기로 했었죠. 그리고 이 다양성을 환기시켜 줄 존재가 바로 '색'이었고요. 색을 사용할 때는 단지 수동적으로 색을 보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능동적으로 그 색을 떠올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머릿속에서 색을 직접 출력할 때 그 색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증상에만 쏠렸던 자신의 주의력이 색에 의해 더 잘 환기된다고 말했었죠. 여기까지가 저번 글에서 말했던 내용이었어요.


이번 글에서는 제가 경험한 색 입히기의 구체적인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려고 해요. 하나씩 말해보도록 할게요. 조금 반복되는 말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평소의 저는 굉장히 불안했기에 아주 작은 사소한 일에도 커다랗게 놀라곤 했어요. 그리고 사소한 일도 사소한 일로 보지 못하고 뭔가 그 일에 어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해 버리곤 했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실수로 접시를 깨뜨렸다고 해볼게요. 그냥 깨졌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저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해요. ‘어? 접시가 깨졌네. 이건 뭔가 의미가 있는 걸까? 오늘 나한테 이 깨진 접시가 몸을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는 걸까?’ 또 다른 예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때마침 제가 횡단보도에 도착했을 때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어서 못 건넜다고 해볼게요. 그럼 저는 이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해요. ‘어? 왜 하필 지금 내가 딱 여기 도착했을 때 신호등이 바뀌었을까? 이건 나보고 지금 건너지 말고 뭔가를 위해 시간을 기다리라는 의미일 거야. 이 시간 지연으로 인해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이 끼쳤을 거야. 이 영향을 위해 신호등은 때마침 빨간불로 바뀐 거야.’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죠. 이렇게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일들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나마 두려운 미래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거예요. 이런 경우들에서 저는 색을 활용해 보았어요.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머릿속에 임의의 색 하나를 떠올렸죠. 그 색에 잠시 집중한 다음 그 색이 주는 느낌을 음미해 보았어요. 그렇게 잠시 색에 머문 다음에 다시 아까 떠올랐던 그 생각에게 돌아갔죠.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생각이 어쩐지 사소한 일로서 여겨졌고 그 생각에게 머무는 대신에 빠르게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수 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혹시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요. 이전에는 이 생각에 매여서 괴로워했죠. 이 생각에도 색을 입힐 수 있어요. 이 생각을 한 번 쳐다본 후 그 순간 원하는 색, 예로 주황색을 떠올려 봐요. 주황색에 주목한 후 다시 이 생각에 주목해요. 그런 후 다시 주황색을 떠올리죠. 그렇게 반복하면서 이 생각에 주황색을 입혀봤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여전히 그 생각이 저에게 머물러 있지만 가볍게 그 생각을 넘길 수 있었어요.


또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 때 제가 하는 이 말로 인해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나면 저는 이 때도 색 입히기를 했어요. 그러면 훨씬 수월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제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문득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 혹시 이 말을 해버리면 상대방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 아닐까?’ 실제로 나쁜 영향을 끼칠지 아니면 좋은 영향을 끼칠지 저는 정확히 알 수 없죠. 이전이라면 저는 엄청나게 두려워하며 이 말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동안 마비가 됐을 거예요. 이때 그저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임의의 하나의 색을 사용했어요. 그러면 그 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이 생각에 물들어 이 생각이 이전과는 약간 다르게 느껴지게 돼요. 이 느낌이 고민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것을 말할지 말하지 않을지를 좀 더 쉽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게 됐죠.


이처럼 보통 두려움이 어떤 고민을 만들면 이 고민에 언어적 고리로서 갇혀버리게 되는데 이렇게 하나의 색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언어적 영역에 갇혀버린 머릿속을 시각적 영역으로 잠시 환기시켜 고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저는 평소에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혹시 이렇게 말했다가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또는 나쁘게 생각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혹시 이렇게 행동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쁜 영향을 끼쳐버리면 어떻게 하지.’ 이때 색을 하나 떠올리면 환기가 되면서 좀 더 가볍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이라는 것을 주체적으로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 평상시에는 이것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두려움과 생각패턴이 주를 잡게 되면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실은 내가 한다기보다는 감정과 이미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몇 가지의 기본 생각에 의해 퍼져나가는 수동적인 행위가 되어버려요. 이러한 수동적인 행위인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언어로 된 생각이 아닌 색에 집중했던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색에 집중하며 생각들이 펼쳐져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머릿속 생각들을 조금 뒤에서 바라볼 수 있죠. 또한 언어는 나를 과거와 미래로 이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에 색을 떠올리려고 집중하면 시각적 영역에 있는 색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으로 나를 되돌려 놓을 수도 있어요.


또한 제가 정말 두려워했던 말 중에 ‘괜찮아.’가 있었어요.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사건이 잘 마무리될 거라는, 좋게 끝나게 될 거라는 말, ‘괜찮아.’ 하지만 저는 두려움이 만드는 생각패턴 때문에 이 말이 마음속에 떠오르면 갑자기 공포감이 생겼죠. ‘내가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면 미래는 반대로 내 뒤통수를 칠 거야. 그러니까 난 안도하면 안 돼, 지금 내가 불안해야 미래가 좋게 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괜찮아.’라는 말에 색을 입힘으로써 이전보다는 ‘괜찮아.’라는 말을 좀 더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실수를 한 이후에 제가 한 실수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자책을 많이 했었어요. 물론 실수를 한 후에 이것에 대해 피드백을 함으로써 다음에 더 나은 길로 가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정말 작은 실수에도 너무나 크게 괴로워했거든요. 피드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가까웠죠. 이 때도 제가 한 실수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그 실수에 색을 입혀보았어요. 그러자 그 실수를 바라보는 자신이 좀 더 너그러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저는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 때 두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이 선택으로 인해 잘못된 미래가 올까 봐 두려워했죠. 그래서 이전에는 최대한 많은 생각을 한 후에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도요. 하지만 너무 과한 생각은 오히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저는 선택에도 색을 입혀보았어요.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특정 색을 떠올린 후, 그다음 선택을 한 거죠. 이렇게 하니까 좀 더 편하게 선택을 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함으로써 저는 생각에만 갇히지 않고 좀 더 그 상황에서 이전보다는 여유를 갖고 선택할 수 있게 되었죠.


생각과 심리적 증상에 색을 입힐 때 주의할 점을 다시 말할게요. 무엇보다 기존의 생각과 증상을 절대로 없애려고 하면 안 돼요. 그 생각은 두려움 입장에서는 나를 지켜주려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어쩌면 적어도 지금의 나란 존재에게는 필요한 생각이거든요. 그 생각으로 인해 우리는 조심할 수 있고 안전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생각이 때로는 과하고 얼토당토 하지 않을 수 있고 나를 오히려 옭아맬 때 우리는 균형을 잃고 힘들어하게 되죠. 이때 그 생각에 색을 입힘으로써 균형을 다소나마 찾는 거예요. 그 생각을 없애지 않음으로써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작은 여유를 추가해서 이전보다 나은 상태를 찾는 거죠.  또 다른 주의점은 색에 언어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보통 빨간색은 정렬적인 색이고 자극적인 색이라고 하죠. 흥분했을 때 빨간색을 보면 더 흥분할 수 있다고요. 분명 이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꼭 이렇게 한정 지을 필요는 없어요. 저는 오히려 흥분했을 때 빨간색을 떠올리면 그 빨간색이 저의 흥분을 흡수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오히려 저는 차분해질 수 있었죠. 그러니 색에 미리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색은 색으로 놔두는 것이 좋아요. 그저 그 색이 주는 느낌을 음미하면 되는 거죠.  


이번 글에서는 색 입히기의 예들과 주의할 점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아마 색 입히기를 직접 해보시면 어떨 때는 도움이 되지만 어떨 때는 색 입히기를 하기 힘든 상황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하시다 보면 색 입히기가 분명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그때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게 될 수도 있죠. 또한 어떨 때는 색 입히기가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실 거예요.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 선까지만 색 입히기를 연습해 보시기를 바라요. 이 연습이 우리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생각에 생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색으로 반응하는 연습을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과 싸우지 않고 버티지 않고 최대한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단 지켜주면서 이 스텝들을 나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항상 밑에 깔려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몸과 마음에게 무리를 주지 마세요. 무리하면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될 수 있거든요. 다음 글에서는 색 입히기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른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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