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밑바닥부터 살펴보자

by 류재준

인문학자이자 유명 저자인 피터 윗필드는 《세상의 도시》에서 64개 도시의 탄생과 문명의 발달과정을 보여준다. 사상과 기술, 예술, 과학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힘은 사회, 경제, 기술적 동력을 의미하고 ‘도시’라는 단어는 ‘문명’ 또는 ‘문명화’라는 단어와 직결된다” “도시는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위엄 있는 도시, 불결한 도시, 친밀한 도시, 비인간적인 도시, 창의적인 도시, 암적인 도시, 이 모든 이미지가 부도덕하고 부족한 인간을 투영한다”고 규정한다. 나아가 “어떤 도시는 그 발달과정에서 전혀 계획되지 않은 우연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었고, 또 다른 도시는 지도자의 의지로 형태를 잡거나 재건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도시를 보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와 내밀한 일상까지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의 도시화는 근대화와 필연적으로 겹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경제는 파탄 났으며, 과거의 주거환경은 대부분 폐허가 되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산업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기술과 자본과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노동집약적 산업과 저임금을 기반으로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을 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수출·입 항구를 중심으로 한 부산과 인천, 그리고 이 삼각형 구도를 잇는 중간 지대의 몇몇 도시가 빠르게 산업도시화 되었다.


이 도시에 필요한 노동력은 농촌 인구가 이동해서 채워졌다. 당시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환경은 우리나라가 빠르게 발전할 여건을 마련해주었으며, 도시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70~80년대 성장한 도시는 산업단지와 주거지역이 무계획적으로 뒤섞였으며, 몇몇 지역에 산업단지만을 특화해서 새롭게 세운 도시도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살아가려면 주택, 도로, 학교, 공원, 상·하수도를 비롯해서 도시를 지탱할 기반시설을 마련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발달하려면 장기적인 계획과 조심스러운 진행 과정을 밟아야 한다. 기능적인 편리성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편안함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시는 그러지 못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가 형성되고 확장되다 보니 물리적 기능성과 정서적 감수성은 배제되고 오직 속도전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21세기 우리나라 대도시는 천편일률적인 고층아파트, 주변을 고려하지 않은 콘크리트 빌딩, 차량으로 가득한 아스팔트 도로만 남았다. 삶의 질, 삶의 여유, 삶의 만족을 느낄 만한 공간을 사라지고 건축을 위한 도시, 토목을 위한 도시, 도시를 위한 도시가 건설되었다.


이처럼 이른바 개발도상국 시절 우리나라 도시의 형성과 성장 과정이 다소 기형적이었다. 성장 제일주의를 기치로 내걸던 시대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도상국을 거치며 빠르게 성장한 아시아의 몇몇 도시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도시만의 특징은 세계적으로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30여 년 동안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형성된 우리 도시를, 앞으로 어떻게 유지하고 보수하고 재개발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경제 순위에서 10위 권으로 진입했으며, 부침을 겪기는 하지만 여러 산업 분야에서 안정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오고 있다. 굶주림에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은 이제 삶의 질이 넓고 높고 깊어지기를 갈망한다. 더불어 그 풍요로움이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은 도시계획을 주관하는 행정(관)에 쏠릴 수밖에 없다. 비좁고 어지럽고, 여전히 토건세력이 활개 치는 이 도시를 어떻게 리모델링할 계획인가요?


아쉽게도 도시계획을 주관하는 공무원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무미건조한 도시를 유지하고 봉합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인간을 위한 도시, 창조적인 도시, 기회의 도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온갖 법 규제에 매달려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지만, 대체로는 건축업자들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본의 마천루를 쌓아 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오늘날 도시계획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주로 생활간접자본시설 확충(SOC)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도면 위에 선과 면을 긋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선수이다. 그들이 긋는 선과 면은 대부분 새로운 도로와 건물이 들어선다. 또 도시계획 심의위원은 대다수가 중년의 남성, 건축이나 토목 전공한 교수들이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심의위원에 포함되어야 한다. 여성은 물론이고, 색채 전문가, 디자인 전문가, 도시생태전문가들이 도시를 계획하고 심의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인문학자, 소설가, 시인, 화가, 음악가, 운동선수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인간중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의 밑바닥부터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도시의 거리와 바닥은 너무나 무색무취하다. 철학이 빈곤한 도시는 허접하고 무질서하다. 여유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삶은 고달프고 분주하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시 되는 도시의 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


뾰족하고 네모난 볼품없는 보도블록, 특색 없는 거리에는 자본주의 탐욕만 가득하다. 이러다 보니 매년 12월이 되면 보도블록 교체, 도로 개보수가 성행했던 이유는 원칙 없는 도시행정과 무분별한 도시계획 탓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도시 디자인이 없기 때문이다. 장마철 도시의 거리는 배수가 제때 안돼서 물웅덩이가 생기고, 침수를 반복한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차마 걷고 싶은 마음의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매일 걷고 다니는 도시의 길바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사람들은 가장 낮은 밑바닥에 처할 때 진정한 민낯이 보인다. 그 도시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그 도시의 거리를 걸어보는 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거리를 새로이 디자인 하고 싶다. 시와 꽃그림이 가득한 건물, 무지갯빛 바닥, 물결무늬 바닥, 하늘을 닮은 바닥을 만들고 싶다. 도시의 풍경화는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랜드마크는 숭고한 정신이나 거대한 건축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정체성은 시민들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는 도시의 거리를 자주 걷는 편이다. 해외 나가서도 그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서 바닥을 유심히 살펴본다. 사진들도 길거리 바닥을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도시의 민낯은 길거리와 바닥을 보면 지레짐작할 수 있다. 숨기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허름한 골목길 모습과 악취 풍기는 밑바닥이다. 길거리와 바닥에는 그곳의 사는 사람들의 정서와 사연이 깃들고, 역사와 전통이 녹아 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별, 도시별, 마을별 특색 있는 보도블록이 꼭 있는 것 같다. 재질도, 모양도,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고색창연한 건물과 들쭉날쭉 거친 돌이 놓인 바닥의 풍경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내가 사는 거리의 모습은 어디를 가나 똑같거나 비슷하고, 주변의 건물과 부조화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아파트가 또 다른 자본주의의 신분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삭막한 아파트 단지가 곳곳에 즐비하다. 아파트 비중이 65%를 상회한다. 아파트 건축을 위해서는 복잡한 행정적 절차와 심의를 받아야 한다. 도시계획, 건축, 경관, 교통 등 개별법령별 심의를 따라야 한다. 교통심의, 경관심의, 건축심의, 도시심의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업계획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1년이나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절차와 과정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 성냥갑 아파트로 채워진다.


아파트 건축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무조건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좁은 땅은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아파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후죽순 지어진 아파트로 인해 도시의 경관이 망쳐지거나 스카이라인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과 공존할 수 있도록 경관 보존 관리 구역, 경관 형성 구역 등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도시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아파트가 네모난 건축물로 난립하면 도시의 경관을 해치고 어지럽다. 알록달록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를 가져야 한다. 아파트와 어울리는 작은 공원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영화 <이상한 나라 수학자>에서 수학자 역할을 맡은 최민식은, “공식대로만 풀면 친해질 수 없다. 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거다”라고 말한다. 도시가 문제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엉뚱한 해답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도시는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도시는 인간의 수많은 욕망이 분출되고 있는 용광로이자 해방구이기도 하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도시를 이해할 수 없다.

keyword
이전 07화MZ세대여, 나는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