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사는 친구가 서울 나들이를 와서 친구가 가고 싶은 곳인 청와대 관람과 한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청와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청와대 내부를 둘러보고 역시 그 웅장함에 놀랐고 이렇게 국민들에게 공개를 해준 거에 대해 감사했다.
청와대 집무실과 여러 내부를 둘러보며 대통령이 살았던 관저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중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구경하며 "어머! 귀엽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 밑 잔디밭에 청설모 한 마리가 주인공이었다. 토실토실하고 청와대에 살아서인지 귀티가 철철 흐르는 모습으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도 않고 연신 찍어내는 사진촬영에도 익숙한 자세로 열매를 갈아먹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며 "청와대의 청설모는 다르다!"라는 농담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날씨가 약간 싸늘하긴 하지만 햇볕이 너무 따사로운 앞마당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관저 뒤 산책로를 관람하려고 했지만 한강 유람선 티켓 시간때문에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 아쉬웠다.
친구와 청와대를 관람하며 남편이 생각났다. 맛집에 가면 집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과 같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여기저기 방송에서 많이 보여줘서 안 가도 된다고 꼰대 같은 대답을 한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다음 주에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친구와 한강 유람선을 타기 위해 청와대를 나왔다.
1주일이 지난 일요일에 남편과 청와대를 가야겠다 싶어 티켓을 미리 예약했었다. 남편에게 말은 안 했고, 느긋한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남편에게 청와대에 가자고 하니 지난주에 다녀왔는데 왜 또가냐 하면서도 싫어하지 않았다.
일요일은 차를 가지고 이동을 해도 좋은 서울이라 청와대 바로 근처 사랑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갔다.
4월의 날씨는 하루하루가 달랐다. 지난주 보다 더 화창해서 좋았고 일요일 낮 12시는 편안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두 번째 방문이라 남편에게 안내를 했고 남편이 "청와대 내부에 엘리베이터도 있나?"라고 물었다. 나도 사실 지난주에 청와대 내부 계단을 오르며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이 직원 안내를 받고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 관람객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면 모를듯한 위치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대단한 걸 알려준 듯 뿌듯하게 여유 부리며 다녔다.
대통령이 살았던 관저 뒷마당을 돌던 남편은 관저 지붕밑 기둥에 실인지 거미줄인지 줄들이 많이 쳐진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역시 같은 곳을 보아도 사람마다 궁금한 것이 달랐다.
남편은 안내하시는 분에게 물었고 새들이 둥지를 짓지 못하게 실을 박아 엮어 둔 것이라고 했다.
지난주에 바빠서 못 가본 관저 뒤편 산책로에도 올라가 한 바퀴를 돌아가니 주변 경치도 너무 좋았다.
내려오던 중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늘 3시에 국방부근무 지원단이 대한민국 전통 의장과 군악 행사가 있다고 했다.
어쩜 시간도 딱 맞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청와대 앞마당 중심 잔디를 뺑~ 돌아가면서 엄청 많이 앉아 있었다. 우린 사람들이 서서 구경하는 곳으로 삐집고 들어가 사이사이로 구경을 했다.
너무 멋진 경치와 군악대들의 음악과 전통 의장 행사를 보니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두두둑~ 비가 한두 방울 내리는가 했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쭉~ 내렸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관람하기 좋은 명당자리를 포기하고 청와대 내부로 우르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나기라는 것을 알기에 비가 그칠 듯해서 입구 쪽에 서있다가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행사장이 보이는 곳으로 가니 행사 진행자들이 철수를 했다. 아쉬움이 있어서 기다리니 다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잔디밭 상황을 보고 진행하지 못한 전통의장 행사가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비가 내리기 전에는 자리가 잘 보이지 않아서 겨우 봤는데 비가 그치고 사람들이 포기하고 내려간 그 틈에 명당자리의 주인들이 바뀌었고 남은 행사를 여유 있게 잘 볼 수가 있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살다가 힘들 때 소나기를 피하고 나와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안고 산다면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일주일 전 친구가 왔을 때 못 본 상춘재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연못의 물고기는 너무 깨끗한 물속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는데 역시.. 좀 전에 본 청설모처럼 환경에 따라 그 빛깔이 다르게 보였다.
청와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관저라고 생각했는데 상춘재가 더 좋았다. 외국 손님들이 방문해서 머무르는 곳이어서인지 깨끗하고 잔디밭 중심에 아주 오래된 고목 소나무가 멋지게 서 있었다.
그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자리 옆 벤츠에 앉아있으니 많은 사람들의 사진 찍는 풍경을 볼 수가 있고 또한 내가 자처해서 찍어주는 서비스도 함께 했더니 여러 분들이 좋아하신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내 옆 의자에 함께 앉으셨다. 말씀을 하시는데 경상도 사투리가 반가웠다. 나는 워낙 낯선 분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아서 어디서 오셨냐고 말을 건넸고 할머니는 경북 군위에서 왔다고 하신다.
역시 할머니 또한 묻지도 않았는데 서울에 자식이 3명이 있어서 함께 왔고, 저기는 내 며느리고 아들이고, 나는 88세라고 기력이 없으신 듯했으나 말씀은 엄청 편안하게 하셨다. 답례라도 하듯 묻지도 않으셨는데 나도 안동이 고향이고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하니 같은 경상도이고 가까운 지역이라서인지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벤치에 앉아 바로 옆 나무를 보시더니 "이 나무는 죽었나 보다!"라고 하니 이 말씀을 들은 며느리 분이 오시더니 "아니요~ 어머니! 저기 나무 끝에 잎사귀가 나와요~"라고 하신다. 정말 까만 오래된 고목나무 끝에 작은 초록 나뭇가지가 열려 있었다.
"할머니 청와대에 오니 너무 좋으시죠?"라고 물으니 " 참 좋아요! " 미소 지으며 대답하셨다. 할머니의 모습도 고목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검고 주름도 많으시고 야위어서 힘이 없어 보이시는데 고목나무 끝에 작은 새순가지처럼 그분의 미소는 작은 나뭇가지 새순의 잎처럼 느껴졌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자식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일어나셨다.
국민들에게 공개한 청와대의 모습은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어 풀하나 꽃하나도 모두 어우러져서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젊은 엄마와 가족이 지나가면서 "정말 좋다~ 담에 친정엄마 모시고 또 와야겠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한 번만 관람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주일 만에 또 방문하니 그때 못 보던 거도 보였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돌아가면서 생각하니 문득 청와대의 4계절의 모습이 궁금해서 남편에게 말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번 오자고 했더니 남편은 나의 엉뚱한 말에 궁금해한다. 산책하기 좋고 사람들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고 적당히 많은 인원이 있지만 인원제한이 있어서인지 너무 여유 있는 공간과 경치가 좋았다. 그리고 매달 계절의 변화되는 모습이 어떨지가 궁금해서 느껴 보려고 한다.
서울에 살면서 최고의 곳이라고 누구에게나 말해주고 싶고 입장료도 없고 예약하면 언제든 관람할 수 있는 청와대의 열두 달과 사계절의 느낌을 남기고 싶은 생각으로 2023년 버킷리스트가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