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 김훈
2009년 3월 첫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열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뱃속에서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그 아이는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더라도 태아의 정석이었다. 그 시절 임산부라면 반드시 읽어야 마땅했던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는 당연히 우리 집에도 있었다.
퇴근해서는 혼자서,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뱃속 아기의 주수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으며 안도하고 뿌듯해하던 열 달이었다. 내 소중한 첫 아이는 너무나 바람직하게도 책에서 정해주는 시기에 딱 맞춰 반응하고 움직이며 쑥쑥 자라줬고, 병원에서 알려 준 예정일 딱 하루 전에 무사히 나와 주었다.
첫 아이 잘 키우는 방법이라는 게 있을까?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3년을 꽉 채운 시간 동안은 정말 ‘학습 – 실행 – 반성 – 심화학습 – 재실행’의 무한 반복이었다. 나에게 육아는 책으로 읽고, 방송으로 보고, 엄마들을 만나 정보를 공유해서 열심히 얻은 지식을 내 아이에게 직접 적용해 보는 실습 과정 같았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의 지식과 기술도 늘어가며 자연스레 자신감이 붙었다. 이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 것만 같고, 내 마음이 바로 아이의 마음일 것만 같았다. 내가 주는 음식을 좋아하고, 내가 입혀주는 옷이 제일 잘 어울리고, 내가 권하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취향이 잘 맞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중2병의 조짐은 6학년 졸업을 앞둔 겨울 즈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딱 그럴 때다, 더 늦어도 골치 아프다, 이제 시작이다 등등 비슷한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즈음부터 아이가 내 말에 반응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대부분의 말에 즉각적인 거절의 답이 돌아왔다. 너무 속상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순간 빈정이 상해 삐지기도 하고, 뒤늦게 어르고 달래 보기도 하는 등 나름 애를 쓴 게 무색할 만큼 별 성과 없이 시간만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는 섣부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아니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 덕분에 없던 눈치가 다 생겼다.
중학생 딸 앞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세 가지 분야를 꼽는다면 친구, 옷, 공부다. 셋 다 모두 아이의 취향을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 “너는 왜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랑만 친하니? 옷 입은 거는 또 왜 저렇고”와 같은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게 아니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로 했다는 딸을 약속 장소로 데려 주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저 앞에 시커먼 애들이 친구들이야?” 그때 아이의 기분 상한 표정을 본 뒤로는 절대 외모나 옷차림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 한창 이쁜 나이에 검은색 모자를 눌러써서 예쁜 얼굴은 다 가리고 옷이며 신발에 가방까지 다 검은색만 입는 게 안타까워서 나온 말이라는 나의 궁색한 변명은 끝내 그날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나 옷과는 달리 공부는 내게도 쉽게 타협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아이의 학습에 대해서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얻은 답은 경험과 습관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거나 영화, 공연, 전시회, 스포츠 경기 등을 관람하는 간접경험과 악기연주나 운동을 배우고 각지로 여행을 다니는 등의 직접경험을 두루두루 해봐야 하고, 이러한 경험들이 일상과 어우러져 습관처럼 몸에 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아이의 성장 과정에 이러한 나만의 교육 철학이 온전히 녹아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무엇이든 함께 경험했음은 물론이고 그 결과 아이에게도 내게도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 왔다. 얼마 전까지는.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눈빛이 더 이상 초롱초롱하지 않다. 모든 거절의 말 뒤에는 “귀찮아”라는 이유가 뒤따른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심지어 앉는 것도 귀찮다고 한다. 그 시기의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하니, 그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들 하니 그러려니 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불쑥불쑥 화가 나는 일이다.
특히 책 읽기를 뚝 끊어버린 딸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내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엄마들 모임에서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다, 학원을 안 다니려 한다’는 등의 고민을 말하면 다들 ‘책 많이 읽어서 공부 잘할 거다, 국어는 걱정 없겠다’는 대답을 바로 할 정도로 나름 동네에서 책 많이 읽기로 소문났던 딸아이를 둔 어깨 으쓱한 엄마였는데, 지금은 그나마 웹툰이라도 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아이가 얼마 전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는 뮤지컬 〈영웅〉을 보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먼저 한 게 얼마 만인지! “그래? 예매만 해줄까? 아니면 엄마랑 같이 볼래?”라고 무심한 듯 얘기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채신없이 “정말? 정말 볼 거야? 니가 먼저 보고 싶다고 했다. 꼭 봐야 해. 당장 예매할 거야!”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나의 반응에 아이도 그날만큼은 “내가 뮤지컬 보고 싶다는데 그렇게 좋아 엄마?”라며 해맑게 웃어 주었다.
아이가 그날 본 영화는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생전 마지막 1년을 다룬 이 영화가 왜 그날 여중생들의 선택을 받았는지, 또 어떤 부분이 아이에게 울림을 줘서 동명의 뮤지컬까지 보고 싶다는 건지 나는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딸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날 저녁 욕심을 내서 아이에게 슬며시 책 한 권을 내밀어 보았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 “엄마가 전부터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이 나와서 최근에 읽었는데, 마침 안중근 얘기야. 심심할 때 한번 읽어봐.” 최대한 무심하게, 오다가 주웠어 느낌으로 책상 위에 툭 올려놓고 나오는데 심장이 얼마나 쿵쾅쿵쾅 뛰던지. 물론 딸아이는 아직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 그래도 뮤지컬 보러 가기 전에는 꼭 다 읽고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느 날일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맘 잡고 쭉 읽겠다고도 했다. 책상 정면 책꽂이에 잘 보이게 꽂혀 있는 책의 하얼빈 세 글자만 봐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