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 속 생각들도 정리 정돈하며 살기
거저 주어지는 시간에 휩쓸려 등 떠밀려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종일 일터에서 집에서, 제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치이며 겨우 겨우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도 자주 든다.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하고 애들 아침 먹이고 종종걸음으로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힘이 든다. 여름은 더워서 더 힘들고 겨울은 추워서 더 힘들다.
15년 넘게 휴직 한번 없이 일만 하던 워킹맘에서 잠시 전업주부로 지난 몇 개월을 보내며 '내가 이 일을 끝냈다'는 상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방에서는 설거지를 끝내고 행주로 조리대와 가스레인지를 물기 없이 싹 닦아내고 주방 불을 끄는 행동이 그것이고, 청소는 청소기 먼저 휙 돌리고 나서 물걸레로 닦아내면 내 눈에만 띌지언정 반들반들한 방바닥이 청소 완료를 선언해 준다.
나는 집안일뿐 아니라 내 생각을 위한 상징적인 행동을 한 가지 더 한다. 잠자기 전 늘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다이어리를 펼친 후 오늘 있었던 일들을 가만히 떠올리며 팩트든 감정이든 짧게라도 쓰는 것이다. 일기 쓰기라고 하기엔 매우 부족한 이 행위는 내 머릿속 생각들에게 오늘 내 일과가 끝났음을, 하루에 대한 나름의 반성이 종료되었음을 선포해 준다.
다이어리에 쓰이는 내용은 별 게 없다.
①큰 아이가 잃어버렸던 배드민턴 채를 찾아왔다 참 웃기는 아이ㅋㅋ ②저녁을 가볍게 먹으니까 괜찮은 것 같다. 삶은 계란 위주로.. 운동을 안 하니까 몸이 금방 무거워짐. 게으른 건 본성이야 ③소설 같은 게 쓰고 싶어졌다. 한번 해봐?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차차 생각해 보자. ④준우 엄마와 처음 만났는데 좋은 사람 같다. 나도 동네 친구 생겼다. 역시 사람은 사람 만나면서 살아야 배우는 게 있는 듯.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의 내용들이지만, 내 하루가 다 담겨있다. 반추나 성찰이 뭐 거창한 건가.. 종일 도통 멈춰지지 않고 제 멋대로 떠오르고 막무가내로 이어져서 어느 날은 꿈속에까지 따라와 활동하는 머릿속 수만 가지 생각들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끊어내는 행위를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술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재미있는 예능을 보다 잠들기도 하고, 이 악물고 근육 펌핑을 하거나 러닝으로 일과를 마무리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늘의 생각 써 보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추천한다.
글쓰기라고 하기엔 약간 민망한 '오늘의 생각 써 보기'는 꽤 도움이 된다.
밥 먹고 나서 싱크대에 켜켜이 쌓여 있는 밥그릇, 국그릇, 수저와 젓가락, 냄비, 컵 등 닦고 헹궈서 건조대로 옮기는 것과 비슷하고,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걷어 양말은 양말 서랍에, 속옷은 속옷 서랍에, 수건은 욕실에 가져다 놓는 것과 비슷한 행위이다. 글쓰기는 하루 종일 복잡하게 어질러진 머릿속을 정돈해 내는 작업과 같다. 정돈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일 되면 또 시작될 게 뻔한 생각들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어지럽힐 것이 분명하지만, 자동으로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시간 통제 방법은 내 머릿속을 정돈해 내는 일 아닐까.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세월과 통제불가능한 세상만사 속에서 그나마 내가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러면 차차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겠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입구부터 차단해야 할 생각거리들을 걸러내기도 할 것이고, 어떤 생각을 치우기 위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용기가 생겨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피부 촉촉해지라고 로션 바르는 것, 집안 먼지 없어지라고 청소하는 것, 예뻐지라고 미용실 가서 머리 하는 것, 체중 줄여보려 운동하는 것, 자기 전 오늘 있었던 일 생각하고 써 보는 것 다 똑같은 자기 관리 인 셈이다.
자! 오늘 잠들기 전에 머릿속 생각정리 한번 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