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다. 시골집에서 키우는 대부분 개들은 뛰어난 품종이 아닌 일명 똥개라고 불리는 잡종 개였다. 아버지가 오일장에서 강아지를 사 오면 며칠 동안 하루 종일 곁에서 놀아주고 안고 다녔다. 딱히 즐길 만한 놀이도 없고 친구도 없는 관계로 유독 강아지와 노는 시간이 즐거웠다.
부모님께 크게 야단맞으면 개에게 다가가 하소연하고 위로를 받았다. 개 먹이 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나는 식구들이 먹다 버린 잔반을 끌어모아 먹였다. 그러다 보니 녀석들은 유난히 나를 따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었고, 산과 들을 쏘다닐 때면 늘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백구’ ‘쫑’ ‘해피’ ‘개돌이’ ‘개순이’…….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녀석들을 떠올리면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밀려온다.
시골집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빈집을 지키고 쥐를 잡는 데 유용했다. 그런데 개를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일찍 죽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요즘처럼 예방접종을 맞추거나 심장사상충 같은 약을 주기적으로 먹이지 못했고, 영양상태도 불량이었다. 시골집 곳곳에는 쥐약이 널려 있었고, 꿩사냥을 위해서 작은 콩에 구멍을 내고 청산가리(싸이나)를 넣은 다음 촛농으로 땜질한 후 산과 들판에 놔두었는데 개들이 모르고 먹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비명횡사하지 않은 개들도 온전히 천수를 누리지는 못했다. 개들은 성장 주기가 빨라서 한두 살 정도만 돼도 몸집이 다 커지고 성견이 된다. 다 자란 개는 어느 여름날 개장수에 팔려나갔다. 아마도 신작로 저편 삼거리에 보신탕집에 팔려나갔던 것 같다. 예전 시골에서 개를 키우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때문이다.
어느 때인가 유난히 사람 말도 잘 알아듣고, 쥐도 잘 잡는 영리한 개를 키웠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 똘똘하고 살가운 녀석을 어느 날 아버지가 개장수에 팔아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 어떻게 탈출했는지 녀석이 집으로 돌아왔다. 험하고 먼 길을 어찌 알고 찾아왔을까. 나는 흙투성이 녀석을 껴안고 한바탕 나뒹굴었다. 하지만 얼마 뒤 개장수가 집으로 찾아왔다. 개가 도망가서 찾으러 왔다고 했다. 나는 개를 팔지 말라고 부모님께 울면서 떼를 썼다. 하지만 궁핍한 살림에 한번 팔아버린 개를 다시 살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녀석을 눈물로 다시 떠나보내야 했다. 그 시절의 애틋한 기억 때문인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도시로 올라온 뒤로 나는 시골 개들과 예전처럼 함께 지내면서 교감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가끔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꼬리를 살랑대며 반겨준다. 시골집에는 자식들 대처로 떠나보낸 두 노인네와 개 한 마리뿐이다. 두 노인네가 개한테 살가웠을 리 없다.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웠을까. 나는 녀석을 앞세우고 동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했다.
2020년 3월 봄날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홀로 외롭게 지내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진돗개를 하나 분양받았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강아지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농장으로 직접 연락했다. 진도에서 진돗개를 키우고 있던 농장주가 강아지를 시골집까지 데리고 왔다. 허전하고 적막하던 시골집 마당이 녀석 때문에 일순 활기가 돌았다. 손바닥만 한 녀석은 까맣고 윤기 나는 털을 흔들며 아장아장 걸어다녔다. 강아지의 재롱에 아버지도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아직 어린 새끼라서 목줄을 채우지 않고 마당에서 자유롭게 다니도록 했다.
진도에서 온 수컷 개라서 ‘진도’라고 이름을 지었다.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그렇다고 도시에서 키우는 애완견처럼 부드럽고 간지러운 이름은 왠지 안 어울리는 느낌이다.
진돗개는 확실히 영리해서 눈치가 빠르고, 용감하고, 주인을 잘 따른다. 또 가능한 대소변을 가리고, 뒤처리하고 나서는 꼭 흙으로 덮을 만큼 깔끔쟁이이다. 진돗개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진도’는 블랙탄 종이었다. 눈이 네 개 달린 것 같다고 해서 ‘네눈박이 진돗개’라고 불린다. 다른 진돗개에 비해 성질이 좀 더 사납고 사냥을 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군견으로 발탁되어 훈련받은 개가 블랙탄이다. 그런데 워낙에 주인 한 사람에게 충성심이 강해서, 상황에 따라 여러 사람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군견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명되었다. 시골에서는 네눈박이가 귀신을 쫓아낸다고 해서 일부러 키우는 집이 많다.
진도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몇 달 뒤, 진도가 외롭고 심심할 것 같아서 대전 형님에게 부탁해서 암컷 강아지 한 마리를 더 분양받았다. 대전에서 데려오고 순해 보여서 ‘대순’이라고 이름 지었다. 진도와 대순이는 두 달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런데 두 녀석은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전 형님이 대순이를 마당에 내려놓자마자 진도가 사정없이 짖으며 달려들었다. 낯설어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진도는 며칠이 지나도 친해지기는커녕 사납게 달려들었다. 대순이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도망 다녔다. 진도를 묶어놓지 않으면 사달이 날 판이었다.
진도는 목줄이 채워지자 며칠을 서럽게 울며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목줄에 묶여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처지를 아주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하루이틀 목줄을 풀어놓아도 근처를 맴돌 뿐 예전처럼 활기차게 돌아다니지 않았다. 여러 날 묶여 생활하다 보니 본능을 잃어버렸나? 주인의 의도를 알아채고 순응하기로 했나? 내가 진도한테서 무언가를 빼앗아버린 건 아닐까? 여전히 나를 반기고 따르는 진도를 볼 때마다 나는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진도는 대순이에게도 사납게 달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된 첫 만남은 생각보다 오래 생채기를 남겼다. 둘은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대순이는 상대적으로 진도와 거리를 두었고, 진도가 가까이 다가올 때면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리곤 했다.
둘 사이의 미묘한 온도 차는 진도가 발정기가 되었을 때 확연히 드러났다. 진도가 본능적으로 대순이 등 뒤로 올라타서 짝짓기를 시도할 때마다 대순이는 격하게 거부하며 으르렁거렸다. 진도가 대순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갖은 아양을 떨고 정성스레 핥아주었지만 어림없었다. 구애하는 진도와 거절하는 대순이의 싸움은 결국 서로를 물고 뜯는 지경까지 이르곤 했다.
어쩌면 대순이는 어릴 적 자신을 괄시했던 진도에 대한 앙금이 깊이 남아 있으며, 그때의 서러움을 이런 방식으로 대갚음하고 있는 것이리라. 둘 사이의 귀여운 새끼를 보려던 내 바람은 헛된 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랴, 시간의 마법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최근 들어 시골집 뒷산에 버려진 개들이 살고 있다. 버려진 개들의 운명은 도시와 시골은 다소 차이가 있다. 도시에서 버려진 개들은 대부분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진다. 여기서 운이 좋은 개들은 새 주인을 만나겠지만 그렇지 못한 개들은 안락사한다.
여기에 견주어 시골에 버려진 개들은 굶주림과 추위를 못 견디고 대부분 죽음에 이른다. 살아남은 몇 마리는 야생의 본능을 되찾아 들개가 된다. 그들은 무리 지어 움직이며 작은 산짐승과 들짐승을 잡아먹고, 때로는 농가에서 기르는 닭이나 오리를 약탈하기도 한다. 시골 어르신 말씀으로는, 어느 마을에서는 들개 무리가 축사를 습격해서 송아지를 죽이고, 밤에 혼자 마실 나온 사람을 위협하기도 했단다. 들개를 포획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사람이 다가가면 재빨리 도망치고, 덫을 놓아도 어지간해서는 걸려들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다.
들개도 과거에 누군가의 애정을 받을 때는 순종적이고 온순했을 것이다. 하지만 믿고 따르던 주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유기된 순간부터 난폭해진다. 어떤 모습이 개의 본능일까? 어쩌면 개는 환경에 따라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잔인함으로 따지자면, 원인 제공자인 인간이 한 수 위다.
자기를 따르는 충직한 동물을 기껏 몇 걸음 걷지도 못하게 목줄로 묶어놓은 나의 무자비한 본능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시골집에 내려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