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줄, 어쩌면 삶이란 서 있는 곳
길게 늘어선 카트의 행렬. 마트 계산대 앞에서 우리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마주한다. 삑— 다음, 삑— 반복되는 기계음과 함께 순서가 마치 삶처럼 천천히, 혹은 때론 빠르게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며 주변을 살핀다. 옆 줄이 어쩐지 조금 더 빨리 풀릴 것 같고, 내가 서 있는 이 줄이 먼저 계산대에 닿을 것 같기도 한, 간사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애초에 그렇게 급한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순리대로 흘러가는 대로 따랐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능적인 경쟁심일까. 사람 심리란 묘해서, 뒤처지고 싶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앞서고 싶은 마음이 은근하게 번져 온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위치에 서고 싶은 욕망. 짧은 기다림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겪는다. 저 줄로 갈까? 아니, 그냥 이대로 있을까? 망설임 끝에 결국 한 가지 결정을 내린다.
이내 조심스럽게 옆 줄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인생의 오묘한 장난처럼, 그 순간부터 내가 선 그 줄은 마치 기름 낀 혈관처럼 끈적하고 느릿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뻗어가던 원래의 줄은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고속도로처럼 질주하는 듯 보인다. 허탈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괜히 바꿨나? 다시 돌아갈까? 하지만 이미 내 뒤로 카트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뒤돌아보려는 나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이미 늦어진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다.
삶의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또 후회한다. 이 마트 계산대의 줄과 다르지 않다. 내가 선 자리가 과연 옳았는지, 더 나은 선택이 있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흘러갈 뿐이다. 우리는 답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조각배와 같다. 옳은지 그른지, 더 빠른 길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다만,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선 자리가 옳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흘러간다. 이것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