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친구와 현재 9년째 장기 연애 중이다.
지인들이나 회사 동료들이 남자친구 유무를 물어볼 때마다, 나는 예상되는 반응들에 조금은 멋쩍게 대답한다.
"남자친구랑은 9년 정도 만났어요."
반응은 짠 것 마냥 모두들 비슷하다.
"진짜요?!"
"어떻게 그렇게 한 사람이랑 오래 만나요?"
"그럼 도대체 몇살 때부터 만난거야?"
"그렇게 한 사람이랑 오래 만나면 지겹지는 않아요?"
(놀랍게도 꽤 많이들 물어본다)
등등...
나는 평소에 남자친구와 그렇게 오랜 기간 만났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지 않다가, 타인에 의해 객관적인 나의 연애 기간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 우리가 오래 만났다는 걸 새삼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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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는 카페 알바를 하며 만나게 되었다. 커피와 음료, 꽤 다양한 종류의 식사 메뉴와 술까지 판매하는 독특한 카페였어서 일이 굉장히 많고 정신없이 바빴던 곳이었는데, 남자친구와 나는 같은 마감 시간대 알바생이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었다.
지금 다시 그 때를 어렴풋이 떠올려보니, 처음 남자친구를 봤을 때 느꼈던 첫인상은 '훤칠하다'였던 것 같다. 나도 키가 큰 편이었는데 나보다 훨씬 키가 컸고,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는 뒷모습이 사뭇 듬직해보였다.
또 일을 잘하는 편이었어서 같이 일하기 매우 편했다. 당시 일하던 카페는 프렌차이즈였는데, 본사 방침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매장 분위기를 기존과는 180도 다른 모던한 분위기로 바꿨었다. 바뀐 인테리어 덕분인지 홍보 효과가 톡톡히 되면서 손님이 급격히 몰렸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손발이 잘 맞는 편이었다. 일이 꽤나 힘들긴 했지만 남자친구가 있어서 그 시간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마감이 끝나면 늦은 새벽 시간대였다. 알바를 했던 카페에서 나와 집 가는 방향으로 걸으면 우리 집이 먼저 나오고 남자친구 집이 그 다음에 나왔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남자친구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게 되었고, 우리는 집까지 가는 그 십 몇분의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었다. 그러다 사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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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툰 20대 초반을 지나 길고 긴 연애를 이어오면서, 우리는 현실적인 벽에 자주자주 부딫혔다.
남자친구의 군입대와 제대. 대학 졸업 그리고 대학원 입학과 졸업. 취업까지.
나의 해외 유학생활. 대학 졸업, 취업준비를 거쳐 취업까지.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수개월 간 만나지 못했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나름의 최선을 다해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을 땐 달에 한두번은 면회를 가고자 노력했고, 내가 유학생활을 할 때에는 8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매일마다 전화 통화를 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를 지나, 벌써 서로 직장을 잡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단 몇 문장으로 간편하게 요약할 수 없을만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시간들보다는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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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러 이유들로 인해 관계가 위태로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길고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화와 유머코드"
어떤 관계이든 대화가 잘 통하고 유머코드가 맞다면 길게 갈 확률이 높다. 남자친구와 나는 나이도, 학교도, 전공도, 관심사나 취미도 모두 달랐지만 대화가 정말 잘 통하는 편이었고, 또 유머코드가 맞아서 만났을 때 웃을 일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싸우는 상황은 줄어들었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나 화도 풀리는 게 느껴졌다(물론 나만 느끼는 생각일 수도 있다^^).
서로 오래 만난 만큼, 서로를 잘 알아서 그런지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도 요새는 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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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만 20대의 끝자락에 와있고,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지금의 남자친구와 함께 했다. 사실 이제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자친구가 없는 삶을 상상하긴 힘들다. 내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내 곁엔 지금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내가 흔들리고 위태로울 때마다 나를 묵묵하게 믿어주는 그에게 감사하다.
내가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무한한 동력이 되어주는 그 사람과,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지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