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한 May 28. 2024

마트료시카 방법

////

껍질 위에 껍질 입히기: 마트료시카 방법

////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심리적 증상에 색을 입히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어요.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증상이 나타났다 -> 머릿속에 특정 색 떠올리기 -> 다시 그 증상에 주목하기


그런데 이렇게 색 입히기를 하다 보면 어떨 때는 이 과정에서 새롭게 자신을 괴롭히는 다른 생각이 떠오를 수 있어요. 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사용했던 한 가지 유용했던 방법을 소개해 볼게요. 저는 이 방법을 [마트료시카 방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러시아의 나무인형인 마트료시카는 인형 안에 그보다 작은 인형이 있고 또 그 인형 안에 더 작은 인형이 있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몇 개의 인형들이 인형 안에 반복해서 나오죠. 여기서 중요한 건 하나의 인형은 그 안쪽 인형들을 통째로 포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마트료시카의 이와 같은 특성을 저는 색 입히기에도 적용해 보았어요. 색 입히기를 하다 보면 가끔 또 다른 생각이 튀어나올 수도 있거든요. 두려움이 만드는 또 다른 생각이죠. 그러면 이때 저의 상황은 ‘[기존의 나를 괴롭히던 생각 + 색 ]+ 새로운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기존의 생각은 색을 입혔지만 새로운 생각은 이 색을 뚫고 나타났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다시 새로운 생각 때문에 괴로워질 수 있어요. 이때 마트료시카 방법을 사용하는 거예요.  현재 나의 상태, 나란 존재 전체를 통째로 하나의 묶음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기존의 나를 괴롭히던 생각 + 색 + 새로운 생각]을 통째로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에 다시 색을 입혀요.


마트료시카 방법: [기존의 나를 괴롭히던 생각 + 색 + 새로운 생각] + 색 입히기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새롭게 떠오른 괴로운 생각에도 다시 색 입히기의 효과가 발휘돼서 조금은 여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어요. 현재 내 머릿속 상태를 마치 풍선의 꼭지를 묶듯이 통째로 하나로 묶었다고 생각하고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포함해서 지금 내 상태 전체에 색을 입혀보는 것이죠. 내가 거대한 풍선이 되고 나 전체가 풍선의 꼭지로 묶이고, 이렇게 자신의 지금 상태를 하나로 묶었으면 이 묶음 바깥에서 다시 색이 풍선을 향해 비추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쩌면 위 방법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방법을 한 번 시도해보셨으면 해요. 물론 잘 적용이 안될 때도 있지만 조금 연습하면 꽤 유용한 스킬이 되기도 한답니다.


음, 그런데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색 입히기를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없었어요. 저는 어떤 상황을 두려움의 강도에 따라 세 단계로 분류해 보았어요. 1단계는 두려움의 정도가 약해서 일상적인 생각이 가능한 경우예요. 2단계는 두려움이 중간 정도로 강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생각이 가능한 경우예요. 3단계는 너무너무 두려워서 머리가 아예 돌아가기 힘든 경우예요. 그야말로 머리가 얼어붙는 거죠. 생각이 힘들 정도로요. 색 입히기는 1단계에 적용할 수 있고 2단계의 어느 지점까지만 적용이 가능해요. 그 지점을 넘어서는 두려움의 강도를 가진 2단계, 3단계에서는 적용이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너무 두려우면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린다는 것이 정말 힘들거든요. 색을 떠올리려면 머리가 집중을 해주어야 하는데 너무 두려우면 머리가 굳어버려서 색을 떠올릴 여지마저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색 입히기는 적당한 두려움에는 적용이 꽤 잘 되는 방법이었지만 너무 강한 두려움에는 사용할 수 없었죠.


저는 가끔씩 제 머리가 두려움에 절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정말로 머리가 이미 두려움에 익숙해져서 머리가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세팅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정말로 김치처럼 두려움에 절여져 있는 거죠. 색 입히기는 두려움이 특정 생각에 붙어 있을 때 특히 잘 적용되었지만 이처럼 이미 두려움에 절여진 머리 자체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


이처럼 색 입히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유용한 도구였지만 너무 강한 두려움과 이미 두려움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머리의 기본 세팅까지는 도달하기 힘든 한계를 갖고 있었죠. 아,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색 입히기가 소용이 없는 건 아니에요. 분명 효과가 있는 부분이 있고 이것은 계속해서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어서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다만 색 입히기만으로 모든 두려움에 대응할 수는 없다는 것뿐이죠.


아마 여러분은 아직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우리는 두려움이 만드는 증상을 나답다고 말하며 받아들이기로 했었죠. 그리고 이 증상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단지 증상이 나왔을 때 이전보다 여유를 가지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여러분도 직접 겪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로 강력한 증상이 나왔을 때 그 증상을 견디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그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감정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에요. 그 무서움, 그 괴로움, 그 두려움은 정말 장난이 아니죠. 우리는 이 감정조차도 나다운 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말이 쉽지 감정이 너무나 괴롭기에 이 받아들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감정을 없애지 않으면서 그 감정이 나왔을 때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을 더 잘 끌어안으면서 이전보다 좀 더 여유로운 상태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이 대답에 해당하는 스텝을 걸어보도록 할게요.

이전 11화 색 입히기의 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