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정류장에 서면 공기가 무겁다.
가로등 빛이 손끝처럼 어둠을 움켜쥔다.
별빛은 터지기를 기다리는 폭죽처럼 흩어진다.
달빛은 바닥 위에서 미끄러지고,
내 그림자는 길게 늘어나 몸을 끌고 간다.
발을 떼면 구두는 또각또각.
차들은 쌩쌩, 소리는 귀를 스치고 사라진다.
뒤돌아보면 누군가의 숨결이 희미하게 반짝인다.
위안인지 경계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빛이 내 발걸음을 흔든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음을 밀어붙인다.
피로가 숲을 만든다.
발목을 휘감는 잿빛 안개,
가슴을 눌러오는 나무들의 그림자,
숨마다 촉각이 얼얼해진다.
오늘 하루의 무게가 내 걸음을 붙잡는다.
따뜻한 침대가 멀리서 속삭이지만,
나는 먼 정류장과 간격을 유지한다.
오늘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아까 만진 서류, 달빛 아래 감춰진 생각들,
손가락 사이로 하나둘 빠져나간다.
삑—다음 정류장, 아프로디테역.
목적지는 아니지만,
피곤과 숲, 현실과 환상 사이,
몸을 살짝 내려놓는다.
불꽃이 튀는 곳,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는 곳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스며든다.
그 순간, 나는 안다.
충분함이란, 발목을 스치는 어둠과
또각또각 구두가 남긴 흔적 사이에서
내 몸과 마음이 조용히 스며드는 방식이라는 것을.
피로가 숲을 만들고, 숲이 나를 빚는다.
내 안의 어둠과 빛,
발걸음과 숨결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내 하루를, 내 존재를 완성한다.
그리고 나는 걷는다.
어둠과 빛 사이,
숲과 정류장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내 발걸음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