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조각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엄마로 살기

육아는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엄마를 위한 것이기도..

by 김태경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하고 2년 후에 결혼하고 1년 반 후에 큰 아이를 출산했다. 5년 후에 둘째 아이 출산.

대략 18년간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휴직이라곤 큰 아이 출산 휴가 90일, 둘째 아이 출산 휴가 90일뿐이었다.

육아휴직 제도도 잘 꾸려져 있는 회사였고, 휴직하지 말라는 회사의 압박도 없었다. 한창 일 할 나이였고, 친정엄마가 아이의 돌봄을 자청해 주시기도 했고, 집과 회사 거리도 길어야 20분 이내여서 혹여 아이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 날이면 점심시간을 이용한 적도 있다.


이러한 좋은 환경으로 인해 나는 워킹맘이었음에도 통상 워킹맘이 아이에게 가지는 미안함 혹은 자책감 같은 게 없었다. 두 아이 모두 순딩이었다는 더할 나위 없는 복도 있었지만, 퇴근 후 아기 띠로 아이를 계속 안고 있었고, 매일 저녁 산책을 나갔고, 주말이면 아이들 데리고 밖을 나돌아 다녔고, 회사 연차나 반차를 쓰면 꼭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데려와서 종일 같이 있었다.


길다면 긴, 그 재직 생활을 잠깐 멈추고 육아 휴직 막차를 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다 커버린 두 아이를 전업주부가 되어 돌보니 이렇게 또 귀한 삶의 기쁨이 없다.

8시 30분이면 두 아이 모두 학교에 간다. 요일마다 다른 하교 시간에 맞추어 매일 3~4시경이면 아이들 간식거리를 준비한다. 어떤 간식을 준비해 놓으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까를 상상하는 건 내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중학생 큰 아들은 학교를 마치면 지금 집에 가는 중이라고 내게 전화를 해 오고(회사 다닐 적은 아니었다), 집에 오면 준비해 둔 간식을 먹으며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이런저런 영상을 내게 보여주곤 깔깔 대기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도 한다(회사 다닐 적은 주로 밤에 이런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이런 시간이 많아졌다). 간식을 다 먹으면 자기 방으로 가서 핸드폰을 마저 보거나, 기타를 띵가 띵가 치다가 학원에를 간다.

"잘 다녀와. 이따 저녁에 엄마가 맛있는 거 해 놓을게" 하며 포옹하고 보낸다.


초딩인 둘째 아이는 늘봄 프로그램을 하고 일주일에 3일은 학원 차로 운동하러 가고, 2일은 내가 운동학원으로 데려다준다.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이가 나오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로 서 있는 기분이 오묘하다. 나도 동네 다른 엄마처럼 기다리고 서 있는 게 엄청 뿌듯하게 느껴진다). 운동 학원은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나는 아이 픽업을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다. 학원에 들여보내고 다시 집으로 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이것저것 간식 만들고 집안일하다가 50분이 지나면 다시 둘째를 데리러 학원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우리 둘이 만나기로 약속한 지점에 다다르면 멀리서 서로를 보며 우리만 아는 비밀 동작을 선보이곤 한다. 그리고 같이 집으로 들어온다. 회사 다니는 워킹맘은 도통할 수 없는 일이다.


휴직 8개월 차인 지금, 아이들과 이런 루틴을 보내다 보니 다시 복직하면 아이들과 이런 일상을 보내지 못할 텐데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벌써 들곤 한다. '육아휴직'이라는 말처럼 회사를 쉬고 육아를 하는 동안 아기 엄마는 육아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게 되기도 하지만, 아이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유대감과 추억을 쌓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게 없다고 해서 아이와 유대감이나 추억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 생각에, 이 같은 감정은 아이 측면 보다 부모의 입장에서 얻게 되는 유익함이 더 큰 것 같다.

오랜 고민 끝에 다 큰 아이들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그 시간을 지내다 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는 아이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도 좋고,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고, 내용도 하나도 없고 지나면 무슨 대화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이와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정말로 호사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이렇게 지내다가 복직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미안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아쉬움에서 비롯된 미안함일 거다. 아이들은 잘 지낼 거고..^^


내 나이 40대 중반인 걸 보면 인생이 짧고 시간이 빠른 것이 맞다.

하지만 그날들을 하루하루로 쪼개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로 바라보면 마냥 짧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어른 되면 곧 자기 인생 찾아 떠날 자식들과 아침 등교 전 눈 맞추고 포옹하고,

학교 다녀오면 맛있는 간식으로 맞이하고 놀아주고, 저녁상으로 배불리 먹여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 끄덕여주는 조각조각의 시간들이 축적되어, 나와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만들어주겠지. 일단 내 정신건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의 조각들이다.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엄마 노릇해야겠다.

후에 복직하면 또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조각조각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고. 그러니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기보다는,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 내 모습이 어떤지에 따라 미안해할지, 안 미안해도 될지를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다 안다.

엄마 아빠가 나와 함께 있으면서 딴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자기를 쳐다보는지를 말이다.

어쩌면 엄마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와 보내는지 보다는, 엄마가 나랑 있는 그 시간을 얼마나 나랑 잘 놀려고 하는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오늘도 잘 놀아 봐야지 내 이쁜 아가들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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