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때문에 피곤한 아이들 <가려진 시간>

영화 <가려진 시간>을 보고

by 김태경

예전에 일본에서 제작한 한 TV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이 있는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양한 색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유독 한 아이만 검은색 크레파스 한 개로 스케치북을 까맣게 칠하고 있는 거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아이 주변의 어른들은 아이가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급기야 학교도 결석한 채 병원으로 추정되는 곳에 앉아있는 그 아이는 여전히 검은색 크레파스로 색칠을 하고 있다. 아이의 그림을 관찰하던 몇몇 사람이 그 그림이 퍼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아이가 잔뜩 색칠해 놓은 검은색 도화지를 맞추기 시작한다. 다 맞춰진 아이의 그림은 검은 돌고래였다. 그리고 이 광고는 이런 말로 끝이 난다.

"How can you encourage a child? Use your imagination."


비단 광고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무심코 말하는 자녀의 한 마디에 부모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일을 추론한다.

'그 아이가 나랑 안 놀았어', '걔가 내 것 가져갔어.', '학교 가기 싫어 선생님 무서워'

상상력은 이제껏 내가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작동되는 법이다. 어른이 될수록 순수함은 어리석은 행위로 간주되고, 정직함은 때론 미련한 것으로 취급받으며, 타인의 대한 호의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는 부모의 사회적 경험으로 인해 아이의 말 한마디에 대한 부모의 상상은 넷플릭스에서나 볼 수 있는 범죄물 혹은 학폭물로 순식간에 변질된다. 물론 나도 그런 엄마 중에 하나이다.


작은 휴대폰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역시 전 세계가 시청하는 OTT에는 잔인하고 끔찍한 범죄 드라마와 영화가 넘쳐난다. 뉴스에서는 쇼미더머니의 디스전 못지않은 험담정치꾼이 등장하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건 사고 뉴스도 허다하다. 이런 사회 문화 속에 물들어 살고 있는데 상상력이 발휘된 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그러니 아이들의 심정, 마음을 헤아릴 요량의 상상력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 강동원이 나온다고 해서 오직 그 목표로 하나로 봤던 영화 <가려진 시간>을 다시 봤다.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곤 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나 다시 보니 배우 강동원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최적화된 장치였구나를 알게 됨과 동시에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의 완전한 이질감을 새삼 느끼며 엄마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영화는 각기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성민이와 수린이를 주인공으로 한다. 성민과 수린은 친구들과 함께 산속을 탐험(공사장 발파현장 몰래 보기)을 갔다가 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 동굴 속에서 빛을 내는 돌을 발견한다. 한 아이가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며 시간을 멈추게 하는 신비한 돌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수린이 잃어버린 머리핀을 주우러 간 사이 알처럼 생긴 돌을 깨뜨린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남겨진 수린은 사라진 아이들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수린은 빛을 내는 돌 이야기, 할아버지가 했던 이야기 등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만 먹힐 리가 없다. 수린은 정신 상태가 이상한 아이가 되고 만다.

실종된 아이들을 찾던 중에 한 남자가 수린의 집을 서성이는데 수린은 그가 성민임을 뒤늦게나마 알아챈다.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암호문 덕에 수린은 성민과 친구들이 시간에 갇혀 있었고, 그곳에서 성인이 되어 돌아온 것임을 알게 되지만 친구들 실종 후 고작 며칠이 지난 터라 그 성인남자가 성민이라는 사실을 믿어줄 리가 없었다. 수린은 성민과 함께 이 남자(매우 잘생긴 남자)가 성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이를 눈치챈 수린 아빠와 경찰은 그 남자(매우 잘생긴 남자)를 아동성애자로 파단하고 수린은 유괴범을 도운 몹쓸 친구로 낙인찍히고 만다.


빛나는 돌이 실재했다는 수린의 말을 믿지 못한 경찰에 대해서, 수린을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온전치 못한 아이라 생각하는 아빠에 대해서, 수린을 나쁜 아이로 호도했던 동네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수린과 성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 속 어른들은 의심투성이 인간들이겠지만, 어른의 관점에선 아이를 잃어버린 절절한 부모의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잠깐 뒤로 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물론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다.

선생님이 무섭다는 둘째 아이에게 선생님이 무서운 이유를 물었더니, 선생님이 1교시 수업 시작 전까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학생 큰 아이가 어느 날, 학교가 너무 가기 싫고 재미없다고 투덜대길래 무슨 일이 있나 갑자기 걱정이 불쑥 튀어나왔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었던 건 그날이 체육이 없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괜하고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으로 아이와 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싶다.

물론 세상엔 나쁜 사람이 있고, 예측 못한 일들이 벌어지긴 하지만 온갖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니 끔찍한 상상력이 발동되기 전에 아이에게 물어보고, 이야기 나누어 보자. 내 육아기간이 아직 15년뿐이지만 아이가 얼마큼, 어디까지 이야기하냐는 (성향, 환경 등등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부모가 어떻게 하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어른들도 회사 동료 중에서, 친구들 중에서 유독 무슨 말이든 해도 될 것 같은 존재가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려면 내 걱정을 숨기고, 상상력을 잠시 멈춘 채 듣는 일이 필요한 듯하다.

판타지 영화이지만, 판타지란 결국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장르이므로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슬픈 사연을 가진 아이들, 아직 부모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어른으로 되어 가는 길에 복잡한 혼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믿을만한 어른으로 역할을 잘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집에선 엄마로, 길에선 동네 주민으로, 사회에선 사회를 지탱하는 숨은 일꾼으로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어른들 때문에 피곤하게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구성원이었다면, 나를 포함한 어른들을 갱생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겠지..

몸만 커가는 어른, 몸만 늙어가는 어른.. 어른들은 어떻게든 잘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오히려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배울 게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아이가 둘이니까 오늘 두 개를 배워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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