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퀴즈에 나가는 상상 <터미널>

영화 <터미널>을 보고

by 김태경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또 뭘까?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복잡한 철학적 질문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녀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일러주는 것,

회사에서 친한 동료에게 저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 후배 직원에게 회사 생활에 대해 당부하는 것,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남편과 대화를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넷플릭스를 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도 내 일상 속 생각, 감정들과 굳이 연결 지어 보면 다 저 질문들과 만나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4년 영화 <터미널>은 미국에서 통역사를 구하기 힘들 정도의 작은 나라 크로코지아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JFK 공항에 도착한 크로코지아 국적의 빅터 이야기이다.

빅터가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동안 크로코지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그의 비자가 취소되고 만다. 비자를 확인해 줄 정부가 없는 탓에 빅터는 자국으로 돌아가지도, 미국 입국을 완료하지도 못한 채 JFK공항에 강제적으로 체류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빅터는 처음 와 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공항에서 잠도, 샤워도, 먹는 것도 해결해야 한다.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기약도 없이 말이다.


다행히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거장 감독 덕에 빅터는 공항에서 스스로 잠 잘 곳을 마련하고, 버거킹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방법을 터득한다. 의식주를 해결한 빅터는 공항에 앉아 수없이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람들이 잘 미끄러지는 위험 지역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하고, 공항의 루틴에 익숙해져 공항 일꾼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배신과 슬픔을 반복하는 여인을 위로하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부당한 노무 이슈를 해결하기도 하고 남몰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펼쳤던 재능 덕에 아르바이트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장기간 공항 체류 중인 빅터가 골치가 아픈 공항 관계자는 그가 남몰래 공항을 빠져나가 불법입국자가 되길 바라지만(그 순간 자신의 책임을 벗어나 경찰의 소관이 되므로) 빅터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채 9개월 동안 공항에서 거주한다. 마침내 비자 문제가 해결되어 뉴욕 시내로 갈 수 있게 된 빅터, 하지만 그는 뉴욕에 도착해야 했던 목표를 해결한 채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빅터의 여행 계획은 단순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가서 누군가를 만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물론 잠시 뉴욕 관광을 예정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틀어졌다. 아니 계획했던 목표는 달성했지만 그 여정길은 예상 밖, 완전 뜻밖이었다.

그는 여정 속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도왔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비난과 무시를 당하며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빅터는 빅터 자신의 모습대로 여정을 맞이하며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빅터의 이야기가 우리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부자 되기, 취업, 결혼, 사장되기 등 각자가 정한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내 계획대로만 살아지지가 않는다.

지금쯤이면 취업은 했어야 했고, 지금 나이면 이 정도의 돈은 소유해했어야 하고, 결혼을 더 늦게 하면 약간 곤란하고, 지금 아이가 생긴 게 감사하지만 약간 당황스럽고, 이만큼의 커리어는 지금 있었어야 하는데 도통 그게 아니어서 너무 속상한 날들도 있지 않나.. 도착했다 생각했는데 비자가 취소되어 공항 터미널에 체류하게 된 빅터 처럼 말이다.


비록 영화지만 빅터의 뉴욕 입성기가 저럴진대 인생의 여정이야 더 파란만장 한들 이상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건 어떨까.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여정 아닐까.

목표를 끝내 이룬 후에, 혹은 목표는 이루지 못했더라도 여정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여정길을 회상하며 회포 풀 때 나다운 모습으로, 인간미 넘치는 여정 콘텐츠로 모두가 입을 떡 벌릴 만큼의 목표 입성기를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빅터가 유퀴즈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아주 할 말이 많을 거다.

사람들은 그의 성품과 성실함, 그의 이야기에 흥미로움과 함께 존경을 표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도 언젠가 유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생각하며 살자.

양 옆에 유재석과 조세호가 앉아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 뭐가 가장 힘들었고,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냐를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지 상상해 보는 거다.

이 대답들을 아무도 몰래 속으로 말해 보자.

그러면 저 질문들과 만나게 될 거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

왜 착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지?

나는 뭐가 하고 싶은 거지?

내 마음이 왜 이런 거지?


지금 잠시 예측하지 못했던 터미널에 체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여기서도 살아나가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필요하면 도움도 청해보고 진상도 피워보며..뭐라도 해 보자.

예측할 수 없는 여정길이지만 그래도 그 여정길을 살아가야 하는 건 어쨌든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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