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나 동물이나 사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 않다. 사는 환경이 다를 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동물들은 자연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움직이는 그 무엇이든지 태어난 이상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맹렬히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TV나 유튜브에서 <동물의 왕국>이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지금 내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약육강식의 험난한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허무함이 짙어지고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하고 무기력에 빠져 헤매기 일쑤다.
때로 남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하지만 야생의 동물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서 내 감정이 오히려 얼마나 나태하고 배부른 칭얼거림인지 깨닫곤 한다. 동물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그 투쟁은 생태계의 균형과 순환을 빚어낸다.
동물이 살 수 없는 자연조건이면 인간 또한 생존할 수 없다. 그만큼 동물들이 사는 환경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물들은 자연의 변화나 계절에 따라서 이동한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이끄는 대로 거친 땅과 늪을 지나고 강과 바다를 헤엄치고 바람길을 따라 하늘을 날아간다. 누 무리도 건기와 우기를 따라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를 오간다. 경험이 많은 우두머리라고 하더라도 수백 마리의 누 무리를 이끌기란 쉽지 않다. 강을 건너는 동안 악어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가파른 절벽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악어의 먹잇감이 된다. 간신히 강을 건넜다고 하더라도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도처에 이들을 노리는 맹수들이 누우 무리를 뒤쫓는다. 누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이동할 뿐이다. 누를 노리는 맹수들도 목적은 같다. 이 위험천만한 투쟁은 복잡하게 얽힌 먹이사슬을 이룬다.
여러 동물들은 제각각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원숭이들은 나무 위에 안식처를 만들고, 미어캣이나 멧돼지들은 땅속 깊이 구덩이를 파서 보금자리로 삼는다. 이들은 각자의 생존방식으로 살아남아서 종족을 보존한다. 초원과 밀림에서는 한 끼 식사를 위한 치열한 삶의 경쟁이 펼쳐진다. 초식동물들은 싱싱한 나뭇잎과 풀, 물을 찾아서 초원을 가로지르고, 그런 초식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또 다른 고양잇과 동물들이 뒤를 따른다. 한쪽은 잡히지 않으려고 달리고 한쪽을 잡아먹기 위해서 달린다. 아프리카 초원은 늘 삶과 죽음을 둘러싼 긴장이 가득하다.
같은 무리 안에서도 서열 싸움을 하고, 다른 무리와 영역싸움을 하고, 종족 보존을 위한 짝짓기의 혈투가 벌어진다. 야생의 공간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울부짖음은 일상이다. 우두머리 수사자는 10여 마리의 암컷들을 거느리고 살면서 아프리카 숲과 들판을 지배한다. 힘도 세고 영리한 사자들은 집단적으로 사냥을 한다. 이들은 먹잇감들이 자기들의 냄새를 맡지 않도록 바람을 역이용하고, 도망갈 퇴로를 차단하고,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서 사냥한다.
얼핏 보기에 초식동물과 맹수들의 관계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이다. 그런데 왜 초식동물이 멸종한다거나 맹수과 동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초식동물의 종족 번식력과 습성이 생존 조건에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젤, 물소, 누는 풀을 뜯어 먹으며 생활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맹수처럼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큰 무리를 이룰수록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최대한 많은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노력한다. 치타, 표범, 호랑이는 한 번의 사냥을 위해 온 힘을 쏟아내지만, 성공 확률은 10%도 안 된다. 맹수과 동물들은 자기만의 사냥 영역이 있어야 한다. 드넓은 자기 구역이 있어야 사냥 성공 확률이 높아지고 생존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니 너무 많은 자손을 번식하면 곤란하다. 또다시 생존을 위한 유전적 선택이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현장을 목도한다.
거대한 고양잇과 동물들은 무자비하지만, 대규모 학살을 하지 않는다. 단지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사냥할 뿐이다. 최상위 포식자라도 세월이 지나 사냥을 못하거나 무리를 이끌 만한 힘이 떨어지면 금세 권좌에서 밀려나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다. 밀림의 왕인 수사자도 영역 싸움과 서열 싸움에서 밀려나면 무리에서 쫓겨나 외로이 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초원의 동물 중에서 하필 나는 하이에나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하이에나는 사향고양이와 비슷한 조상을 두고 있다. 하이에나는 다양한 습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대단하고 신기한 녀석이다. 어느 동물에도 견줄 수 없는 그들만의 행동 양식과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하이에나는 점박이하이에나, 줄무늬하이에나, 갈색하이에나, 땅늑대 하이에나, 이렇게 네 종류가 있다. 하이에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서식하며, 모성애가 강하고 암컷 중심의 모계사회를 이끈다. 점박이하이에나는 40~80kg이나 나갈 정도로 커서 사자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줄무늬하이에나와 갈색하이에나는 표범과 치타, 늑대가 사냥한 먹잇감을 빼앗아 먹기도 한다.
하이에나는 다른 맹수들이 사냥한 먹잇감을 가로채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처리하는 청소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것도 먹이활동 가운데 하나지만, 하이에나로서는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사자가 표범이나 하이에나가 사냥한 먹잇감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 하이에나는 주로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해서 잡아먹는다. 주로 집단 사냥을 하고, 사자보다 심장이 두 배나 커서 오래 달릴 수 있다. 순간 속도는 떨어지지만 지구력이 뛰어나서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사냥한다. 타고난 사냥꾼이다.
하이에나는 주로 누나 가젤 새끼를 사냥한다. 굶주림에 허덕일 때는 간혹 코끼리나 암사자, 늙은 수사자를 공격하기도 한다. 점박이하이에나는 사자와 서식지가 같아서 늘 먹이를 두고 충돌한다. 덩치만 봐서는 싸움이 안 될 것 같지만, 영악한 하이에나들은 암사자에게 한꺼번에 달려들기도 한다. 싸움이 시작되면 하이에나는 암사자의 뒷다리를 집중적으로 물어뜯는다. 뒷다리를 물린 암사자는 움직임이 느려지고 전의를 상실한다.
이처럼 하이에나가 사자와 싸워서 물리치는 장면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이에나는 거대한 물소를 공격하기도 한다. 거대한 물소의 급소를 집요하게 물어뜯어서 힘을 떨어뜨리며 잔인하게 죽인다.
그러고 보면 하이에나는 약자에게만 강한 게 아니라 강자에게도 겁 없이 행동한다. 사냥에 성공하면 뼈까지 으깨 삼키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썩은 고기도 남김없이 해치운다. 소화기관이 독특하게 진화한 덕분이다.
또 하이에나 새끼는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가 부족할 때면 자기보다 나중에 태어난 동생을 무자비하게 죽이기도 한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생존 투쟁을 펼칠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형제자매를 죽이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는 유일한 포유류이다. 초원의 냉혹한 전쟁터를 음습하고 거침없이 활보하는 무법자 포스가 풍겨나온다.
집단생활을 하는 하이에나는 암컷 우두머리에 철저히 복종하며 위계질서를 철저히 지킨다. 하지만 우두머리가 무능하거나 무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 집단으으로 반란을 일으켜 우두머리를 추방하거나 죽이기도 한다. 이처럼 특화된 사회성과 생명력 때문에 하이에나는 육식동물 가운데 멸종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을 동물로 손꼽힌다.
나는 하이에나의 습성을 보면서 한편으로 늘 인간을 떠올린다. 인간과 하이에나 중 어느 편이 비정하고 잔인할까? 하이에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지만, 인간은 배 아픈 것을 참지 못한다. 타고난 이기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죽하면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하이에나는 한결같이 냉정하고 포악하지만, 인간은 한없이 다정하고 친한 척하다가 어느 순간 매몰차고 냉소적으로 돌변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하이에나보다 잔인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누군가 어려움에 빠지거나 잘못된 일에 연루되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물어뜯는다. 남의 불행을 기회 삼아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한 치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갈기갈기 물어뜯는다. 입에 피를 묻히고 피해자에게 짐짓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에도 비열한 하이에나가 여러 명 있다. 익명 게시판에는 강자에게 온갖 아양을 떨면서, 약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글이 수두룩하다. 당사자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 은밀한 뒷담화와 비난을 일삼는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재미로 살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서열을 정하고, 지배-피지배 체제를 갖춘다. 같은 무늬끼리 뭉치고, 다른 무늬는 소외시키고 배척한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원시적 생태계에서 개개의 전투력이 보잘것없었고, 따라서 사냥할 때 집단적 잔인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했을 것이다.
인간은 이미 원시적인 생존 전쟁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의 몸속에는 태초의 동물적 본능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잔인한 본능이 인간을 탐욕과 끝없는 자기만족을 갈급하도록 이끄는 게 아닐까? 하이에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가 소스라치는 이유는 늘 인간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