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성온천에서

유성에서 멈춘 마음

by 송필경

말이 식고,
생각이 눅눅해지던 오후였다.

나는 아무런 결심도 없이
김 서린 유리창을 따라 걸었다.

수증기 아래
시간이 잠시 멈춰 있었다.

온천수는
땅속 깊이 묻힌 문장을 끌어올리듯
조용히,
끊임없이 흘렀다.

한 몸이
물에 반쯤 잠기고 나면,
그제야 마음의 말도
한 뼘씩 풀려나기 시작한다.

온도는 높았고,
그 뜨거움은 차갑지 않았다.

피로는 땀처럼 빠져나가고
상처는 표면에서 천천히 닫혔다.

백제의 먼 기록처럼
이곳의 물도
소리를 품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몸을 씻고 갔고,
누군가는
사라지지 않는 생각을
남기고 갔다.

물은 기억하지 않지만
나는,
이 물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맑아진
숨 한 줄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알았다.

오늘 내가 씻은 건
피부가 아니라
쌓여 있던
하루의 무게였다는 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