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에 우리는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한번 생겨난 결핍을 채울 방도는 없었다. 자신의 일상을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알리고, 꽤나 잘 살고 있음을 피력해봐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삶에서 우리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한시라도 몸이 쉬게 놔두면,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으니 땀을 흘리면서 몸을 고되고 만드는 편이 그나마 편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해오던 것은, 만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심적으로 큰 위안을 얻는 것 같다. 변하는 것 하나 없이 반복되는 삶에 지칠 때쯔음 회포를 풀 수 있는 친구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건 실질적으로 만나지는 못하고 시간이 맞지않더라도 여차하면 부를 수 있기에 그 점은 정말 부럽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찾아 부러워하는 건 사람이 가진 특성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자신의 장점을 바라보지 못하고 부족한 점만 눈에 부각되어 보이는 건 자신이 그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으로 작은 땅에서 살아오면서 눈치 보는 것이,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어찌보면, 다른 차원의 교육 실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제는 그 무엇도 노력하다고 달라지는 세상은 아니지만, 해오던 대로.. 한다면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아직까지도 생각하는 것 같다. 능력주의 세상으로 한 걸음 씩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정체기를 넘어 언젠가 찾아올 극자본주의의 과도기를 향해 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옛 것을 고집하여 붙들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기에 안되면 빠르게 다른 방법을 찾아야한다. 기계의 관리도 그렇지 아니한가 키오스크의 보급이 전국으로 퍼지자 모든 관리의 체계를 바꾸어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구술로 선주문을 받지 않는다. 티오더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부 기계나 조작에 약한 어르신 분들은 예외이지만 한걸음 나아가면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이 과학기술이다.
이 글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억지로라도 시간내어 보러가고 싶다고 말해줄 친구가 지금 내곁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눈에 보이는 자극적인 보상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가끔씩 발견하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점은 인간은 추억 속에 하루를 버텨갈 원동력을 얻는다는 것이고 즐거운 기억을 살아가면서 쌓기 위해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다고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