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술에 능한 인간의 위선 <서버비콘>

영화 <서버비콘>을 보고

by 김태경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내용이다.

어느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차량의 단지 내 출입을 금지시키고 단지 입구로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택배기사들은 멀찍이 차를 세워두고 카트에 물건을 잔뜩 실은 채 단지 내를 걸어 다니며 배송을 한다고 했다. 배송해야 할 물건이 많을 적에는 여러 차례 차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신분증까지 제시하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몹시 불편해했다. 하긴 로켓배송이 일상이 된 시대에 시간이 곧 돈인 택배기사들에겐 곤혹스러운 상황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아파트 단지가 하필이면 서울 시내 중 집 값이 가장 비싼 곳이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는 약간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사는 집 주변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들고, 혹시 모를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을 내 세상으로 만든 채 사방에 경계를 치며 요란하게 경고하는 행동이 소위 '내 세상' 밖에 사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언짢게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배려가 제거된 '내 세상 지킴'은 무례함 아닐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은 귀족들의 자발적인 솔선수범에서 에서 기원한 것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분들의 마음을 일정 부분 이해한다. 배달 안 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거절률이 높으면 배달 경쟁에서 낙오되니 울며 겨자 먹을 수밖에 없다는 택배 기사들의 상황도 이해가 간다. 이 글은 비난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내가 본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인트로임을 밝혀둔다)


2018년에 만들어진 영화 <서버비콘>은 나이 들어도 멋들어진 조지클루니의 감독작 이기도 하지만, 긴장감 있는 서스펜스 스토리 짓기의 도가 튼 코엔 형제의 각본작이기도 하다. 코엔형제는 평온해 보이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위선과 잔인함을 서버비콘 마을 사람들을 통해 풍자한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꼽히는 '서버비콘'은 정돈되고 평온한 마을에 양복 입은 신사와 우아한 아낙네들이 모여 사는 자부심 넘치는 마을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흑인 가구가 이사를 온다. 서버비콘에 살던 주민들은 하나같이 "인종차별에는 반대하지만 흑인(영화 속에서는 '니그로'라는 표현을 쓴다)과 같이 살 수는 없다. 이 마을은 원래 그런 마을이 아니다"라며 마을위원회에 격하게 항의를 하고 급기야 매일 밤마다 그 흑인이 사는 집을 둘러싸고 소란을 피운다.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호통을 치며 겁에 질려 이사가게 만들려는 심산이다. 심지어 영화 말미에는 그 흑인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그 집을 지키던 경찰을 공격하고 차에 불을 지르는 악행까지 저지른다.

그 흑인의 옆집에도 서버비콘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중산층 부부가 살고 있다. 기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 쌍둥이 언니와 조카를 돌보는 쌍둥이 동생, 그리고 언니의 남편이 살고 있다. 그들도 그 흑인이 이 마을이 사는 게 탐탁지 않지만 그들은 지금 다른 일로 몹시 바쁘다.

동생과 형부가 작정을 하고 언니를 살해할 계획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 영화가 그렇듯 늘 악당들의 계획은 어이없는 상황을 맞게 되고 타인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고 했던 그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만다.


흑인에 대한 매우 속물적 속내를 드러내며 내쫓으려 했지만 애꿎은 백인 경찰들이 죽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어차피 장애인이 된 언니를 없애고 보험금을 타서 더 좋고 아름다운 곳에 살기로 계획한 남편과 동생은 자신들의 덫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가지런히 짜여있는 마을 구획, 레고처럼 반듯하고 넓은 지붕과 푸릇푸릇 잔디 마당이 있는 넓고 볕이 잘 드는 집. 그곳엔 저열한 인종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자기 우월주의자들과 남의 것을 갖기 위해 사고로 위장하여 사람을 죽이고야 마는 잔인한 악마 본성이 가득 찬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악이 악한 세대들에게서 끝나면 좋으련만 위선과 폭력성, 욕망은 그들의 자녀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만다. 모든 살인을 목격한 백인 아이는 죽은 자들을 뒤로 한채 집 밖으로 야구글러브를 끼고 나온다. 백인들의 공격으로 밤새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던 흑인 아이 역시 아무 말 없이 글러브를 끼고 백인 아이와 공을 주고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람들은 내 속에 있는 위선과 속물근성을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더욱 화려하게 치장하고, 값지고 비싼 것으로 빈 속내, 혹은 허영과 욕망의 탑을 쌓아둔 시커먼 속내를 감추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는 것을 방지하라고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 둔 양심이, 삐걱대지 않고 어느 순간에든 작동하길 바랄 뿐이다. 물론 나부터..


입만 웃지 말고 속으로도 미소 지으며 일상을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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