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갓 태어난 숨결처럼, 한 장의 흰 기운이 내 손끝에 내려앉는다. 아직 아무 말도 모르지만, 이미 누구의 체온인지도 모를 따스함을 품고 있다.
이 조용한 흰빛이 앞으로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바람의 틈을 막아줄 얇은 막이 될 수도 있고,
오래 묵은 지혜를 건너 나를 찾아올 책장이 될 수도 있으며,
처음의 색을 담아내는 그림의 바탕이 될 수도 있겠지. 모두 이 한 장 안에서 가능성을 쉬고 있다.
밤을 붙들어 꿰매듯 삶을 이어가던 시간들 속에서, 가느다란 울음도 들어 안아 재웠고, 비어 있던 틈마다 온몸을 기대어 메워왔다. 장인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흰 표면 하나가 도려낸 듯 단단해지는 동안, 겹겹의 세월이 그 위에 눌리고, 다시 일어나며, 한 장의 마음이 서서히 다져진다.
맑은 물살에 몸을 풀고, 햇살의 결을 천천히 품는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마지막 잔주름을 고르고 나면, 비로소 숨을 다 갖춘 초지 한 장이 세상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나는 그저, 이 작은 완성을 조심스레 건넬 뿐이다. 누군가의 하루에 첫 문장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