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가을이 가장 싫었다. 나의 가을은 여유가 없었다. 고된 농사일만 있었다. 가장 고되던 기억은 아무래도 농약 치는 일이었다. 예전 농약 치는 기계는 사람이 직접 펌프질을 해야 했다. 나와 형은 농약 기계 펌프 손잡이를 노를 젓듯이 앞뒤로 움직였다. 몇 번 움직이다 보면 팔뚝이며 어깨가 묵직해지고, 농약 냄새에 취해 어지러웠다. 게다가 농약 탄 물이 떨어지면 먼 둠벙까지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고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논둑을 내달리면 숨이 턱턱 차오르고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었다. 온종일 농약 치는 일을 돕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났다.
농촌의 가을은 분주하다. 농약 치는 일은 백 가지 농사일 중 하나일 뿐이다. 부모님은 가을 농사 중에서 벼농사 다음으로 고추 농사에 정성을 쏟으셨다. 농촌에서 고추는 쏠쏠한 현금원이었다. 엄마는 정성 들여서 고추를 말린 다음 송정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고추를 판 돈으로 자식들 학비를 내고, 식량이 될 만한 국수와 라면을 사 왔다.
고추가 하나둘 빨갛게 익을 때쯤부터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총동원령을 내린다. 고추밭으로 간 우리는 한 두렁씩 맡아서 출발하는데, 나는 늘 맨 마지막에 도착했다. 키가 작았던 나는 고추밭에 푹 파묻혀 연신 눈물 콧물을 흘렸다. 고추는 아무리 따도 줄어들지 않았고, 내 눈물샘도 절대 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추를 말리는 일도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아침에 덕석이나 너른 포장을 펴고 고추가 겹치지 않게 펴 널었다. 혹시나 비가 와서 고추가 젖으면 한 해 고추 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러니 한눈팔지 않고 지켜야 한다. 어느 날 비가 오는데도 나는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추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심술 나서 비가 뻔히 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당연히 마당에서 말리던 고추는 비에 흠뻑 젖었다. 그날 저녁 일터에서 돌아온 부모님의 무시무시한 성화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밖에도 나는 날마다 소를 먹일 풀을 망태기 가득 채워야 했고, 곡식을 추수하던 농번기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농촌에서는 학교에 들어갈 나이쯤이면 장정 한 사람 몫을 해내야 했다. 그러니 내 유년의 가을은 고된 노동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완숙하고 풍성한 가을빛은 고달픈 일상의 더께를 너끈히 덜어준다. 농약 기계를 젓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황금빛 들녘과 단풍으로 물든 산천은 지친 몸을 어루만져주었다. 고추를 따다가 아픈 허리를 펴는 순간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가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와 그 아래 은빛 출렁이는 갈대는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나는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가 참 좋았다. 코스모스는 지천으로 피었다. 구불구불한 신작로 길가에 코스모스가 가득 피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가 먼지를 일으켜 코스모스를 흔들고 사라진다. 신작로는 깊어진 하늘과 익어가는 들녘 사이로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그토록 눈 시린 풍경이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한적한 골목길에도 코스모스가 얼굴을 내민다. 작은 꽃잎은 여리고 가녀리지만 단아하고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게다가 함께 어울려 피면 알록달록 색깔이 어우러져 화려하고 풍성하다.
하루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책가방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코스모스꽃 안에 작은 벌이 꽃향기에 취한 채 앉아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손으로 감싸다가 벌에 쏘였다. 처음에는 따끔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손이 퉁퉁 부었다.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부은 손에 된장을 잔뜩 발라주었다. 이렇다 할 약이 없던 시절에는 상처가 나면 무조건 된장을 발랐다. 만병통치약이었다. 된장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처가 나은 나는 다시 코스모스 길을 활개 치고 다녔다. 코스모스를 색깔별로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서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햇볕에 그을린 엄마 얼굴이 한순간 환해졌다.
어느 가을 운동회 날이었다. 달리기에서 1등을 했다. 엄마는, 내가 입었던 허름한 반바지가 마음에 걸렸는지 “니한테 운동복을 사줄 것인디 그랬시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가을은 유난히 어머니 얼굴과 겹친다.
가을을 버티게 해준 또 다른 힘은 풍요로움이었다. 들녘의 벼가 고개를 숙이고 대추가 붉게 익어간다. 봄부터 싹을 틔운 식물은 연약한 뿌리를 내리고, 여름을 지나서 태풍을 만나고, 장맛비에 흠뻑 젖었다. 세찬 바람에 연약하고 설익은 꽃과 열매들은 떨어지고, 운 좋고 튼실한 열매들이 마지막까지 남는다. 이런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맞이한 가을은 깊고 그윽하고 넉넉하고 푸근하다.
추석을 맞이하기 위해서 덜 여문 벼를 삶아서 올게쌀을 만든다. 벼를 수확하기 전에 딱히 쌀밥을 준비할 수 없기에 이른 시기에 수확하여 벼를 쪄서 만드는 것이다. 올게쌀로 지은 밥은 딱딱하고 찰기가 없는 편이지만 생찐쌀로 먹으면 씹으면 씹을수록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의 풍요를 알리는 포만감이었다. 추석에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냈던 모습이 아련하다. 우리 세시풍속이 대부분 사라져가는데도 추석만큼은 오늘날까지 공동체의 생활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쉽게도 중년의 가을은 쓸쓸하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무등산 정상에 구름이 걸려 멈칫하고 있다. 가을비가 내 옷깃을 스치고, 가뜩이나 움츠린 마음을 헤집고 후빈다. 바람에 우산이 휘청이고 흩날리는 빗방울이 내 옷자락에 흔적을 남긴다. 휑한 가로수 아래에는 젖은 낙엽들이 처량히 나를 쳐다본다.
화려한 단풍이 사실은 나무의 한 생애를 마감하는 마지막 불꽃임을 알아버린 나는 어느 작은 물웅덩이 낙엽들에 감정이입 해서 허우적댄다. 이 시기를 지나면, 나에게도 가을에도 황혼이 드리우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 위기를 몸으로 체감한 중년은,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 발버둥 친다. 그 몸부림은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목표를 잃어버리고, 줏대 없이 이리저리 헤매고, 남들 꽁무니를 쫓고, 주변 눈치를 살피고, 근거 없는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르내린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과 지위를 가진 듯한 중년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텅 빈 껍데기로 살아간다.
몇 해 전 유난스레 가을을 심하게 앓았다. 낙엽처럼 바닥을 헤매는 나를 누군가 광주에서부터 해남 미황사까지 들쳐메고 왔다. 겨우 도착한 망가진 육신은 계단 하나에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마치 내 삶의 무게처럼 가팔랐다. 나를 찾아왔지만 오히려 희미해져 갔다. 어둠 속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고 산등성이에 밤안개가 피어올랐다. 대웅전 앞에 붉은 등불이 너는 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괴로움에 고개를 숙였다. 등불이 꺼지고 어둠이 다시 내려앉았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범종 소리가 나를 깨우고 백팔번뇌는 여전했다. 스님의 청아한 불경 소리와 목탁 소리가 잔잔히 울려퍼지고, 속절없는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늦가을 미황사 뒤뜰에 내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가을이 지나가던 어느 날, 나는 다시 남쪽 대흥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붉고, 노란 단풍나무들이 흐느끼고 있었다. 이미 떨어진 낙엽들이 내 발치에서 바스락거렸다. 가을 산사는 고즈넉하고, 때로는 쓸쓸했다. 부처님이 조용히 나를 맞이하고, 삼배를 하면서 무수한 그리움을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직 무엇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추억도 욕망도 사사로운 감정도…….
나무는 가을에 시든 잎과 결별해야 겨울을 지낼 수 있다. 계절을 거스를 수 없다면 차라리 겨울을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적어도 가을을 부여잡고 매달리는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가을을 잊어야 한다.
산사를 나서는데, 어귀에서 귀엽고 어여쁜 소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옛날 어머니와 함께 그 길을 걷던 기억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여전히 나는 가을앓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