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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에 빠진 공예교육

"공예교육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예술, 풍요로움을 알게 한다"

by 소랑이

칼라믹스 점토를 주문을 했는데 흰색과 빨간색 점토가 공장에 재고가 없다는 말을 전달받았고 언제 되냐고 여쭤봐도 정확히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한다.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겨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계신다고 하시는 말씀만 하셔서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 점토공장에서 생산된 칼라믹스 점토가 그동안 중국으로 많이 나갔는데 그 판로가 뚝 끊겼다고 했다. 또한 칼라믹스 점토 수업은 국내 유일하게 쪼물딱인 우리만 사용한다고 했다. 그동안 유일하게 우리만 칼라믹스 점토 수업을 한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수업을 했는데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을에는 갈색 재고가 없다고 해서 노랑, 빨강, 검은색을 섞어서 갈색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며 생산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고 중간중간 색깔이 없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색깔이 없을 때에는 없는 색을 만들어 사용하며 재고에 맞게 프로그램을 조율해 가면서 유지해 왔다.


하지만 색을 섞어서 사용할 수 없는 기본 5색(흰, 노, 빨, 파, 검)은 만들 방법이 없다. 칼라믹스 점토를 모든 수업의 80%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료가 없다는 것은 일을 지속할 수가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일들이 자주 되풀이되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서 다양한 점토를 이용한 폭넓은 유아 교육을 목적으로 고민했고 클레이, 폼클레이, 지점토, 흙놀이 등 다양한 재료를 수업에 반영시켜서 오히려 다양성을 찾았다.


하지만... 사람에게도 고향이 있듯이 나에게 점토놀이의 친정이자 고향은 칼라믹스 점토다. 이 점토로 공예를 시작해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다가 공예도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25년간 수없이 색깔을 반죽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 어떤 점토보다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몇 달 전 공장 사장님 부부와도 만남을 가지면서 잘 생산하겠노라고 확답을 듣고는 안심을 했는데 역시나 공장 입장에서 생산을 해도 수요자들이 없는 입장에서 재고부담이나 생산비 부담을 생각한다면 우리 입장만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몇 년 동안 색깔 재고 부족사태가 생길 때마다 걱정을 했었고 마음고생을 했기에 사실 그 시절보다는 충격과 불안함이 덜했다. 반면,,, 점토공장을 생각했을 때 더욱 안타까움이 있었다.


점토공장도 칼라믹스 점토로 시작을 했고 그 자식 같은 점토를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분들이 더 고민이 될 것이고 미래를 전망하기보다 우선 유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분야에 투자를 하며 손실을 감당하기가 부담이 간다는 상황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공장에서 만든 재료로 나는 아이들과 25년이라는 시간을 점토 수업을 하면서 이 점토교육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앞으로 영원할 것을 알기에 더욱 안타깝고 속상하다.


모든 점토의 기법은 지점토가 먼저 생활공예로 시작을 했다면 그다음이 칼라믹스가 나왔고 그리고 클레이가 나오기 시작을 했다. 만들기 공예활동 방법은 재료만 바뀌었을 뿐 특징만 이해한다면 만들기 기법이 거의 비슷하기에 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칼라믹스는 그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했고 강사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클레이를 선택하고 한때 붐이 일어났다. 공예 소품의 재료가 많이 전시, 수입 판매가 이루어지는 남대문 지하상가에는 온갖 액자와 목제품 소품들과 클레이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눈을 끌고 각 지역 강사들이 서울 남대문 지하상가 공방을 찾아가 수강하고 샘플을 뽑던 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나는 지하상가 공방들을 돌아다니며 눈으로 구경만 했을 뿐 수강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똑같은 소품에 똑같은 샘플을 만들어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계획해서 같은 샘플을 만드는 획일적인 수업이 싫었다.


그래서 부족했지만 나만의 샘플을 만들었고 클레이가 아닌 나의 고집스러움으로 칼라믹스 점토에 수고로움이 추가되었을 때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 한층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한우물을 파며 더욱 확신을 가졌고 유아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함께 창의력이 생겼고 함께 성장해 나가면서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나의 소신을 지킬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다른 지역에서 함께 교육해 온 선생님들께 연락드려 현재 상황을 전달하고 의견을 여쭤보니 그분들도 나에게 말을 안 했을 뿐 사실 작년부터 칼라믹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클레이로 수업을 대체하고 계셨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중간중간 불안정하게 공급되는 칼라믹스 재료와 딱딱한 점토를 반죽하고 열처리 작업은 수업과는 별도의 추가되는 뒷일이 많아 힘든 입장에서 선생님들의 선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과의 공통적인 의견은 양질의 칼라믹스가 안정적인 재료로 생산이 된다면 충분히 미래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그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다.


그러면서 한분 선생님께서 재료 구입차 오랜만에 남대문 지하상가에 시장조사를 갔는데 거기에도 클레이만 하시는 강사들이 없고 거의 토탈공예로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다.


그런 상황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코로나 이전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 토탈공예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부터 공예시장의 트렌드가 손바뀜이 되었다. 이젠 클레이 전문강사도 점점 사라져서 매주 클레이 수업을 하던 프로그램 비중이 낮아지는 상황에 앞으로 클레이 강사도 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클레이는 국내 몇 개의 공장에서 생산이 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이 또한 지금의 칼라믹스 공장과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며칠 후 다른 선생님의 이야기만 듣고 분위기를 인정하는 것보다 남대문 지하상가 공예 시장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갔다. 그날은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아는 듯 날씨도 비가 오고 바람 불고 봄의 끝자락 4월 말의 날씨가 소란스러웠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방문한 지하상가를 찾아가니 공방을 갓 인수하고 지방에서 남대문에 재료를 사러 다니고 시장 조사를 다녔던 그 시절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비슷한 위치에 공방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전과는 달리 다양한 공방들이 없어지고 썰렁한 모습들이었다. 소품 반제품을 파는 재료상은 여전히 있었고, 토요일 오후지만 공방한 켠 에서 나이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교육생이 만들기를 하고 계셨다.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선생님이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니 여기는 사범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 안된다고 하셨다.


사실 지하상가이고 오픈된 곳이라서 안 들어가도 다 보이지만,,, 그 선생님의 사범들만 가능하다는 그 사범이라는 말에 세월이 지나도 예전 방식에 멈춰있는 교육 시스템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상했던 것처럼 각종 부자재로 가득 넘쳐나는 공방에 재료들과 미니어처에 사용되는 소품들과 여러 가지 액세서리 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재료 판매대에서는 어떤 선생님이 토탈공예 수업을 하기 위해 재료를 구입하고 계셨고 "뭘 하면 좋을까?"라고 재료를 판매하는 직원분과 이야기 하며 수업 재료를 결정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장난감 소품 속에 캐릭터를 넣어 붙이면 된다는 서로 간의 사인을 하면서 또 구매 결정을 하시는 듯했다. 이것이 지금 공예교육 시장의 현실이다. 반제품에 꾸밈을 더해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선택하고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되풀이 되는 함정이다.


나도 그 함정에서 빠져있었고 그 오래전에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된 이야기를 이해를 돕기 위해 점토수업의 흐름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공예도 유행이 있었다. 1980년대 말에 칼라믹스라는 점토가 국내에서 개발이 되어 재료가 생산이 되었다.

열처리라고 해서 솥에 찌거나, 삶거나 하면 지우개가 되는 성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재료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 이 점토는 딱딱한 편이라 따뜻한 열을 주어 국수기계로 반죽을 하고 손으로 다시 반죽해서 사용한다.


어떤 점토든지 장점과 단점은 가지고 있다. 점토가 생산이 되고 활동을 하다 보니 번거로운 점은 열처리를 해야만 하고 굽지 않으면 갈라지고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해서 2000년 초반쯤부터 칼라클레이라는 부드러운 성질의 점토가 다양한 브랜드로 홍보되어 출시되었다.


아이들에게 무척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부드러운 감촉과 화려한 색상으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며 손쉽게 활동할 수 있어서 여전히 인기가 있다.


이후 스티로폼 알갱이를 넣어서 만든 폼클레이가 나오고 연이어 다양한 클레이 앞에 단어들이 붙어 가면서 우드 클레이, 라이스클레이, 쿠키 클레이 등 여러 가지 재료와 클레이의 성질을 합친 재료들이 무궁무진하게 출시되었다.


점토만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점토에 반제품을 구입해서 액자나 소품 모양 틀에 꾸미기를 하는 등 반제품 시장은 당연히 함께 판매가 상승 되었고, 수업용 샘플은 다양한 반제품(거울, 액자, 시계, 온도계, 수첩 등) 모양틀에 맞춤식 작품이 샘플이라고 해서 작품을 만들고 시장에 지속적으로 판매가 되었고 재료만큼이나 반제품 시장은 엄청 다양하고 종류가 많이 있었다.




점토 재료비 보다 반제품 가격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주기별, 계절별, 행사별로 나오는 반제품의 모양이 거의 비슷비슷했다. 반제품 주문이 늦어지면 수량이 부족해서 다른 곳을 찾아 주문을 해야 했고 그때에는 남들이 하는 것,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쫓아가느라 바빴던 것 같다.


나름 간단한 목재료는 가까운 목공소에서 재단을 해서 구입하며 단가를 낮추었고, 액자 제작도 도매상가보다

그 지역의 액자 공장 사장님께 제작을 의뢰해서 주문 제작이 손쉽게 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액자 문화였던 시절이 있어서 뭐든 액자에 넣어서 걸어두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배웠고 남들이 하기에, 안 하면 안 될 듯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런 작품이 완성품이라고 믿었기에 분위기를 따라갔던 것 같다.


교육안에 들어가는 제목이 십이지 시계액자, 하트 벽걸이, 곰돌이 스탠드, 딸기 거울, 천사 메모꽂이, 전통 탈 액자, 과자 집 저금통 등 교육안 제목 뒤에 반제품 이름이 붙여진 계획안을 가지고 수업을 했었다.




어느 날 수업 후 함정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어린이집에 수업을 갔는데 그날의 주제가 손거울 수업이었다. 물론 손거울에 색깔 놀이를 하면서 폼클레이를 붙여서 꾸며보는 놀이였는데 교실에 들어갈 때부터 내 눈에 아이들 교구 선반 위에 올려진 하트 손거울 소품이 있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고, 어쩔 수 없이 준비해 간 수업을 펼쳐서 이야기 나누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손거울 해봤어요!"라고 말을 먼저 한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어린이집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색연필로 하트 모양 손거울 위에 색칠 놀이를 하고 반짝이 스티커를 붙여보는 미술 활동을 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 다른 것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그림이 아닌 까칠까칠한 느낌의

폼클레이로 색깔 섞기 놀이를 하면서 활동을 하는 터라 아이들은 재미있게 참여를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무겁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너무 부끄러웠다. 분위기를 바꾸어 재미있게 진행을 했고 아이들은 워낙 순수해서 오늘 했던 것이 더 재미있다고 나의 마음을 아는지 위로해 주는 말을 해주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방식이 잘못 계획되어 있었다. 점토로 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하는데 우린 점토가 아닌 반제품에 점토를 맞추려고 했다. 결국! 주종관계가 바뀐 결과였다.


이날 나는 경험을 통해 내가 그동안 해오던 방식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경쟁력 있는 수업 방식을 만들어 가야 했다.


그 이후 반제품이 중심이 아닌 점토의 성질을 이해하고 교육 내용에 집중하고 기법을 단계적으로 나뉘고 교재를 만들었고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특별활동(계발활동)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에 여가문화 활동에 운영 예시 자료로 "칼라믹스" 부분의 참고 문헌으로 쪼물딱 교재 내용이 수록되기도 했다.




공예가 교육이 되어 초등 방과 후 프로그램과 유아 특별활동 프로그램에서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에 점점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 현장에 맞춰 많은 강사분들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성 보다 전문성을 앞세우고 획일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사고를 확장시켜 주면서 아이들이 완성한 작품을 이해하고, 스스로 구상한 만들기를 자기가 만족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기술도 함께 알려주었으면 한다.


기술이라고 하는 단어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간단한 테크닉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이 공예 기술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창의성이다. 어른들은 어떠한 노력에도 아이들의 순수한 창의성을 따라 하지 못한다. 강사가 아이들이 모르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기술이라 말할 수 없다.

그 테크닉은 기법이라고 할 수 있고 잘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게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기술이다.


환경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 과연 우린 매일매일 환경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반제품을 이용한 활동을 자제하고 수업 내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요즘 수업하고 끝날 무렵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 그거 종이에 붙이지 말고 그냥 주세요! 가지고 놀 거예요!"라고 한다. 아이들은 내가 만든 것을 어디 주변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작품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


아주 오래전 집 한편에 완성된 작품들을 전시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그 시절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내가 만든 작품을 놀잇감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만든 작품에 이야기를 넣어서 한 편의 동화책이 만들어지면서 사고력을 키울 수 있으며, 소품과 도구를 직접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성취감과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예술이 남는다는 것을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니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기법을 알려주고 모든 결과물은 우리 아이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로 만든 작품을 예술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 행복해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즐겁다.

예술가를 배출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도전하고 연구하고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은 습득이 아닌 깨달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공예가 참 교육이 된다면 미래를 이끌어 가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예술을 즐길 줄 아는 풍요로움을 갖고 삶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꾸며가는 초석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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