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 오프닝에는 스승과 제자의 대화가 나온다.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제자가 스승에게,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묻는다.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고,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다. 오직 네 마음뿐이다”고 대답한다. 그렇다. 내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에 모든 것들이 흔들린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다. 파도는 보이지만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혼란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빙빙 돌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기부정과 모멸감으로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고,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고,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견디고 싶은 마음과 이겨내려는 의지는 신호등 빨간 불빛 아래 속절없이 무너졌다. 흐릿한 의식에 기대어 다시 일어섰지만, 발걸음은 하염없이 비틀거렸다.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몰라 흐느꼈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마음이 심란해진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한 척, 센 척 지내지만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세월이 갈수록 일이 힘에 부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고 부담스럽다. 이래저래 긴장감으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작은 실수나 상처에 아파하면서 겨우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흔들린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괜히 남 탓을 하며 경계하고 거리를 둔다. 언제나 나를 믿어야 하는데 결정적일 때 나를 믿지 못하고 혼돈에 빠진다. 희망이 희미해질 때 초라한 그림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인다. 그만두라고, 넌 여기까지라고 유혹한다. 밑바닥에서 느끼는 굴욕감이 치욕스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초라함의 실체는 밖에서 보지 못한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격지심과 어지러운 마음 때문에 비굴해진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평정심을 잃는다. 사소하지만, 몹시 바쁠 때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가 신발끈을 매는 일이다. 평소에는 급한 성격이 아닌 편인데, 구두나 운동화를 신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진다. 출근하러 나갈 때도 현관에 앉아서 차분하게 구두끈을 매면 되는데, 생각할 시간도 없이 서두르다 보니 구두 뒤꿈치를 접어서 신거나 끈을 대충 묶고 헐레벌떡 뛰어나가기 일쑤다.
산책하러 나갈 때도 운동화 매듭을 느슨하게 묶은 탓에 자꾸 풀려서 걷기를 방해한다. 최근 다이얼이 달린 운동화를 샀다. 나갈 때 끈을 매지 않으니 간편해서 좋다. 운동할 때도 쉽게 풀어지지 않으니 신경 안 써도 되고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생긴다. 급한 상황에 놓이면 나도 모르게 몸도 마음도 조급해진다. 그저 짧은 호흡의 시간을 가지면 될 것을, 그 틈을 허락하지 못한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찰나의 순간도 견디지 못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견고히 하고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친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때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닌 엉뚱한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해봐야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괜히 남들의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다보면, 낭패만 당하고 상실감만 커질 뿐이다. 어렵고 힘들수록 지름길을 찾기보다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
단언컨대, 나는 이제까지 취업과 관련하여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왔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이 송두리째 무너질 만한 일이 일어났다.
이곳에 8년여 있는 동안 이직을 위해 여섯 번 지원해서 여섯 번 모두 떨어진 것이다. 좌절감은 말도 없이 크고 고통스러웠다. 알고 보니 내가 지원한 기관들 대부분은 사전 내정자가 있었다. 몇 번의 좌절을 경험한 뒤에는 면접장에 들어가자마자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남들은 탈락한 나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눈치 없다고 비꼬는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떨어질 때마다 마음 아프고 참담했다.
정공법보다는 편법이 난무하는 곳에서 흔들리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길이 아닌 길은 가지 않았다. 묵묵히 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는 더 단단하고 빠르게 목표지점에 다다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잦은 실패에 절망하다보면 의기소침해져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불화에 몸부림친다. 그럴수록 나를 믿고 무한히 신뢰해야 한다. 자신감을 잃으면 남의 눈치나 보고, 자발적 노예로 전락한다.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 자신감은 삶의 절대적 에너지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인내하며 상실의 공간에서 버티고 있다. 숱한 시련과 상처에도 굴복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다. 멈추는 순간, 지금까지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도시 생활의 고단함과 가파른 세상의 계단 앞에 움찔하기를 거듭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시원치 못한 밥벌이 생활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눈물로 애써 억누르고 살았다. 내가 꽃을 피운 적이 있던가? 언제쯤 꽃을 피울 수가 있을까? 아니면 오늘이나 지금 지고 있는 것일까? 거리에는 그사이 수많은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미래의 희망을 갈망하는 간절함과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그러하듯 인생의 길은 불명확하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숱하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여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간혹 노력보다 행운이 통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반대로 지독히 운이 안 좋은 사람은 뭔가를 해도 잘 풀리지 않는다. 누구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냥 견딜 수밖에 없다. 버티다보면 그럭저럭 지나가기 마련이다. 견디다보면 마음이 무뎌져 아픔이 덜해진다.
어느덧 해는 떨어지고 갈 길은 멀고 아득하기에 갈수록 초조해진다. 나의 과욕인가?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는가? 자책과 근심이 늘어난다. 가야 할 길이 짙은 어둠에 갇힐 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염없이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비루함과 자격지심을 감내해야 한다. 오늘 버티고 견뎌내면 내일은 새로운 문이 열릴 거라고 기대할 뿐이다.
누구나 내일을 위해서 끝까지 버티고 견디면 살아간다. 마음속에 품었던 꿈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