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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한 Mar 19. 2024

내가 두려워한 것들

내 생각대로 나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주의! 저처럼 겁쟁이가 아니신 분은 이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괜히 생각만 많아질 수 있거든요. 많이 고민하시고 읽기를 바라요.)


여러분은 혹시 겁이 나서 집 밖으로 못 나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있어요. 왜 나가는 게 겁이 나냐고요? 혹시 지금 밖에 나갔다가 무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혹시 지금 밖에 나갔다가 차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못 나갔어요. 우습죠? 그리고 음식도 아무거나 함부로 먹지 못했어요. 혹시 그 음식을 먹었다가 큰 병에 걸릴까 봐 겁이 났거든요. 또한 저는 다른 사람한테 전화도 잘하지 못했어요. 왜 못 했냐고요? 혹시 내가 지금 전화했다가 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떻게 하지? 괜히 그 사람의 하루에 내 전화가 끼어 들어서 내 전화로 인해 그 사람의 일상적인 삶에 변화가 일어나서 그로 인해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요. 한 때는 정말로 밖에 잘 나가지도 못했고, 음식도 제대로 즐기면서 먹을 수 없었고, 남한테 전화 한 통조차 쉽게 하지 못했어요. 아마 어쩌다가 저처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저 지나가는 생각으로 쉽게 털어내고 행동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안 됐어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저 집 밖에 나가는 것, 그저 음식 하나 먹는 것, 그저 전화하는 것뿐인데 이런 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혹시라도 커다란 불행을 불러올까 봐 너무너무 겁이 났어요. 그런데 제가 두려워했던 것들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특히 세 가지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 해질까 봐에 대한 두려움이었죠. 제 미래가 망가질까 봐 두려웠고, 제가 죽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그리고 저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삶이 망가져 버릴까 봐 두려웠죠. 미래, 건강, 다른 사람. 이 세 가지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저는 어김없이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어요. 이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도 굉장히 거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지요. (여기서 사실 미래는 건강과 다른 사람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카테고리여서 앞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때 이들을 따로 다룬다기보다는 뚜렷한 경계 없이 이들이 뭉뚱그려져 있는 것처럼 다루게 될 거예요. 그러니 그냥 편하게 읽어주세요.)


그런데 재밌는 건(제가 생각해도 제 머릿속이 이상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재밌기도 하거든요.) 제 머릿속은 두려워할 수만 있다면 모순된 방식으로도 두려워할 수 있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저는 어떤 경우에는 제 생각대로 미래에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했지만,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이것과는 반대로 제 생각대로 미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기며 두려워했어요.


전자부터 살펴보면, 제 생각대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한 것은 소원을 빌 때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련된 생각을 할 때와 같은 경우들이었어요. 먼저 이 경우들부터 자세히 말해볼게요.


먼저 소원을 빌 때에요. 정월대보름에는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지요. 달을 보며 소원을 빌 때 보통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 좋은 소원, 잘 되게 해달라거나 건강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어요. 그런데 저는요. 머릿속으로 소원을 빌 때면 자꾸만 무서운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소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보름달이 미래에 그것이 일어나도록 해주는 거잖아요. 저는 그것이 무서웠어요. 내 말을 이루어준다고? 그럼 내가 좋지 않은 말을 해버리면 그런 것도 들어주는 거야? 이런 생각 때문인지 달을 보며 눈을 감으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들이 저절로 떠올랐어요. 누군가가 아플까 봐, 누군가가 죽어 버릴까 봐 두려웠는데 이런 생각이 소원을 빌 때 생각나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달이 이런 생각을 소원으로 이루어줘 버릴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두려워할수록 이런 생각들은 보름달을 볼 때마다 더 떠올랐어요.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를 말해볼게요. 여러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저는 이 선택으로 인해 혹시 저의 미래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나쁜 미래로 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어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 선택이 초래할 수 있는 나쁜 미래가 떠오르는데 이것이 정말로 일어나 버릴까 봐 너무 두려운 거예요. 선택이 두려워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삶 속에서 선택은 해야 했어요. 선택 이후 좋은 결과를 얻으면 이것은 그저 지나가는 흐름이 되었지만 선택의 결과 정말로 나쁜 일이 일어나 버리면 저는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렸어요. 스스로를 비난하고 질책하면서 선택이라는 행위를 더욱더 두려워하게 되었지요.


‘이것 봐, 너의 선택이 전부 잘못된 거였어. 네가 피하고자 했던 불행한 미래가 너의 선택으로 인해 일어나 버렸잖아. 아, 그때 이것 말고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너무 후회돼. 그래, 너는 그런 놈이야. 너의 선택은 언제나 불행을 불러오지.’


아무리 사소한 선택이라도 이 선택은 분명 제 미래에 영향을 끼쳐요. 그러면 영향을 받은 미래는 또 다음 미래에 영향을 끼칠 거예요. 이런 식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면 결국 사소한 선택도 제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될 거예요. 이것을 나비효과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바보 같게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사소한 선택조차 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 사소한 선택이 나중에 커다란 불행을 불러올까 봐 두려웠죠. 그래서 저는 집 밖에도 함부로 나갈 수 없었고, 음식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던 거죠. 이 선택으로 인해 불행이 올까 봐요. 이처럼 제게는 사소한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나비효과를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신기했죠.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비효과를 어떻게 감당하면서 행동을 할 수 있는 걸까? 저도 알아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소한 행동을 사소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나비효과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는 그게 안 됐답니다. 저는 아무래도 겁쟁이였으니까요. 이처럼 사소한 행동을 하는 것조차 제게는 너무나 힘들었기에 삶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두려워할수록 몸도 머리도 굳게 되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올바른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정말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지요.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도 비슷했어요. 앞서 말했듯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할 때도 제 전화가 그 사람 삶의 일상적 흐름에 끼어들어 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될까 봐 두려워했어요. 우습죠? 그런데 저는 두려웠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도 두려웠어요. 혹시나 내가 따라갔다가 나로 인해 가족에게 어떤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런데요. 정말 더 우습게도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렇다면 혹시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이로 인해 내가 같이 가지 않아서 가족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려나? 그래서요. 저는 옴짝달싹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요. 가족들은 몰랐겠지만 저는 혼자 괴로워했지요. 이 밖에도 다른 사람이 잘못되어 버리는 생각이 우연히 떠오르면 그 생각대로 돼버릴까 봐 무서워했어요.


어때요? 정말 이상한 놈이죠? 그런데 이게 저였어요. 소원을 빌 때, 선택을 할 때,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엄청나게 두려워했고 이로 인해 정상적으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제 생각대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소원이나 선택처럼 지금 스스로의 능동적인 행위로 인해서 미래를 떠올려야 할 때이거나,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에 적용되는 두려움이었어요. 이와는 다르게 단지 수동적으로 다가올 저만의 미래를 떠올릴 때는 이것과는 반대로 제가 예측한 미래는 제 생각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했어요. 참 이상하죠? 이렇게 제 머리는 모순된 방식으로도 두려워할 수 있었어요.


다음 글에서는 이번 글과는 반대인, 예측한 미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과 관련된 제 두려움에 대해 말해볼게요. 여기서 잠깐, 더 읽기 전에 한 번 더 선택해 주세요. 지금이라도 이 글을 그만 읽으실 수 있어요. 만약 이 사람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더 알고 싶다면 계속 읽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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