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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한 Jun 04. 2024

두려워해줘서 고마워.

이전 글에서 저는 제 안의 두려움이 저를 괴롭게 만들고 이상한 심리적 증상들을 만들며 삶을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지만, 사실은 이 두려움이 저를 위해, 저를 지키기 위해 그런 증상을 표출시킨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오랫동안 저의 심리적 증상들과 두려움을 미워해 왔어요. 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증상과 두려움이 너무 싫었지요. 그래서 고치고 없애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 안의  두려움이 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심리적 증상과 두려움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어느 날 문득 다음 문장이 떠올랐어요.


‘고마워. 두려워해줘서 고마워. 나를 위해 그렇게 애써줘서 고마워.’


응? 이런 말이 떠오르고는 한참 동안 왠지 제가 우습게 느껴졌어요. 고맙다니. 두려움 때문에 내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를 괴롭혔던 그 증상이 고맙다고? 그런데 이렇게 우습게 생각되면서도 이 고맙다는 말이 제 마음속에 계속 울림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아! 그래요. 저는 곱씹을수록 이 고맙다는 말이 제가 두려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자기를 미워하는데도 자기는 저를 지키기 위해 제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두려워해주고 심리적 증상을 열심히 표출하고 있었으니까요. 오직 저를 위해서요.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에 해당하는 존재가 고맙게 느껴졌어요.


‘언제나 두려워해줘서 고마워.’

‘언제나 무서워해줘서 고마워.’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불안해줘서 고마워.’


고마움을 인정하자 위와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 내가 무서워하는 것, 내가 불안해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심리적 증상으로 표출됐을 때 분명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나를 두렵게 해 줘서, 이렇게 내가 무서움을 느끼게 해 줘서, 이렇게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불안하게 해 줘서, 나 대신 이렇게 나를 지켜주려고 노력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그리고 알게 되었죠. 이것이 우리가 두려움, 심리적 증상과 더 잘 공존하기 위한 스텝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Step 4-1. 두려움과 심리적 증상에게 ‘고맙다.’라고 입으로 속삭이며 반복해서 말해주기.


어떤 형태로든 상관없어요. 자신의 두려움과 증상에게 고맙다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으로, 자신만의 말로 그 고마움을 표현해 주세요.

“이 증상을 표출해 줘서 고마워.”

”이런 이상한 생각이 튀어나오게 해 줘서 고마워.“

“이렇게 힘든 감정이 나타나게 해 줘서 고마워.“

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마워'란 말을 꼭 입으로 속삭이듯 그 말을 뱉어내며 말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제가 해보니까 그냥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약해요. 생각은 그냥 흘러가버리는 느낌이거든요. 그렇다고 고맙다고 크게 말하는 것 또한 번거롭고 왠지 힘을 쓰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저는 속삭이듯 위 말들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효과를 준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어요. 이렇게 하면 정말 편안하게 말할 수 있거든요.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저한테만 들리니까 또 편하고요. 또한 증상이 나왔을 때 한 번만 고맙다고 말할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주세요. 반복하면 더 효과가 좋거든요. 그리고 단순히 고맙다는 단어만 말할 것이 아니라 위 예들처럼 고마워를 포함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서 표현해 주세요. 그래야 더 구체적으로 그 고마움이 와닿을 수 있어요.

 

어쩌면 당신은 이런 말을 자기를 괴롭히는 증상에게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어요. 여태까지 그 증상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하고 적으로까지 생각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증상은 정말로 당신을 위해 나타나고 있는 거랍니다. 어리석지만, 바보 같지만, 나오지 않아도 될 때 이상하게 나와버리는 증상이지만 그 녀석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 생각하면 기특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고맙다고 한번 말해줘 보세요. 그 증상의 본질을 안다면 이처럼 고맙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증상이 나왔을 때 그 증상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고맙다고 말하면 분명 이전과는 다름 느낌으로 그 증상을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는 그 증상을 좋아하기까지 바라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저 역시도 그렇게 힘든 증상을 좋아하기까지는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분명 고마워할 수는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고맙다고 말하면 지금의 그 증상과 괴로운 감정을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났죠. 이전에도 계속 말했지만 우리는 증상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 증상과 함께 하면서도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지기를 바랐죠. 고맙다는 말에는 배척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임의 뉘앙스가 있었고, 그리고 고맙다는 말에는 따뜻한, 좋은 뉘앙스가 들어 있었기에 표출된 증상에게 이 말을 해줌으로써 그 증상을 더 잘 끌어안을 수 있었어요.


다음 글에서도 이 고마움에 대한 내용을 더 이어 나가 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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