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되면 시골 마을은 아이들 노는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농촌 마을에 요즘 같은 운동장이나 놀이터가 따로 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온 동네와 산과 들과 강을 세상 둘도 없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남자아이들이 유난히 즐겨 찾는 명당자리가 있었다. 오래된 묘지가 군데군데 낮게 자리 잡은 구릉지였다. 아이들은 거기 모여 축구나 야구를 했다. 가난한 시절에 멀쩡한 축구공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바람 빠진 낡은 공이나 터진 공에 지푸라기나 천 조각을 집어넣어서 만든 조잡한 공으로 축구를 했다.
야구공도 실밥이 풀리거나 아예 가죽이 뜯겨나간 처참한 몰골이었다. 야구 배트는 솜씨 좋은 형들이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고, 글러브는 비료 비닐포대를 접어서 만들었다. 어설프게 만든 글러브는 나름 쓸만했고 공을 잡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경기 장비와 규칙은 엉망진창이었다. 경기장 경계선도 삐뚤빼뚤하고, 골대나 베이스도 없고, 물론 심판도 없었다. 경기규칙은 제각각이었고 누구 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시합할 때마다 ‘골이다, 아니다’ ‘홈런이다, 아니다’를 놓고 다투는 게 일이었다.
가끔 산 주인이 나타나면 우리는 부리나케 흩어져 달아났지만, 주인이 사라진 뒤 금세 다시 모여서 구릉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경기에 몰두했다. 묘지가 낮아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네 형들이랑 해 질 녘까지 야구를 하다보면 얼굴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한낮 땡볕에 운동했으니 피부는 빨갛게 익으면서 벗겨져 따끔하고 따가워서 힘들었다. 그럼에도 다음날이 되면 아이들은 또다시 삼삼오오 구릉지에 모여들었다.
구릉지에서 경기가 없는 날이면 우리는 가끔 뒷산 ‘묏골’에 올랐다. 묏골, 뫼(묘)가 많은 골짜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둡고 음산한 공간이었다. 저수지를 지나서 산을 오르다보면 상수리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나무 사이로 무덤들이 수풀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혼자 가는 건 엄두도 못 내고, 항상 동네 형들을 따라서 다녔다. 겁 많은 내가 기어코 그곳에 가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곳은 온갖 곤충들의 서식지였다.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곤충은 뭐니뭐니 해도 집게벌레였다. 나중에야 그게 사슴벌레라는 어엿하고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슴뿔 같은 집게(턱)를 활짝 펼치고 늠름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고 근사해 보였다. 우리는 상수리나무 가지가 부러져서 움푹 파인 옹두리를 찾아다녔다. 옹두리에는 상수리나무 진액이 흘러나왔고, 그걸 먹기 위해서 온갖 곤충들과 벌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물론 상수리나무 진액을 좋아하는 사슴벌레도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슴벌레를 잡으면 작은 나뭇가지를 집게에 물리거나, 서로 싸움을 붙이며 놀았다. 풍뎅이는 사슴벌레보다 개체수도 많았고 잡기 수월했다. 풍뎅이 다리를 떼어낸 다음 땅바닥에 놓으면, 풍뎅이는 날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우리는 누구의 풍뎅이가 오랫동안 도는지 시합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가지고 싶었던 최고의 곤충은 뽕나무하늘소였다. 우리들은 ‘뽕나무찝게’ 라고 불렀다. 뽕나무하늘소는 긴 채찍 모양의 더듬이를 드리우고, 늘씬하고 윤기 나는 몸을 뽐냈다. 뽕나무하늘소는 뽕나무 가지의 껍질을 갉아 먹고 살았다. 아주 깔끔하고 까칠한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정말 운 좋게 뽕나무하늘소를 잡으면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데리고 놀았다. 곤충 집을 만들고 먹이를 주면서 기르기도 했다.
여름에는 매미 잡는 재미가 그만이었다. 매미는 집 근처 감나무나 느티나무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물론 나무껍질과 똑같은 보호색을 가져서 언뜻 눈에 띄지 않았지만, 노련한 사냥꾼들을 피할 수 없었다. 매미를 잡으면 몸에 실을 매달아서 빙빙 돌리면서 놀거나, 나무에 묶어놓고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다.
그 시절 시골 우리는 원시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게 시골 아이들의 몇 안 되는 유희였으며, 자연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야구와 축구만큼이나 자연 속에서 오감을 열어놓고 곤충들과 노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내 손에 사라져간 곤충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
곤충들은 무려 3억 년 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빼어난 생존력으로 살아남았다. 덕분에 지구 동물의 70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개체를 자랑한다. 매미만 해도 그렇다. 매미는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은 바로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 유충(애벌레)은 나무에서 내려와 땅속으로 들어가서 산다. 나무뿌리에 주둥이를 꽂고 수액을 빨아먹으면서 성장한다. 매미의 종에 따라서 땅속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 정도 지내다가 땅 위로 올라온다. 그러고는 한 달가량 성충 매미로 살다가 짝짓기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매미들이 왜 그처럼 오랜 세월을 땅속에서 지내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영겁의 세월을 거쳐 그들만의 생존법칙을 습득했으리라.
이 밖에도 곤충은 저마다 놀라운 생존 비법을 가지고 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곤충이 애벌레에서 탈바꿈을 거쳐 성충으로 변화하는 과정만으로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곤충은 인간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그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과 온갖 환경오염에 노출되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어릴 적 그리 잔인하게 곤충을 괴롭히던 나도 어쨌거나 그들을 사라지게 하는 데 한몫한 셈이다.
지난여름 시골집에 갔더니 매미가 시끌벅적하게 맴맴 울었다. 수컷 매미가 암컷을 향해 보내는 구애의 소리다. 귀에 거슬릴 만큼 시끄럽지만, 매미 소리가 없는 여름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고맙다, 살아 있어 줘서.
얼마 전 오랜만에 묏골을 찾아갔는데, 상수리나무가 모조리 벌목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누가 자연농원으로 개발할 요량인 듯 진입로도 새로이 정비되어 있었다. 그 많던 곤충들은 어디로 갔을까? 미안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