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저녁빛이 길가에 내려앉을 무렵, 한 잎의 코스모스가 바람에 밀려 손등을 스쳤다. 닿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만 남기고, 바람의 길 쪽으로 천천히 물러갔다. 꽃잎을 지난 빛은 잠든 생각의 가장 얇은 층을 건드린다. 그 잔물결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 접어 두었던 마음 한 귀퉁이가 서늘한 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은 꽃잎을 넘기는 손길 같아, 가느다란 떨림마다 말하지 못한 묵음의 마음이 숨어 있다. 그 떨림을 따라가던 어느 저녁, 잊었다고 믿었던 얼굴 하나가 빛의 가장자리에서 아주 조용히 돌아왔다. 그 얼굴에 닿는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한때 꽃잎의 흔들림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보던 사이였음을. 먼저 기울던 그림자와 그 뒤를 따라 흔들리던 마음의 무게까지, 우리는 함께 견뎌냈음을.
지금은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서 있지만, 계절이 방향을 틀 때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떨림이 내 안을 건드린다. 멀어진 것이 지워진 것과 다름을, 흔들림 속에서 깨닫는다.
향이 없는 코스모스, 애초에 손에 잡히지 않던 꽃이었음을.
그러나 비어 있는 그 자리가 오히려 더 짙은 그리움을 불러올 때가 있다. 없다는 말이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이 가벼운 꽃은 오래전부터 가슴 깊이 간직했으리라.
바람이 다시 스치고 지나가자, 남겨 두었던 말 하나가 소리 없이 씨앗처럼 마음속에 심어졌다. 그리고 내 안의 가장 깊고 잔잔한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 빛처럼 오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