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본능
여름, 나와 미지근함 사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지근한 본능
숨이 턱 막히는 더운 여름날. 강렬한 햇볕 아래 걷는 동안 쏟아져 내린 땀방울은 옷깃을 축축하게 적시고, 피부는 온몸을 감싸는 끈적한 불쾌함으로 나를 끈질기게 괴롭힌다.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 차가운 물줄기 아래서 온몸을 식히는 상상. 그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열기가 식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의 손은 본능처럼 차가운 수도꼭지를 외면한다.
수도꼭지를 돌려 물의 온도를 조절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의 미지근한 물에 천천히 몸을 담근다. 아까 그토록 시원함을 갈구했던 이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익숙하고 온화한 물의 감촉에 스르르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나는 이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까 그토록 뜨거운 햇살 아래서 숨 막혀 했는데, 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물을 피하고 미지근한 물을 선택하는 걸까?' 이성적으로는 분명 시원함을 원했지만, 막상 그 급격한 시원함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 복잡한 감각은 대체 무엇일까.
내 몸은 그저 당장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일까, 아니면 그것이 바로 '나'라는 주체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편안함일까. 끓어오르는 열정처럼 뜨겁거나, 차가운 이성처럼 냉철한 변화보다는, 언제나 안락한 중간 지점을 추구하는 이 미지근함이 진정 나의 본질일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안정한 세상을 지탱하려는 나약한 내가, 비로소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뜨거운 열정과 혁신적인 변화를 외치지만, 막상 그 뜨거움 속에 뛰어들거나 차가운 현실에 부딪히기를 두려워한다. 낯설고 불편한 시련보다는 익숙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큰 모험보다는 현재의 평온함을 더 소중히 여긴다. 어딘가 안주할 수 있는, 익숙하고 포근한 미지근함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익숙하고 안전한 온도 속에서, 불안정한 세상 속 나약한 내가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의 여름 샤워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깊은 내면에 자리한 미지근한 본능을 반영하는 작은 거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